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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항복은 원자탄 아닌 스탈린 덕분

rank 전설의왕게 2024-07-08 (월) 15:05 조회 : 5547 추천 : 26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6112


1945년 이뤄진 미국의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가 일본을 항복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주장은 허구다. 45년 5월 독일이 패망하면서 천황을 비롯한 일본 지도부는 항복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미 공군은 8월6일 히로시마, 8월9일 나가사키에 원자탄을 투하했고, 8월 15일 일본은 항복했다.


8월 9일 전쟁 개시 이후 최초로 최고위직 6인으로 구성된 최고각의가 열려 무조건 항복 문제를 논의했다.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은 이날 아침에 이뤄졌는데, 이때는 항복을 전제로 회의가 시작된 다음이었다. 사흘 전 있었던 히로시마 원폭의 피해 상황에 대한 육군의 보고서는 8월10일에야 각의에 도착하게 된다. 두 번의 원폭은 지도부의 항복 결정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45년 여름, 미 육군 항공대는 세계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도시 파괴 작전을 수행했다. 일본 전역 68개 도시를 공격해 잿더미로 만들었다. 170만명이 집을 잃었고, 30만명이 죽고, 75만명이 다쳤다. 66번의 공습은 재래식 무기로, 2번의 공습은 원자폭탄으로 했다. 재래식 공격이 야기한 파괴는 원폭보다 심각했다. 공습 1회당 도시 하나에 폭탄 500개를 투하했는데, 그 파괴력은 히로시마 원폭의 4분의 1 수준에 달했다.


일본 본토에 대한 미군의 첫 공습은 3월9일과 10일 밤 도쿄 전역에 걸쳐 이뤄졌고 12만명이 살해당했다. 단일 도시 폭격 사망자수로는 최대치였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때보다 훨씬 많았다. 히로시마에 앞서 미 육군 항공대는 26개 도시를 공습했다. 그중 3분의 1에 달하는 8개 도시는 파괴 정도에서 히로시마보다 심각했다.


일본 최고전쟁지도회의는 소련이 중립으로 남아 있어야 할 필요성은 수차례 논의했지만, 히로시마 원폭의 충격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 최고전쟁지도회의에서 도시 공습 문제는 45년 5월과 8월9일 밤 딱 두 번 논의됐다. 일본 지도부가 원폭을 포함해 공습을 심각하게 여겼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 심지어 8월13일 군부는 원폭이 몇 달 동안 견뎌 온 화염폭탄보다 위협적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일본 지도부가 걱정한 게 공습이나 원폭이 아니라면 그들이 걱정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소련이었다. 45년에 접어들면서 일본 지도부는 강경파든 온건파든 전쟁이 계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연합국(미국·영국·소련)이 요구하는 무조건 항복을 어떻게 피하느냐는 것이었다. 천황을 정점으로 한 기존 국체를 유지하고, 전쟁범죄 재판을 회피하고, 조선·대만·만주·베트남·태평양 등 식민지 영토를 보존하느냐가 관건이었다.


41년 4월 소련과 체결한 중립조약은 5년짜리였다. 46년까지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지도부는 스탈린이 미국과의 항복 협상을 중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도 했다. 반면 군부는 본토에 상륙하는 미군과 결전을 벌여 유리한 항복 조건을 따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구상 모두 45년 여름에 급박하게 일어날 일은 아니었다.


45년 2월 흑해 연안 얄타에서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이 만났다. 소련군은 독일로 진입해 베를린 동남쪽 65킬로미터 지점에 도달해 있었다. 루스벨트는 스탈린에게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요구했고, 스탈린은 독일 항복 후 3개월 안에 소련군이 태평양전쟁에 참전하겠다고 약속했다. 5월9일 소련은 독일로부터 공식 항복문서를 받았다. 스탈린의 약속대로 독일이 항복하고 정확히 3개월째 되던 8월8일 소련은 일본에 전쟁을 선포했다. 다음날 150만명이 넘는 붉은 군대가 만주국을 침공해 일본 관동군과 전투를 벌였다. 적군 일부는 조선으로 진군해 8월11일 웅기, 12일 나진, 13일 청진을 점령했다. 소련군의 공세 앞에 일본 관동군은 오합지졸로 무너져 내렸다.


일본 정보부는 미군이 몇 달 안에 침공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 반면 소련군이 일본에 진입하는 것은 열흘이면 충분하다고 봤다. 소련군의 본토 점령보다 미국에 무조건 항복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지도부는 미국측에 무조건 항복의사를 재빨리 전했다. 미군의 무차별 공습과 원폭으로 자국민 수백만명이 살상당해도 유리한 방향으로 항복 조건을 타결하려 전쟁을 계속하려 했던 일본 지배층은 소련군의 전투 개시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꼬리를 내리고 무조건 항복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군의 본토 점령을 서둘러 허용했다.


* 이 글은 2013년 5월 <포린 어페어즈>에 실린 워드 윌슨의 '일본 항복은 원자탄 아닌 스탈린이 이뤄 낸 것'을 뼈대로 필자의 의견을 덧붙인 것이다.

판타지와 미스테리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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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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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Cryo 2024-07-08 (월) 15:17
개소리 노노.

원폭 영향이 90% 맞음. 그 다음 10%가 스탈린의 만주 공격임.

원폭의 피해 자체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폭탄 한발로 도시 하나를 초토화하고 그 '폭탄 투하를 하러 오는 폭격기를 막을 항공력이 없다'라는게 일제가 깨달은 충격이었음. 구레항 공습 이후로 일본은 해군력과 공군력이 증발했고 일본 본토 공습은 1주에 한번씩 일어나며 일본 전체가 초토화 되고 있었음. 당장 이 시점에서 도쿄는 잿더미가 되서 수도로서의 기능도 마비된 상태임.

왜 딱히 대도시도 아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타켓이었냐고? 그 둘 제외한 일본의 대도시들은 도쿄를 포함해서 이미 본토 대공습으로 초토화됬으니까 ㅉㅉ

이제 남은 상징적 대도시는 딱 하나, '천황이 있는 교토'임. 즉 당시 일제의 상징인 '천황이 있는 교토가 다음 원폭 타겟이 될 수도 있다'라는 위기가 도쿄 대공습 이후에 사실화됨.

무엇보다 원폭의 파괴력도 충격이지만 이 원폭이라는 신형무기를 이제 한달에 한번씩 모든 일본 국토에 뿌린다라는 일제의 물리학자와 과학자들이 경고하면서 일본 군부는 쇼크먹음.

당연히 원폭 전에도 일제는 항복은 논의했지.

그런데 그 항복 조건 내용이 천황제 유지, 한반도 식민지 유지, 전범재판은 일본이 스스로 등 말도 안되는 조건을 걸어서 항복을 하는 과정이 너무 지리멸렬했고 무엇보다 당시 일본 군부의 통제파가 항복을 결사반대했음. 즉 일본은 항복을 원폭 이전부터 논의했지만 '아 그래도 1억 총옥쇄로 버텨볼까 그러면 연합군이 전쟁 지속이 부담되서 우리가 내건 항복 조건으로 종전하지 않을까'라는 비현실적 망상이 아직도 군부 전체에 퍼져있어서 항복 논의 자체가 주류는 아니었음.

원폭이 떨어지고 일본은 이제 방공력이 원폭 투하를 막을수 없을 정도로 초토화되었단걸 다 깨달았고 '그럼 항복 조건을 좀더 무난하게 바꾸는걸 논의하자' 하다가 마침 스탈린이 만주를 공격하면서 '아 안되겠다 소련, 미국한테 양자 영토분단 되느니 그냥 미국한테 점령당하게 무조건으로 항복하자'로 바뀐거임
goodgoodgoodgoodgood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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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2
rank하늘구름들 2024-07-08 (월) 15:22
미국의 원 목표는 2발의 리틀보이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이 항복하지 않고 좀더 군사적으로 힘을 냈다면 지금은 농경국가로서 세계에 이바지하는 훌륭한 국가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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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정치와종교는정신… 2024-07-08 (월) 15:10
원폭때문이 맞음.
반박시 글쓴이가 맞음
추천 4
rankNophist 2024-07-08 (월) 15:11
역전다방에서도 이 내용 이야기 했었죠. 핵폭탄의 영향은 후대에 와서 점차 부풀려진거지 사실 당시에는 피해규모도 대공습에 비해 그리 큰편도 아니고, 딱히 중요한 지역을 타격한것도 아니기에 그다지 영향이 큰건 아니었다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판단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알수 있는 사례.
추천 4
rankCryo 2024-07-08 (월) 15:17
베플로 선택된 댓글입니다
개소리 노노.

원폭 영향이 90% 맞음. 그 다음 10%가 스탈린의 만주 공격임.

원폭의 피해 자체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폭탄 한발로 도시 하나를 초토화하고 그 '폭탄 투하를 하러 오는 폭격기를 막을 항공력이 없다'라는게 일제가 깨달은 충격이었음. 구레항 공습 이후로 일본은 해군력과 공군력이 증발했고 일본 본토 공습은 1주에 한번씩 일어나며 일본 전체가 초토화 되고 있었음. 당장 이 시점에서 도쿄는 잿더미가 되서 수도로서의 기능도 마비된 상태임.

왜 딱히 대도시도 아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타켓이었냐고? 그 둘 제외한 일본의 대도시들은 도쿄를 포함해서 이미 본토 대공습으로 초토화됬으니까 ㅉㅉ

이제 남은 상징적 대도시는 딱 하나, '천황이 있는 교토'임. 즉 당시 일제의 상징인 '천황이 있는 교토가 다음 원폭 타겟이 될 수도 있다'라는 위기가 도쿄 대공습 이후에 사실화됨.

무엇보다 원폭의 파괴력도 충격이지만 이 원폭이라는 신형무기를 이제 한달에 한번씩 모든 일본 국토에 뿌린다라는 일제의 물리학자와 과학자들이 경고하면서 일본 군부는 쇼크먹음.

당연히 원폭 전에도 일제는 항복은 논의했지.

그런데 그 항복 조건 내용이 천황제 유지, 한반도 식민지 유지, 전범재판은 일본이 스스로 등 말도 안되는 조건을 걸어서 항복을 하는 과정이 너무 지리멸렬했고 무엇보다 당시 일본 군부의 통제파가 항복을 결사반대했음. 즉 일본은 항복을 원폭 이전부터 논의했지만 '아 그래도 1억 총옥쇄로 버텨볼까 그러면 연합군이 전쟁 지속이 부담되서 우리가 내건 항복 조건으로 종전하지 않을까'라는 비현실적 망상이 아직도 군부 전체에 퍼져있어서 항복 논의 자체가 주류는 아니었음.

원폭이 떨어지고 일본은 이제 방공력이 원폭 투하를 막을수 없을 정도로 초토화되었단걸 다 깨달았고 '그럼 항복 조건을 좀더 무난하게 바꾸는걸 논의하자' 하다가 마침 스탈린이 만주를 공격하면서 '아 안되겠다 소련, 미국한테 양자 영토분단 되느니 그냥 미국한테 점령당하게 무조건으로 항복하자'로 바뀐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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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로야네 2024-07-09 (화) 11:50
@Cryo

초반부에 '원폭의 피해 자체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히모시마 원폭으로 인한 사망자수는 약 14만명, 나가사키는 7만명 + 11만명(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피해) = 18만명으로 추산됩니다.

1방에 10만명이 넘게 사망했는데 피해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추천 1
     
       
ranktarzan 2024-07-11 (목) 19:20
@Cryo

팩트 체크를 해드리자면 천황은 이미 1868년에 신군부가 에도를 도쿄로 이름 바꾸고 이주 시켰습니다.
추천 1
          
            
rankCryo 2024-07-13 (토) 21:43
@tarzan

정확히 말하면 신군부가 존황양이의 이념을 받들어 앞으로는 덴노가 직접 일본을 통치한다는 생각으로 황궁 일가를 도쿄로 이주를 한것이지 교토 자체가 덴노의 상징성을 버린것이 아닙니다.

무진전쟁 이후 대정봉환이 1867년 이루어지고 1868년에 메이지유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러일전쟁에 이르었을때 메이지 덴노와 전쟁성이 함게 군령과 군정을 주관한다는 목적으로 대본영 본부가 도쿄에 설립됩니다. 그래서 덴노가 일단 도쿄에 거주를 한 것이고 애초에 당시 군의 요직과 수상들까지 덴노 주변 화족들이 독차지 했어요. 당연히 국가 운영과 군령을 행사하는 주체들이 덴노계와 화족들이었기 때문에 원래 교토에 있던 그들이 죽 도쿄에 이주한 것입니다. 당장 군부가 일본을 접수하고 도조 히데키가 총리와 육군대신을 지내기 직전에 총리를 지낸 고노에 후미마로도 대정익찬회의 총재였고 고노에 가문은 당시 일본 귀족가이던 후지와라 씨 화족의 혈통을 잇는 5개 가문인 고셋케중 하나로서 엄청난 명문가였습니다.이후 쇼와 덴노도 요양을 가거나 휴가를 갈때 교토로 종종 돌아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연합군이 끝까지 교토를 폭격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덴노와 화족들의 심장부 상징이 교토라서 그렇습니다. 이건 실제로 1945년 5월 30일 회의. 맨해튼 계획 책임자인 그로브스 장군의 회고록에 남아 있어요. 교토는 고중세 헤이안 시대부터 근대 메이지 시대 초까지 천년 이상을 일본의 수도를 겸했고 전쟁 시점인 1940년대에는 수도 지위를 잃은 지 불과 70여 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공식적으로 일본 문화와 역사를 응축한 고도이자, 언젠가 덴노가 다시 돌아올 고향이라는 국가적인 상징적 인식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상징적인 도시가 미군의 폭격으로 지워버리면 오히려 일본인들의 저항 의지에 불을 붙일지 모른다는 현실적인 판단에 교토를 제외했지만 몰락작전이 공식화되면 당연히 교토가 1순위 폭격 도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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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viper222 2024-07-13 (토) 12:45
@Cryo

당시에 만주에 관동군이 백만이었는데
소련군이 독일을 점령하고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군대를 이동 시켰고 관동군과 정면으로 붙었는데
일본군이 참패를 합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한반도를 최후의 보루로 이용하려고 했는데
소련군의 파죽지세의 남하로 결국 한반도도 포기 할 만큼 후퇴하고 한반도에 소련군이 진입하게 되죠

소련군에 항복하느니 미국에 항복하는게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됩니다.
만주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절대 항복 안했을 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SYV4UOzNIo&t=11s
추천 0
          
            
rankCryo 2024-07-13 (토) 21:17
@viper222

좀 재대로 된 팩트와 소스로 딴지를 거세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틀린 정보라서 뭐부터 만져줘야 할 지 그냥 짜증이 나네요

먼저 관동군은 단 한번도 총병력이 100만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루거우차우 사건 이후 중일전쟁이 본격화 되면서 인접한 소련군이 할힌골 전투에서 생각보다 강력한 저력을 일본군에게 보여주었고 대본영에서는 1941년 관동군의 전력을 대폭 강화하기로 결정하여 최대 14개 사단까지 증강시킵니다

이때가 관동군의 최전성기였는데 당시 병력이 일시적으로 74만이었고, 중국 대륙의 전쟁이 점점 장기화되면서 남방군으로 군대가 계속해서 차출되어 관동군은 41년의 정예 숫자를 절대 회복하지 못합니다. 아마 백만이라는 말은 당시 일본의 괴뢰국인 몽강자치국군, 만주국군 관동군의 병력까지 모두 합친 숫자일텐데 이 병력들은 괴뢰국들이 독립 의지를 가질까봐 숫자만 대충 만들고 무장은 안해준 그냥 서류상의 병력일뿐입니다. 이후 소련일본중립조약으로 만주 지역의 위기가 감소하고 태평양 전쟁이 터져 남방군과 태평양 주둔군의 전력을 증강해야 했기 때문에 육군 참모본부는 관동군의 정예 병력을 남방군으로 재배치하여 1943년 이후 관동군의 전력은 급격히 약화됩니다. 그러니까 이미 종전 2년전부터 관동군은 숫자만 대충 채운 쓰레기 오합지졸이었어요. 특히 이치고 작전으로 마지막 남은 관동군의 정예병력을 전부 지나전선으로 차출하면서 관동군은 완전히 2선급 후방부대로 전락합니다. 얼마나 심각했냐면 이때 긴급히 총동원으로 확충한 관동군은 78만이었는데 병력의 대부분이 65세이전의 중장년층 예비역이었고 소총조차 없어서 단위 부대 전체가 칼과 창으로 무장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애초에 이 시점은 일본 본토도 죽창으로 부대를 무장시킬 정도로 산업과 자원이 파괴된 상태였습니다. 당연히 소련군이 만주로 쳐들어와도 무장도 변변찮고 훈련도 안받은 숫자만 많은 관동군은 싸우지도 않고 항복했고 특히 제일 빨리 항복한 관동군 육군 139사단 사단장이 그 유명한 무능장군 도미나가 교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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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Cryo 2024-07-13 (토) 21:25
@viper222

당시 소련군이 만주로 들이닥치고 중국 국민군은 만주국과 몽강자치국까지 휘몰아쳐 멸망시켰고 곳곳에 남은 대륙의 남은 일본군 주둔지는 중국 공산당의 유격군 공세에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에 맞서야 하는 관동군 병력은 숫자는 노장년층 예비역과 헌병, 경찰, 공무원까지 다 합해서 78만이라는 서류상 숫자는 충족했지만 전차대대는 커녕 소총조차 재대로 없는 그냥 동네 순찰대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상대해야하는 소련군은 독소전쟁이후 재대로 강성해진 군대에 지휘관도 명장 게오르기 주코프인데다가 아래에서는 수년간의 대일항쟁으로 경험치 재대로 받아 전투력으 강해진 국민당군과 공산당군이 치고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아예 소련군은 1주일만에 거의 1,000km를 주파하는 기동력을 보여줬는데 심지어 소련군의 주공도 아니고 조공 병력이 8월 15일에 한반도 함경북도 중부인 나남까지 진출해서 한반도 일부 적화까지 달성했습니다. 이미 서류상 숫자만 70만으로 간신히 만든 종이 호랑이가 된 관동군이, 당대 세계 최강 독일군을 격파한 소련군의 상대가 될 리가 없고 자신들의 육군 지나전선 정예병력과 싸우며 전투 교리를 톡톡히 세운 중국군의 상대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즉, 만주는 어차피 멸망할 운명이었고 그 운명은 일본 스스로가 전선을 늘려 한정된 자원과 인구를 집중시키지 못해 만든 자업자득이었습니다. 산업공업단지도 석유도 인구도 바닥나고 본토는 이미 멸망 수준이라 증원과 보급도 못받는 만주가 도대체 무슨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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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Cryo 2024-07-13 (토) 21:32
@viper222

정리하자면 이미 운명적으로 만주는 멸망 확정이라 [만주가 함락안됬으면 일본은 절대 항복하지 않았다] 라는게 논리가 성립이 안됩니다. (그리고 저 주장 자체가 일단 굉장히 무식하고 2차대전 배경 지식이 전혀 없다는거 셀프 인증하는것이고) 이게 어느 수준이냐면 '히틀러가 외계종족 은하제국과 접선하여 초공간도약 미래기술을 전수받았으면 2차대전을 승리했을것이다' 라는 수준입니다. 역사에서 IF는 의외로 당시의 고증을 살려 현실적으로 다른 과정을 내는 것이지 아예 말도 안되는 판타지 상황을 만드는게 아닙니다. '일본이 당시 2차대전때 초능력자 군을 양성하여 슈퍼재팬맨 백만병력이 세계를 통일했다'는 IF가 아니라 그냥 SF에요. 그리고 '만주가 함락안됬으면 일본은 절대 항복하지 않았다'가 그 SF수준이구요.

만주가 무너지지 않았어도 이미 일본 본토는 핵폭격 2방과 본토 대폭격으로 국가 자체가 멸망 수준인데, 본토가 망했는데 뭘 항복을 안합니까? 심지어 미국은 올림픽 작전과 몰락작전으로 일본 전체에 핵무기를 뿌리고 미군 상륙으로 아예 멸망시키는 방안까지 고려되었고 아무 자원도 없는 만주는 아무 전략적 가치도 이 시점에는 없습니다. 중국대륙을 잃고 소련군이 쳐들어온 상황에서 만주는 그냥 일본 패망을 하루정도만 늦춰주는 방파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몰락작전이 시작되면 한반도도 폭격 대상이었고 무엇보다 만주를 멸망시켜 한반도에 진입한 소련군이 일제 항복에 큰 역할을 했고 그 역할의 발단이 만주의 필수적인 멸망인데 왠 타임 패러독스 주장을 하시는지?

그 어떤 학자도 학계도 '만주가 함락안됬으면 일본은 절대 항복하지 않았다'라는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일본 학계 스스로도 절대 안하고 있고 만약 그 주장이 정설로 학계에서 새롭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면 한번 제게 그 증거를 보여주세요. 아마 100% 없을겁니다. 왜냐면 그 주장은 님이 댓글을 쓸때 '님 뇌피셜로 지어낸 것'이기 때문이지요.
추천 0
          
            
rankCryo 2024-07-13 (토) 21:52
@viper222

솔직히 일뽕(높은 확율로 윤서인 같은 븅신들), 나치빠 (높은 확률로 역사가 좋은게 아니라 그냥 나치 제복이 멋있어서 2차대전 대충 핡는 븅신들) 또는 전공도 아니면서 대충 역사 소설이나 게임으로 겉핡기식 지식 대충 채운 사람들, 이 부류의 사람들이 얼마나 짜증나고 귀찮냐면 진짜 변변한 배경지식도 없으면서 소스조차 재대로 되지 않은 예능 프로나 일개 개인의 블로그, 유튜브 쇼츠, 커뮤 게시글로 가져와 마치 자신이 2차대전 전문가마냥 빙의해서 주장할때 우스움을 넘어서 그냥 귀찮습니다. 적어도 저처럼 전공자가 아니라면 최대한 학계 정설만 딱 장착하고 논문들로 소스를 가져오고 개인적인 뇌피셜을 절대 섞지 않는 매너라도 보이던가 원...
추천 0
rank하늘구름들 2024-07-08 (월) 15:22
베플로 선택된 댓글입니다
미국의 원 목표는 2발의 리틀보이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이 항복하지 않고 좀더 군사적으로 힘을 냈다면 지금은 농경국가로서 세계에 이바지하는 훌륭한 국가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good 추천 5
     
       
rankCryo 2024-07-08 (월) 15:28
@하늘구름들

그렇죠. 원폭 투하 이후 몰락 작전으로 원폭을 남은 모든 일본 도시에 뿌린다는 계획이었고 저 시점에서 미국은 원폭을 한달에 1기씩 대량 생산하는 단계에 들어갔음.

'원폭이란 좀 쎈 무기를 두 방 맞았다'가 아니라 '원폭이란 좀 쎈 무기가 이제 무한대로 일본 영토에 쏟아지고 천황도 그 타켓에 포함된다' 가 가장 큰 충격이었죠.

별 확실하지도 않은 가짜뉴스로 저런 글을 퍼뜨리는 이유가 먼지 모르겠음
추천 4
          
            
rank전설의왕게글쓴이 2024-07-08 (월) 15:40
@Cryo

본문 가짜뉴스 아닌데요?
원폭이 아니라 소련군의 참전이 일제의 패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건,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인정한 사실입니다.

https://cafe.daum.net/historywar/Nwp/3146
"日 항복, 원자탄 아니라 소련의 참전 때문" LA 김태환회장
"미국, 소련 의식해 원자탄 투하" 주장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미국이 일본에 두 발의 원자탄을 투하한 것은 소련의 남하를 의식한 것이며, 일본이 항복한 결정적 원인은 원자탄이 아니라 소련의 전쟁 선포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LA의 현대사료연구가인 김태환씨는 나가사키(長崎) 원폭 투하 70주년인 9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항복은 1945년 8월6일과 9일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에 연속 두 개의 원자탄을 맞은데 따른 것이라고 대부분이 믿지만 항복의 결정적 이유는 소련 때문이며, 미국은 소련의 대일 참전에 앞서 항복을 받으려고 원자탄을 투하했다"고 밝혔다.
김태환씨는 "영어 일어 러시아어에 정통한 하세가와 추요시 UC 산타바바라대 교수가 저서 '적과의 경쟁(Racing the Enemy)'에서 '일본은 원자탄 때문에 항복한 것이 아니라, 연합국과 종전을 중재해 줄 것으로 믿었던 소련이 대일 선전포고후 무서운 속도로 만주를 휩쓸고, 거의 모든 정예 관동군을 섬멸, 그 기세로 일본 본토쪽으로 진군한다면, 막을 도리가 없으니 본토만이라도 미국의 보호를 받는 쪽이 낫다고 판단해서 항복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고 소개했다.
추천 2
               
                 
rank전설의왕게글쓴이 2024-07-08 (월) 15:41
@전설의왕게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5074840
태평양전쟁의 종결에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와 소련군의 만주 침공 중 어디가 더 기여했는지에 대해서 당대 일본 대본영은 하루도 안 되어 쏟아진 두 개의 대파국 중 어느 쪽을 더 심각하게 여겼을까요?
일본계 미국인 역사학자 하세가와 쓰요시 박사는 나치 독일 패망 직후부터 소련의 만주침공에 이르는 3개월간의 소련-일본-미국간 외교상황의 전개를 다룬 저서 『종전의 설계자들』에서 흥미롭게도 소련의 기여를 더 고평가하는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하세가와 박사는 소련의 대일전 참전이 없었다면, 일본이 빨리 항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결론부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군사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소련의 중립에 의존하고 있었다. 외교적으로는 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소련의 알선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었다. 따라서 원폭투하가 계기가 된 것이 아니라, 소련이 전쟁에 참가했을 때 비로소 일본 위정자들은 포츠담선언을 수락하지 말지의 결정에 직면하게 됐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큰 도박이었다. 그 때문에 첩보부가 소련이 극동에서 군비 증강을 하고 있다고 경고했을 때 육군성 군무국은 이를 무시했던 것이고, 소련 참전 전날까지 소련의 중립 유지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군에게 소련이 가진 중요성은 소련 참전 뒤에도 여전히 소련과의 교섭이 가능하다고 믿었고 소련에 대해 선전포고하는 것을 거부한 사실로도 뒷받침된다. (중략) 따라서 소련군이 만주를 침공했을 때 일본군은 큰 충격을 받았다. 소련 참전은 일본군의 결호작전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고,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일본군의 주장에 설득력이 없어졌다. 바로 소련의 참전이 직접적인 계기가 돼 육군이 전쟁종결을 인정하게 됐던 것이다.”
-하세가와 쓰요시 (한승동 옮김), 『종전의 설계자들: 1945년 스탈린과 트루먼, 그리고 일본의 항복』 (메디치, 2019), p. 595.
추천 1
                    
                      
rank전설의왕게글쓴이 2024-07-08 (월) 15:46
@전설의왕게

https://yes24.com/Product/Goods/12901746
2014년에 출간된 군사 서적 <핵무기에 관한 다섯 가지 신화>의 저자인 워드 윌슨도 비슷한 주장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자, 일본 정부와 군부의 주요 인사들은 한결같이 원폭 때문에 항복을 했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워드 윌슨은 그것이 일본 정부의 교묘한 책략이라고 말합니다.
일본이 항복하게 된 것이 무모하게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간 일본 정부의 잘못이 아니라 미군의 핵무기 때문이라고 그 책임을 돌려버린다면 일본 상층부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고, 아울러 원폭 사실을 부각시킴으로써 일본은 전쟁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 행세로 슬그머니 동정론을 사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추천 1
                         
                           
rankCryo 2024-07-08 (월) 15:55
@전설의왕게

소련의 만주 공격이 결정적인 역할을 당연히 했죠.

그런데 원폭도 만만치 않게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구요.

이미 항복 논의는 원폭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일본의 항복 조건이 연합군이 거부하고 일본은 소련이 중립에서 서서 항복중재를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그 중재하는게 '일본이 내건 항복조건을 수용해줘라'가 그 이유구요,

당연히 독소전쟁이 마무리된 시점에서 소련은 그 요구를 들어줄 필요도 없고 중국 대륙의 중국 공산당과 몽골 공산당을 넘어 극동에 일본 영토에 군사력을 투사해서 태평양으로 나갈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만주국을 공격합니다.

그런데 저 시점전부터 항복은 이미 논의가 되고있었다구요. 소련 만주 공격 이후에 그냥 조건 없이 항복하자고 결론니 난거구요.
추천 3
                         
                           
rankCryo 2024-07-08 (월) 16:02
@전설의왕게

그리고 님은 근거로 가져오신게 책 한권이랑 클리앙 인터넷 커뮤니티의 익명 작성자의 자유게시판 글, 언론 사설 오피니언 리더인데 저는 아예 학회 논문을 가져와 드리죠.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0765027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의 「和平工作」과 연합국의 대응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030029
소련군의 대일전 참전과 러시아에서 본 광복의 의의 및 평가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160610
8.15 해방에 있어서 소련군의 참전요인과 북한의 인식 변화

보시면 소련의 대일본 최후반 참전을 다루면서 그 직전까지 이루어진 미국의 일본 본토 점령이라는 충격을 절대 부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위에 말한 '원폭 영향이 90% 맞음. 그 다음 10%가 스탈린의 만주 공격'이라는 의미는 일본이란 국가를 완전히 파괴하는 진영이 누구였냐는 겁니다. 미국은 일본의 군사력을 분쇄했고 일본의 결사사수선을 뚫었고 일본의 남방 식민지와 점령지를 모조리 해방하고 오키나와를 점령하고 일본 본토의 70% 이상을 공습으로 매일 파괴하다가 원폭으로 마무리를 지었어요. 물리적인 국가 파괴는 미국이 모두 전담했지만 항복의 주체가 될 일본 천황과 군부가 있는 교토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망상에 빠진 광기에 들어찬 일본 군부는 항복을 하되 말도 안되는 항복 조건을 우긴겁니다. 일본은 심지어 연합군의 포트담 선언이라는 최후의 항복 권유도 거부하고 원폭을 맞았어요.

소련의 대일참전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소련을 띄우기 위해 미국의 2차대전 역할을 대폭 폄하'한다는 것입니다.
good 추천 5
                         
                           
rankCryo 2024-07-08 (월) 16:05
@전설의왕게

미국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을 이기지 못했다고 합시다
미국이 레이테 만 해전에서 일본을 못이기고 연합해군력을 고스란히 간직하게 해줬다 합시다
미국이 일본의 남태평양과 남아시아 식민지를 해방 못시켰다 합시다
미국이 일본의 펠렐리우, 이오지마 진공을 못했다 합시다
미국이 일본의 태평양 방어선을 못뚫었다고 합시다
미국이 일본의 필리핀, 대만 등 동남아 식민지를 해방못시키고 점령지로 탈환못했다 합시다
미국이 일본 본토를 진공하지 못했다고 합시다
미국이 일본 도쿄를 공습하지 못했다고 합시다
미국이 일본 대도시들을 대폭격을 못했다고 합시다
미국이 일본 오키나와를 점령하지 못했다 합시다
그렇게 일본이 경제력, 군사력과 태평양, 아시아 전체의 식민지를 유지했다고 합시다.
그렇게 일본이 석유와 자원 루트를 그대로 유지했다고 합시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못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소련이 독소전쟁이후 대일본참전을 하면서 만주를 공격했습니다

...그럼 과연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을 했을까요? 본토는커녕 식민지들도 멀쩡한데?

당시 연합군은 1차대전때 독일이 본토 점령을 안당하고 항복해서 다시 전쟁의지를 끌어올렸다는 교훈에서 이번에는 모든 추축국의 본토를 직접 파괴하고 점령한다는 계획으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본토를 철저히 파괴하고 점령했습니다.

일본을 항복하게 그 모든 국력을 분쇄하고 소련의 대일참전으로 막타를 치게한 그 체력깎기 역할을 누가 했고 그 역할이 과연 아무것도 아닌 미미한 역할입니까?

일본 항복에서 미국의 역할이 미미하다는게 학회의 정설이라고요? 어느 학자, 어느 공식 논문이 정설로 채택됬나요? 학회의 정설은 '미국이 일본의 실체적 국력을 모두 파괴했지만 일본 군부는 조건적 항복으로 망상적 협의를 하면서 포스탐 항복 요구를 거부했고, 분노한 미국은 원폭을 하였고 막판에 소련이 향후 극동 세력 투사를 위해 대일참전을 선택함으로서 일본군부는 결국 연합국의 본토 점령 의지를 깨닫고 무조건 항복했다' 인데요?
추천 3
                         
                           
rankCryo 2024-07-08 (월) 16:22
@전설의왕게

1차 원폭 투하 이후 니고연구의 총책임자이자 일본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화학연구소의 니시나 요시오(仁科芳雄) 박사가 원폭 투하 다음날인 8월 7일에 히로시마에 도착하여 현장을 조사하고, 히로시마에 떨어진 폭탄이 원자폭탄임을 확인해 주었다.

따라서 일본군 정보부에서는 그것이 원폭이라는 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당장 위의 니시나 박사의 히로시마 방문조사에는 정보부서를 담당하는 참모본부 제2부장이던 아리스에 세이조(有末精三) 중장이 동행하고 있었고 그는 니시나 박사로부터 이것이 원자폭탄임이 분명하다는 보고를 받았으나 대본영은 여전히 그럴 리가 없다고 일관하고 있었다.

군령부 총장 도요다 소에무는 원자 폭탄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신무기의 존재를 인정하였지만 그 수가 적을 것이니 본토 결전 이행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육군 대신 아나미 고레치카의 경우 아예 원자폭탄인지도 확실하지 않다며 원폭 투하 보고를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상층부는 현실도피 & 인지부조화에만 몰두하고 있었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지도부는 항복과 관련된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다.

사실 일본에게 항복 의지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다. 이미 소련을 통한 대미 강화 협상은 진행 중이었고, 국체의 온존 및 약간은 온건한 방식으로의 강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당연히 이런 조건이 받아들여질 리는 없었다. 이미 연합국과 대일 참전을 약속까지 하고 독일 전선에 배치되어 있던 소련군들을 동아시아 전선으로 이동 배치하고 있던 소련으로서도 대의적으로나 실리적으로나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추천 0
                         
                           
rankCryo 2024-07-08 (월) 16:24
@전설의왕게

원폭 투하 이후 군부와 정부가 모두 항복에 동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천황제를 유지한다는 조건만 붙이고 싹싹 빌어보자는 화평파와, 연합군의 일본 점령을 최소한도로 단기간에 끝마쳐야 하며 무장 해제와 전범 재판을 일본이 직접 할 것이라는 조건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어이 없는 조건을 내거는 강경파가 서로 충돌하면서 항복은 지체되었고, 미국은 어쩔 수 없이 한 발을 더 투하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이 화평파와 강경파의 갈등은 이미 늦은 상태였다. 화평파가 입장을 확고히 정리한 것이 8월 7일 저녁이었는데, 군부가 꾸물거리는 바람에 항복을 결정할 최고전쟁지도회의가 8월 8일 열리지 못하고 8월 9일, 즉 나가사키 원폭 투하일에서야 열렸다. 즉 이들이 무슨 결정을 내리건 일본의 히로시마에 대한 대응은 너무 늦었던 것이다. 심지어 8월 9일 회의 중에 2번째 핵이 떨어질 때까지도 일본 지도부는 미국에게 더 이상 핵이 없을 거라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2차 원폭 이후 일본제국의 모든 군부는 더 이상 연합군을 상대로 어떠한 형태의 흥정과 저항도 불가능하다는 걸 드디어 인정했다. 원폭이 히로시마의 1회성 단발 이벤트 형식이 아니게 된 이상 언젠간 핵탄두가 전쟁 내내 폭격을 비껴간 교토에 떨어질 게 사실상 확정이라 여겼으며, 그렇게 황실의 정신적 수도인 교토에까지 원폭이 투하되는 순간 일본 제국군은 모든 형태의 명분까지 잃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이 이상 전쟁을 계속한다면 국민이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일본 수뇌부에겐 참혹한 최후만이 기다릴 것이라는 인식이 지휘부 대부분의 머리에 단단히 박히게 된다.

결국 항복 내용은 1945년 8월 15일 정오, 이른바 옥음방송이라 하는 쇼와 덴노의 녹음된 목소리를 직접 방송하였다.
추천 0
               
                 
rank경비10년 2024-07-09 (화) 18:46
@전설의왕게

만주

즉 일본에 대한 선전 포고는
그냥 숟가락 얻기 입니다

아시아에서 싸움은 미국  위주 였습니다
추천 0
          
            
rank적폐의목을쳐라 2024-07-09 (화) 10:25
@Cryo

정정할 사항이 있어서 첨언을 하면 일본에 33발의 원폭을 투하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싸인까지 했으나 결정적으로 원폭을 그렇게 많이 만들 돈이 미국에 없었음.. 그래서 못했음...
추천 0
rank나쁜돌 2024-07-08 (월) 15:35
겜으로 풀이하면...
스탈린이 보스몹 막타치고 스틸했다는거임...
추천 1
rank치하루 2024-07-08 (월) 15:36
원폭영향에 지금도 고통받는다고 미국이 가해자니까 사과하라고 하는 나라인데
원폭 피해는 폭발력이 문제가 아닌 방사능과 그 이후 문제임
추천 1
rank슉슉퐁퐁 2024-07-08 (월) 20:58
일본의 비극은 군사정권의 확장정책으로 재미를 보는 바람에

군사정권이 정치를 잠식하도록 뒀다는 것이고

결국 그 유명한 육군/해군의 반목은 우리나라로 치면 야당/여당간의 싸움같은 것이었네요;;
추천 0
rank끄떡이 2024-07-09 (화) 00:22
원폭
때문만은 아니고,
소련의 참전도 영향을 끼쳤다
추천 0
rank포포성 2024-07-09 (화) 00:43
몇방 더 맞을수 있었다는 말?
추천 0
rank자리버리어 2024-07-09 (화) 00:57
추천 0
rank핑크보호주의 2024-07-09 (화) 03:27
가장큰건 일본왕실이 안전하지 않다라는것임

뭔 개소리를 주구장창하게 써놨데
추천 1
rank렙소디 2024-07-09 (화) 06:43
이래서 책 한권만 읽은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고 하는거임.
스탈린이 결정적이었으면 소련에 항복했지 미국에 항복 안했음.
추천 3
rank롤플 2024-07-09 (화) 08:12
원폭 일정도 소련의 남하 시기보다 더 이르게 해야한다고 결정된걸로 알아요.
직접적으로는 원폭이있지만 실질적으론 소련이 그걸 촉발시킨건 맞는듯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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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jaosun 2024-07-09 (화) 09:05
완전 반대지..도쿄 초토화 되고도 일본이 항복 조건에 천왕제 유지. 전범 자체 처벌을 말했음
미국은 당연히 동의하지 않았고 일본은 소련이랑 협상하기로 이야기가 되서 소련군이 굳이 일본까지 온거
그래서 소련군이 일본 상륙전에 끝내려고 급하게 핵폭탄를 투하하죠. 그래서 투하지점에 도쿄나 교토가 없는겁니다. 일본을 박살내는게 목적이 아니라 빠른 항복 받아내는게 목적이였으니깐요
추천 0
rankqor가면 2024-07-09 (화) 12:42
추천 0
rank차가초팅캉 2024-07-09 (화) 15:03
얄팍한 지식의 위험성
추천 0
rank고독사랑 2024-07-09 (화) 17:48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핵을 안쓰고 소련이 일본까지 내려와 미국과 같이 일본점령의 지분이 있었다면
한국말고 일본이 반으로 쪼개졌을꺼라고 알고 있습니다.
소련이 원한건 부동항 이였고 미국은 그걸 막기위해 소련의 지분을 주기 싫어 핵을 쏴서 빨리 항복을 받아냈다라고 들었어요
추천 0
rank디아블레이드 2024-07-09 (화) 19:55
그때 일본이 지구에서 사라졌어야 하는데.... 아쉽지요,,
추천 0
rankszabc123 2024-07-10 (수) 00:12
전 50대 50 정도로 봅니다
아무래도 소련이 냉전당시 적대진영이였다보니 역할이 많이 축소된거같은데
만주작전이 진짜 치명적이였죠 허수아비니 뭐니 해도 괴뢰군포함하면 100만이나 존재했던 군대를 단 2주만에 삭제해버렸으니
무엇보다 43년 기점으로 이미 패망을 예견했던 일본의 마지막 창구가 소련이였는데
소련조차 일본에 확정적으로 뒤돌렸으니 일본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느꼈을겁니다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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