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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 우성공 |

흘러간 옛날 가요와 노래에 얽힌사연 등등 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

[자유] 산 팔자 물 팔자 - 백년설
우성공 2024-05-26 01:45 조회 89 추천 6 댓글 0



               산 팔자 물 팔자

        

            1940년 태평레코드 


        처녀림 작사 이재호 작곡 백년설 노래


1.산이라면 넘어주마 강이라면 건너주마

  화류계 가는길은 산길이냐 물길이냐

  흑사리 한장에도 담지 못할 풋사랑

  인심이나 쓰다 가자 소원이나 풀어주자


2.얼라면은 얼어주마 녹으라면 녹아주마

  화류계 가는 길은 얼고 녹는 장난이냐

  분접시 하나에도 차지 못할 행복을

  장난이나 치다가자 알심이나 알어주자


3.울라면은 울어주마 웃으라면 웃어주마

  화류계 가는 길은 울고 웃는 쌍갈래냐

  뜬세상 초록 꿈에 왔다가는 인생이

  넋두리나 하다가자 꿈이나 꾸다가자




산팔자 물팔자는 1940년 9월 눈물의 백년화와 함께 발매되었었는데, 눈물의 백년화가 총독부 검열에 걸려 판매금지되자 급히 8월에 먼저 발배되었던 번지없는 주막 음반 뒷면에 실어 

개장 임시 발매 음반으로 재발매 하였다 번지 없는 주막과 나그네 설움이 1940년 백년설과 

한국 가요사를 대표하는 곡으로 평가받지만 이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린 곡이 이

산팔자 물팔자였다

산팔자 물팔자는 화류계 여인의 한을 풀어 읊은 것으로 남자들은 믈론 여자들도 이 노래를

좋아하였는데 특히 요정같은 기생집의 여인은 물론 변두리 작은 작부집 같은 곳과 하다못해 여염집 여인들조차 힘든 여인의 삶의 하소연으로 듣고 이 곡을 좋아하였다고 한다

이 곡과 번지 없는 주막 나그네 설움의 가사를 쓴 처녀림의 본명은 박영호로 당대 

작사가로 조명암과 쌍벽을 이루던 인기 작사가였다 원산이 고향이던 박영호는 이념문제로 1946년 월북하였으며 1952년 월북작가 작품 방송금지가 공식화되면서 90여 곡의 

그의 노래들은 금지 목록에 포함된다 이후 개사하여 불리거나 작사가 반야월이 

추미림이라는 가명으로 이 노래들의 가사를 고쳐서 발표하였다

1980년대 후반 월북작가 작품 해금과 1990년대 유성기 음반 복각이 성행하면서 

대부분의 노래는 복구되었다

이 곡은 또한 우리 나라 트로트 음악의 변화도 증거하고 있는 곡이다.

작곡가 이재호는 그동안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한국적 5음계 단조트로트 계열에서

후반부 잠깐 5음계 장조트로트를 차용하고 있어서 이후 5음계 장조 트로트로 변화해가는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5음계 장조 트로트는 한국보다는 일본에서 자주 사용하던 기법이었다

이 노래는 시중에서는 대단한 인기곡이라 유사버전의 가사가 7가지 이상이 있는데

모두 원가사와 같이 자포자기 하는 심정의 하소들이다  

백년설은 1940년대를 대표하는 남자 가수로 활동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모은 남인수 

김정구 진방남의 목소리가 또랑또랑한 편이라면 백년설은 음정을 흔들어 구수하면서도 

듣는이에게 절규하는 듯한 독창적인 호소력이 특징이다 듣는이에게 친근한 한국의 얼을 

담은 맛을 주는 백년설의 창법은 서민적인 취향의 노래와 잘 어울려 오랫동안 절대적인 

인기를 유지했다 1941년 지원병제가 실시되면서 혈서지원, 아들의 혈서, 그대와 나 등 지원병으로 참전할 것을 독려하는 친일 가요를 불러 친일파 논란이 일었다 당대의 최고 가수였던 

백년설은 남인수, 박향림과 이 노래를 함께 불렀다 이러한 행적으로 인해 2008년에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음악 부문에 선정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백년설을 남인수와 함께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명시된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심의 대상자 명단에 올렸지만 대중 가수가 갖고 있던 당시의 사회적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사실이 인정되어 기각했다

1958년 대한가수협회를 창설하여 회장을 지냈으며 1961년에는 한국연예협회 기획분과 위원장을 맡았다가 1963년에 은퇴했다 가수인 심연옥과 결혼 한 뒤, 평생 그가 추구하던 목적과 의미있는 삶의 일환으로 여호와의 증인에 귀의 이후 연예계 관련 활동을 전면 중단하고 국제 무역을 운영하다가 1979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가족과 함께 (아내와 심연옥과의 슬하 남매 

5녀, 6남) 이민을 갔으며, 약 2년 후인 1980년에 미국에서 별세했다

고향 성주에 생가가 남아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건물로 대체되었고,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로 시작되는 나그네 설움의 가사를 새긴 노래비가 건립되어 있다

그의 전기로는 내무부장관과 건설부장관을 역임한 이상희가 저술한 오늘도 걷는다마는이 

있으며, 그의 파란만장하고 감동적인 삶을 진솔하게 담고 있다


                         자료출처 - 네이버 


(유투버에서 은발촌님의 음원을 공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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