장어가 산다

언젠가 어느 잡지에서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아프리카에서 열대어를 수입해 국내에 팔려고 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열대어를 배에 싣고 오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열대어가 죽어 사업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기사였다.

결국 사업에 실패해 현지 사업을 접고, 남은 물고기를 다 싣고 돌아왔는데

대부분의 열대어가 살아있었다.

남아 있던 물고기 중에는 육식성 장어 한마리가 있었는데,

이 전에 수입하는 과정에서 물고기들은 장시간 어항에 갇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죽은 것인데 

장어와 함께 온 열대어들은 장어에게 도망다니느라 바빠 스트레스를 느끼지 못해 떼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는 얘기였다.

요즘 서양을 보며 드는 생각이

우리나라가, K방역이 너무 뛰어나서 우리나라가 저들보다 코로나에 잘 대응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의 의료체계나 의료진, 행정부가 단연 독보적이어야 하는데, 방역 외 다른 분야에서

우리가 그렇게 독보적인가 하는 의문에 그리 속시원한 답변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것만이 전부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나는 가끔 이 자유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우리는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가 있고, 

우린 집안에 갇혀지내지 않고 밖으로 나와 떠들 자유가 있다는 인터뷰를 외신을 통해 접하곤 한다.

과연 우리에게 자유가 있는 것일까? 궁극적으로 옳은 가치란 것이 존재하기는 한 것일까?

그저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도움이 되면, 그 시대에 맞는 가치가 각광받는 것 뿐인 것은 아닐까?

나는 천부인권따위를 믿지 않는다. 하늘이 뭐가 아쉬워서 인간 따위에게 권리를 부여한다는 말인가?

그건 인간이 신을 만들었듯이 인간 스스로 가지면 권위가 인정되지 않으니 하늘이 줬다고 하자는 식의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냥 인권을 우리가 갖기로 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인간끼리 그걸 존중할 뿐이다.

하늘이 부여한 인권이라면, 밀림에서 만난 호랑이는 하늘이 부여한 인권을 가진 인간을 존중해야 마땅한데

호랑이는 감사히도 맛까지 있게 인간을 잘 잡아먹지 않을까?

우린 그동안 자연계를 정복했다는 오만에 빠진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거대한 적들을 다 잡아죽였고,

그 상징으로 하늘로부터 인권까지 부여받았다고 주장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인권에, 자유에 취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가 오히려 코로나에 취약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뱀장어 한마리가 어항에 들어왔는데, 열대어들이 뱀장어를 너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탓인지

뱀장어 따위 두렵지 않다고 하다가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아니 애초에 뱀장어 따위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린 뱀장어가 나타나자, 그게 뱀장어임을 빠르게 알았을 뿐만 아니라, 저게 뱀장어라서 우리를 다 잡아먹을 수 있다는 것을

빠르게 인정했다. 그리고 뱀장어로부터 일사분란하게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 뱀장어가 나타났는지, 그놈이 뭘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뱀장어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는지를

우리는 알아내고 서로에게 알려주고 아직까지는 잘 도망치고 있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인권에 익숙한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 국가가 된 것이 아닌, 

광복한 시기에 그저 국내에  미군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 친미주의자가 정권을 잡았고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 후 오랫동안 이름만 민주주의를 했을 뿐, 실제 군주정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기껏해야 34~5년 전에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계의 중심과는 거리가 먼 변방의 국가였고

그 폐쇄성 덕분에 여전히 잘 뭉치고 일사분란할 뿐이다.

게다가 분단국가로 60년 넘게 살아온 탓(덕?)에 죽음의 스트레스에 나름대로 잘 적응되어 있다.

위쪽에서 뭘 쏴도 우린 패닉에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주 느슨하지도 않다.

국민들 스스로가 너무 큰 자유보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정도의 통제가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수긍하고 합의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위협을 인정하고, 그 위협을 관리하는 것이

마음껏 자유를 누리는 것보다 생존에 유리함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린 어항 밖에 언뜻언뜻 지나다니는 뱀장어를 간간히 보며 살아왔기에

때가 되면 언제든지 도망쳐야 함을 인정하고, 마음의 준비까지 하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연이겠지만 그걸 가능하게 할 조직을 갖췄던 것이다. 

(전 정권이었으면 끔칙했을 것 같다. 정말 가슴을 쓸어리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결국 뱀장어 한마리는 우리를 다 잡아 먹을 수도 있고, 

스트레스를 느낄 새 없이 잘 도망치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린 뱀장어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왔는지 따위를 물을 수 없다.

이미 현실인 뱀장어 앞에서 우물쭈물 거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쩌면 우리는 거대한 변곡점에 서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거대한 틀이 이 거대한 뱀장어를 정말 잘 통제할 수 있을지

시험대를 통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이동동선을 아무런 저항 없이 국가에 제공하고 있다.

몇명 이상 모이면 장부를 만들고, QR코드를 활용해 내가 여기 왔다 갔다는 자국을 남긴다.

자유라는 측면에서, 매우 저항이 심했어야 할 일을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 공동체에 이롭다는 결론을 이미 내린 것 같다.

자유의 한 부분을 허물더라도, 공동체의 존속을 지키는 것이 먼저라는 합의를 이룬 것 같다.

나는 이념적으로 이것이 옳다거나 그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 어항에 뛰어든 장어 한마리가 우리의 삶을 정말 많이 바꾸고 있고,

앞으로는 더 많은 부분을 바꿀 것임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장어에게 도망치며 먹이를 먹을 수는 없다.

도망칠 때에는 사력을 다해 도망쳐야 한다.

그리고 빨리 그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야 비로소 다시 먹이를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어서 활력을 되찾기를 기대할 뿐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어항 속에는, 장어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