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가난 [자필]

중 3 짜리 꼬맹이가 날 보고 이런 말을 했다.

"가난은 불편할 뿐이라던데...."

난 가난을 아냐고 물어 보지 않았다. 사실 나의 가난은 불편한 것이었다. 매우 불편한 것이었다. 나의 생활 자체가 가난 때문에 매우 블편한 것인데 그녀는 불편할 뿐이라고 했다.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의 특별한 비호때문에 집안 형제들이 겪는 가난의 불편함을 전혀 겪지 않고 자랐다. 그래서 그녀는 ....뿐 이라는 말을 쉽게 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의 잘못된 투자로 집안의 재물을 말라갔고 결국은 이모가 시집간 미국으로 집안의 모든 형제는 갈 수 밖에 없어 언니와 자신만이 한국에 남는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녀의 어머니와 그녀의 막내 동생만이 한국에 남아서 생활하게 되었을 때 그녀의 집안 사정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었던 내가 군에서 제대하게 되고 대기업에 취직을 한 후 오랫동안의 띄엄 띄엄 보기를 청산하고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 요즈음의 거창한 프로포즈를 한 것이 아니고 "이제 결혼하자." 라는 간단한 프로포즈였다. 그녀는 막내와 동행한 데이트에서 이런 말을 했다. "건설 회사를 꼭 다녀야 돼? 언니들이 그러는데 많이 헤어져 살아야 한다는데...."

나는 참 어처구니 없는 대답을 했다. 그녀가 왜 많이 헤어져 살아야 한다는데 라는 말을 했는지 헤아려보지 않고 말이다. 우리는 그녀가 대학을 들어가서는 일년에 며칠 만났는지를 세어 볼 수가 있을 정도로 뜸하게 만났다. 어떨 때는 일년이 넘도록 한 번도 보지 않고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 난 나의 마음과 그녀의 마음이 같으리라고 생각을 했었기에 별로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기에 그녀가 많이 헤어져 살아야 한다는데 라는 말을 했을 때 아무 느낌이 없었기에 다음과 같은 허접한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월급을 많이 주잖아! 이만큼 주는 데를 찾을 수 있어?"

그녀가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그녀가 왜 결혼해서는 헤어져 살기 싫다는 말을 했겠는가?

그녀는 그만한 월급을 받는 곳을 찾던지 자신의 장사를 하던지 해서 지금껏 헤어져 살았으니 결혼해서는 헤어져 살지 말자고 하고 싶었다는 것을 아는 지혜가 있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영원히 헤어지는 비극을 겪지는 않았으리라. 아니면 국내 현장에서 같이 살 수 있고 그 월급과 현장 수당이면 장모와 처제들이 같이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면 어렵더라도 결혼 할 수 있었으리라.

가난은 말로는 불편할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불편은 모든 것을 변하게 한다. 그런데 외적인 불편을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으면 사실은 그 가난이 천국을 만들게 한다. 가난을 참을 수 있으면 가난이 주는 행복을 맛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그녀와 같이 있을 수 있다면 불편 뿐인 가난을 즐길 수 있으리라. 사랑은 배부름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으리라. 

강능에서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동요 부르기 대회를 했다. 나의 한 소절이 끝나면 그녀가 다른 동요를 한 소절 부르는 대회였다. 참가자는 그녀와 나. 약 한 시간 진행한 이 대회의 승자는 그녀였다. 안 보이는 나의 양보도 있었지만.

그녀는 집에 가서 나에게 텍스트를 보냈다. 그 한 시간이 얼마나 귀했는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부자가 있고 가난한 자가 있지 않다는 내용도 곁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