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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진실화해위 결정서에 “납북귀환 어부, 월선 아닌데도 기소·사형 구형”
입력 : 2023.03.20 17:17 수정 : 2023.03.20 17:25
이보라 기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1960년대 동해상에서 납북됐다 귀환한 납북귀환 어부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을 판단한 결정서에는 대부분의 어선이 월선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확인됐는데도 월선했다며 기소를 강행한 검찰의 행태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피해자와 유족들은 국가폭력 가해자이자 재심청구권이 있는 검찰이 피해자 전원에 대해 직권재심을 청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두번 이상 납북되면 사형 구형”···선 안 넘었는데 기소한 검찰

진실화해위는 지난달 9일 기성호 등 23척의 납북귀환 어부 150명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결정하며 국가의 사과와 재심을 권고했다. 20일 경향신문이 확보한 결정서에는 검경 등 수사기관의 인권침해 정황이 상세하게 담겼다. 1968년 10~11월 납북됐다 1969년 5월28일 귀환한 어부들은 합동신문조사(전 합동심문)와 경찰 조사에서 영장없는 불법 구금과 체포, 가혹 행위을 당했다. 군이 1969년 6월10일 작성한 ‘합동심문종료보고’에는 이들에 대한 경찰 조사에서 ‘몽둥이 구타 심문’이 있었다고 적혔다.

경찰 조사에서 가혹 행위로 어부들의 진술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컸지만 검찰은 이를 바로잡지 못했다. 오히려 기소에 유리하도록 이들에게 진술을 유도·강요한 정황이 보인다. 예를 들면 건설호 선원 김영곤씨는 경찰 1차 조사에서 “어로저지선 부근에 가서 어로작업을 했다”고만 진술했으나 2차 경찰 조사에선 “어로저지선과 휴전선을 월선했다”고, 검찰 조사에선 “이북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돌아가자고 제의한 적이 없다”고 진술을 바꿨다.

당시 검찰은 어부들이 납북될 줄 알고도 어로저지선을 넘어 조업을 했다며 이들을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대검찰청은 당시 두번 이상 납북된 어부에 대해서는 반공법·국가보안법을 적용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고, 강제로 납북된 경우에도 탈출잠입죄를 적용했다.

진실화해위는 조사 결과 어부들 상당수가 남한 해상에서 정상적인 조업을 하다 납북된 것으로 판단했다. 어부들이 월선하지 않았음에도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납북선박 발생보고’ 등 자료에는 대부분 어선의 마지막 조업 지점이 군사분계선 아래로 기록돼 있었다. 어부들과 유족 상당수도 진실화해위에 당시 어로지도선이 어선들이 월선하지 못하도록 지도했고 어선들이 월선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일부 어부들은 재판에서 월선한 적이 없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어부들은 법적 처벌을 받은 뒤에는 수사기관의 불법사찰을 받았다. 길성호 선원 유철일씨 부인은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남편이 간첩이란 소문이 나서 어렵게 살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영창호 선원 박행중씨 부인은 “귀환 후 남편이 바다에 갔다 오면 장화 신은 채로 끌려가서 1주일 동안 안왔고, 올 때마다 온몸에 멍이 들었다. 남편은 북한에 있는 게 나을 뻔했다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고 했다. 자녀들 역시 부친이 납북됐다는 이유로 취업과 진학 등에 번번이 제약을 받았다.

납북귀환 어부 사건, 검찰은 천차만별 대응···“전원 직권재심 청구를”

납북귀환 어부 사건에 대해 검찰의 대응은 일선 청마다 천차만별이다. 이 사건 태스크포스(TF)를 꾸린 춘천지검 속초지청은 지난해 말 건설호·풍성호 어부 3명의 재심에서 무죄 구형을 했고, 같은 사건 추가 피해자 10명을 찾아 직권재심을 청구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반면 동일한 유형의 사건을 담당하는 강릉지청은 아직 직권재심 청구를 하지 않고 있다. 한 강릉지청 검사는 지난 15일 납북귀환 어부 재심 사건 항고가 제기된 지 5년 만에 열린 첫 공판에서 구형을 요청한 재판부에 “(인사로) 2월에 와서 준비를 못했다. 다음 기일에 하겠다”고 했다. 이 사건 피해자 150명 중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경우는 13명에 불과하다. 생존자도 12명 뿐이다.

피해자들과 유족은 21일 “진실화해위의 권고대로 검찰 등 국가가 나서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피해와 명예 회복을 위해 재심 등을 빠른 시일 안에 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피해자들 변호인단은 “검찰이 준사법기관이라 한다면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할 의무가 있다. 검찰이 더 적극적으로 직권재심을 청구하고 무죄 구형을 하는 등 발빠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