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북한의 현실 중에 세뇌교육이란 것에 대해 열성적으로 설명하던 담임 선생에게 나는 이런 질문을 했다.
'지금 우리도 세뇌교육하는거 아닌가요?'
이 질문으로 나는 교무실에도 불려가 꾸지람을 들었다. 당시엔 말빨이 딸려서 선생과 제대로 말로 붙기가 어려웠지만 내가 하고 싶던 얘기는 이거 였다.
세뇌교육은 세뇌교육이란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이 아니다. 만약 남한이 살기 어렵고 비참한 세상이라고 배우는 것이 세뇌교육이라면, 지금 우리가 북한에 대해 배우는 것 역시 세뇌교육이다.
당시에 이렇게 말로 표현하지 못한 것이 한이되어 나는 다음 날 글을 써서 선생에게 보냈는데, 선생은 아이들 모아놓고 너희들은 우리가 지금 세뇌교육 받고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당연히도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니오'를 합창했다.
선생이 내 말의 의도를 이해못했는지, 아님 알면서도 저런식으로 편리하게 문제제기를 피해가려 했는지는 영원히 모를 수 있다. 그 선생은 아마 뒈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그 선생에게 실망하기 보다, 남한에 대한 실망이 컸다.
당시 울 아버지는 군무원이었기에 잡지, 신문, 서적 등 북한관련 자료는 집에 넘쳐났다. 그 자료들을 모두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그 수많은 자료들을 통해 인지할 수 있던 한가지 사실은, 북한과 남한의 모습이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북한에서 간첩과 무장공비를 내려보내듯, 우리도 간첩과 무장공비를 올려보내고, 북한이 우리 대통령 욕하듯, 우리도 김일성 욕했다.
이것이 아마도 내 맘 속의 애국심이란 것에 금이가기 시작한 최초의 사건이었을 것 같다. 그 뒤로 나는 당시 한국의 사회상에서 봤을 때, 심각한 반체제, 불순분자, 용공, 좌경, 빨갱이 성향으로 기울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해, 위인전 간디에 대한 독후감에서 간디가 위인이 아니란 식의 글로 학교를 또 한번 시끄럽게 했던 일은, 그 후 평생에 걸쳐 고수해 온 비판적 태도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였다고 본다.
결국 내 비판적 태도의 출발은, 그토록 위대한 존재라고 믿었던 국가에 대한 실망이었다. 그 후,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내 안에 들어와 박혀있는 모든 도덕적 권위들을 일단 캐내어 내 머리밖으로 던져내는 일 부터 해야 했던거 같다. 예컨데, 애국심, 충효예로 상징되는 도덕, 국내외 위인들, 현대통령에 대한 경외심, 등등...
누군가 보기엔 사회 부적응자로 보였을 수 있고, 혹자에겐 그저 어그로꾼으로 치부되기도 했을 것이며, 때때론 동지 처럼도, 적군 처럼도 여겨졌겟지만, 난 그렇게 성장했기에 지금도 때론 그냥 간과할 수 있었을 더 많은 사회의 이면을 보려 하고, 이해하려 하고, 비판하려 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난 지금도 가끔, 잔인하게 빨갱이를 찔러 죽이는 반공포스터를 그려 상을 받을 때, 우리 부모님이 느꼈을 복잡한 마음을 생각하면 참담함을 느낀다. 만약 내 딸이 지금 그런 그림을 그려서 나에게 보여준다면 너무 마음이 아플것 같다.
마무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반공 포스터나 몇개 올려 보련다.
저 용맹스러워 보이는 국군들이, 가장 용감하게 무찌른 상대가 결국 자국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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