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의 횃불 행렬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청와대로 흘러가는 길. 그 길 한 복판에서 말뚝처럼 물결을 거스르고 선 목청 좋은 한 남자가 몰려드는 촛불시민들에게 소리치고 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저 사실 박근혜 찍었습니다!
근데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너무 화가 나고 미칠 것 같아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벌써 몇 주째 생업도 다 때려치우고 오늘도 이렇게 서울에 올라와 여러분들에게 외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향해 "괜찮아요!"를 외치고, 또 어떤 사람은 "지금이라도 아셨으니 됐어요."라고 큰 소리로 화답한다. 뭐라고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그냥 지나가기로 하고 청와대로 향하는 인파의 도도한 흐름에 다시 몸을 맡기고 올라가다가 갑자기 부아가 확 치밀어 돌아서서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하나 여쭈어봅시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반기문 찍을 생각이신가요?"
"반기문이요? 그 사람이 누구죠?"
"반기문 모릅니까? 올해로 임기 끝나는 현직 유엔 사무총장."
"모르는데요?"
"그래요? 그럼 그가 누군지 좀 알아보시고 다음번에는 잘 생각해서 찍으시오. 내 장담하건대, 그 사람 찍으면 5년 후에 또다시 생업 포기하고 매주 여기 와서 사람들에게 용서를 비는 일이 반복될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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