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종 아쉬운점

제 취향대로 영화가 갖추었다면 좋았을 방향성을 써봅니다.

캐릭터의 얕은 서사

개봉전에도 이동진 평론가는 님과 밍의 대결구도인 스토리라고했지만, 사실 영화속에서 님의 비중은 적습니다. 플롯에서 깊이는 캐릭터가 욕망을 향하는 책임의 크기와 비례합니다. 그림이 도화지를 수단으로하듯, 영화는 시간위에 도화지처럼 플롯을 그려냅니다. 저는 캐릭터의 서사가 얕은 것과 모큐멘터리(다큐멘터리 촬영방식)가 영화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그저 악령이 깃든 밍이 일으키는 자극적인 사건들을 조명하는데에 시간을 할애할뿐, 그에 맞서는 님의 역할은 별로 나온게 없어요. 님의 역할이라곤 밍에게 악령이 깃들은걸 발견하는것과, 밍을 찾으려 혼자 기도를 드리는것 뿐이었습니다. 인물 홀로 액션을 취한다는건 수동적인 태도인데, 그마저도 감정에 취한 캐릭터를 연민하도록 강요하는 연출이라면 감상주의 영화가 되는것이지요. 이 영화에 그런 부분은 없지만요.

가령 님의 플롯을 깊게 만드려면 이렇게 했어야 합니다.

기존의 관계를 존중하자면 님은 노이에게 바얀신의 무당을 떠맡음으로서 원한의 감정이 있습니다. 님은 조카 밍에게 악령이 빙의한것을알고 퇴마를 하려하지만, 노이는 토속신에 대한 불신이 있고 님과 밍의 접점을 원하지 않습니다. 님은 잠든 밍을 노이 몰래 데려다가 퇴마의식을 자발적으로 진행하지만, 들이닥친 노이에게 저지당하고 밍을 데려갑니다.

님이 다시 밍을 찾아가지만 빙의된 밍은, 노이가 과거에 바얀신의 신내림을 님에게 전가했다고 발설합니다. 이때 자매가 가진 감정의 골이 드러나지만 님은 아랑곳 않습니다. 노이는 님에게 미안함을 느끼지만 님을 문전박대 해버립니다. 빙의된 밍이 사람을 공격하고 노이의 가족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밍을 감당할수없어 무력해진 노이는 님에게 밍의 퇴마를 부탁합니다.  님은  노이가 자신에게 신내림을 떠넘긴  사실을 이미 알고있었고, 오히려 바얀신을 섬길수 있던 삶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플롯을 이런식으로 연출하기는 커녕 님보다는, 빙의된 밍이 일으키는 짓을 보여주는데에 시간을 할애합니다. 버스를 탄 밍이 시민을 때리는것, 직장에서 이상행동을 보이며 하혈하는것, 밤에 일터에 남자들을 데려와 섹스를 하는것, 몽유병처럼 밤중에 깨어나 보이는 흔적들. 이런것들이 영화 중반까지 분량의 60%이상을 차지합니다.

밍의 캐릭터에도 깊이를 만들려면, 빙의되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과 반대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면 됩니다. 밍이 얼마나 가족을 사랑했고, 하고싶은 일이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얼마나 이타적인 사람인지를 조명하면 됩니다. 악령에 빙의되어 자아를 잃은순간 밍이 꿈꾸는 삶이 전부 무너지는것이죠. 이 영화는 밍이 어떤 캐릭터인지를 전혀 말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소란을 피우던 소녀로 시작된 캐릭터는 아무런 생동감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나마 반반한 외모의 배우덕에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 부분이 있긴합니다. 얼굴이 깨끗하던 초반에나 그렇지 거뭇한 분장을 하고서 보이는 기괴한 행동거지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오죽했으면 어린 배우가 어려운 연기하느라 애쓴다며 귀여운 마음이 들정도였으니까요.

만약 가족과 관객이 밍의 구원을 충분히 절실해하도록 깊이를 만들었다면, 밍을 구원하는 님의 의미도 커지게 됩니다. 캐릭터의 생동감, 플롯의 깊이, 이런것만 충분하다면 영화의 결말을 감독 취향대로 이끌어도 대부분의 관객은 불만이 없을텝니다. <곡성>이 그랬죠. 선악을 구분할수 없는 결말에 굉장히 아쉬웠지만, 두시간여를 보아온 영화의 만듦새는 그부분을 부정하여도 까내릴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촬영방식

'극적'이라는 의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스토리 라인을 위처럼 짜야 님의 캐릭터가 더욱 깊이를 갖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극적이지가 않죠. 때문에 리얼리티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촬영방식과 충돌합니다. 차라리 <rec>나 <곤지암>처럼 현장을 영상으로 담으려는 호기심으로 연출한다면 현장감이 살겁니다. 그런데 이영화는 정말 서민적인 '다큐멘터리'를 컨셉으로 연출되었단 겁니다.

다큐멘터리를 즐겨보진 않지만 서민들의 삶을 조명하는 컨텐츠의 목표는 '서정성'이어야 합니다. 이 영화는 태국 이산지방의 토속신앙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거주민들의 삶을 조명하는 방식으로 연출되어 있습니다. 초반부에는 바얀신을 모시는 님과, 토속신앙을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드러나긴합니다. 그러나 밍이 악령에게 빙의되기 시작하면 영화의 초점이 밍에게 전적으로 향해있습니다.  기이하지만 인물들의 삶에 물리적인 영향을 끼치지않는 이상현상이라면 이러한 촬영컨셉이 말이 될겁니다. 가령 <세상에 이런일이>같은 프로그램에서 '어느절에는 기묘한 그림이  있다?'라며 찾아가는 정도의 가벼운 사건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영화에서 보여지는 사건의 크기는 매우 자극적이죠. 빙의된 밍이 보이는 행태는 오히려 <곡성>에서 기껏해야 욕을하고 밥을 개걸스럽게 먹던 효진을 뛰어넘습니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출발하여 '이산지방의 사람들의 토속신앙과 그 문화의 서정성'에 초점을 맞추더니, 그러한 연출과 '빙의된 밍으로 발생되는 호러'라는 소재를 붙이려한게 저는 어울리지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보았던 어느 단편 다큐멘터리중에 어느 여학생이 시골 할머니를 촬영한게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모습을 남기고 싶은 갸륵한 마음에 찍은것이겠거니 했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그 할머니 세대의 어린시절에는 친한 여자애들끼리 팔에 우정의 표시로 문신처럼 자국을 새기는 문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나이든 할머니들의 팔에는 겨우 자국이 남아있을 정도였고, 그것을 기억하는 이들도 얼마 없습니다. 그렇지만 손녀의 할머니가 사는 마을 할머니들은 다들 그것을 기억합니다.

자국이 남은 분도 있고, 없는 분도 있습니다. 우정의 표시로 새긴것이지만 정작 같이 새긴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모른채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었고, 이름조차 잊어 쑥쓰러워하는 할머니도 계셨습니다. 그런게 우리가 잊은채 살아가는 작은것들의 소중함 아닐까 합니다.

나홍진 감독의 원천 스토리이니 나홍진 작품이라고 반쯤 가정하고 글을 써봅니다. <랑종>에서 드러나는 것이나, 기존의 나홍진 감독 작품들을 보면 참 어둡습니다. 저는 나홍진 감독을 그리 좋아하진 않으니 그 매력을 다 알수는 없지만, 특히 <곡성>과 이 영화를 돌아볼때 보이는 태도는 '삶에대한 허무'입니다. 이동진 평론가의 말대로 나홍진 감독의 세계관인것처럼 보입니다.

영화는 결국 악해진 밍을 구원하려는 스토리인데, 결국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죽거나 빙의되면서 끝이납니다. 자신을 구원하려는 자들을 조롱하듯, 숙모의 아기를 흉내내어 꾀는 행동, 님에게 노이의 죄를 고하는 행동, 바얀신이 깃든 노이를 불태워버리는 행동들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것들 막으려는 퇴마사들과 관찰하는 취재진을 죽이는 것에 있어서도 즐기는 태도를 취합니다.

조카를 구원하려던 바얀신의 무당인 님조차 자신의 신앙을 의심해왔단것을 보여주죠. 영화의 결말은 곧 영화의 주제입니다. '우리 도처에 도사리는 악은 분명히 현실이지만, 선은 우리를 구원하지않고 언제나 침묵하지 않느냐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이 영화는 선에대한 배신감과 어떤 선망과, 그리고 커다란 조롱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게 나홍진이 현실을 바라보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과장해서 해석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드라마와 오락영화가 다른점이고, 문학과 장르소설이 다른점입니다. 스토리안의 인물이 느끼는 삶의 깊이는 창작자의 고통과 비례합니다. 인물이 겪는 갈등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며 쓰는것이 드라마입니다. 왜 작가들은 그러한 고통을 감내하면서 써야만할까요. 남의 이야기라면 쉬이 그러지 못합니다. 창작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한 시각, 그것과 맞닿아 있기에 창작자는 타인의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자신의 진실된 감정을 투영합니다. 캐릭터가 아프면 같이 아프고, 캐릭터가 기쁘면 같이 기쁩니다. 단순하게 재미있으려고만 이야기를 썼다기엔, 전작 <곡성>에서 표현된, 딸을 구하려는 종구의 스토리는 깊이가 보통의 것이 아닙니다. 나홍진은 그만의 깊이가 있는 사람입니다.

선이란 것은 마치 신앙처럼 믿는자에게만 다가옵니다. 내가 행하는 선행이 의미있다는 믿음을 가진자에게만 선행이 의미를 갖습니다. 모든 선행이 조롱당하며 죽어 없어지는 <랑종>의 스토리를 보면, 나홍진이 얼마나 세상을 슬픈눈으로 보고있는가가 느껴집니다. 일상에서 스치는 선행들이 그에겐 얼마나 의미없이 지나는 소모적인 것들일런지, 그만큼 혼자만의 세상에 갇힌 사람은 아닐런지 생각해봅니다. 영화가 그저 선을 조롱하지만은 않는것이, 저는 다큐멘터리 촬영을 선택한 이유가 '선행의 서정성'을 연민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종국엔 모든것이 파국으로 치닫지만 선을 믿는 인간의 믿음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조롱하면서도, 쓸쓸한 님의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남긴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이 있는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증오의 감정은 배신감에서 생기는것이라 생각하는데, 나홍진이 스토리를 통해서 보이는 선에대한 조롱은 얼마나 자신이 인간적이고 싶은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않으니,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것이 마음처럼 되지않으니 그 울분을 이러한 스토리로 토로하는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랑종에 별 2.5개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