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 계열사 중에 하나에서 15년 정도 전에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0년 좀 넘게 다니다가 이직을 해서 지금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금호에는 장사가 잘되는 회사들이 많아서 나름 꽤 알짜 그룹사였죠. 아시아나항공이 당시에는 수익이 시원치 않았지만, 금호타이어, 금호생명, 금호고속, 금호렌터카, 금호석유화학 등 4개 화학계열사, 금호종금, 금호건설까지 수익성이 꽤 괜찮았습니다. 특히 생명, 렌터카, 고속 같은 계열사는 캐시카우였구요.
회장들은 자산 기준으로 전체 몇위인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진, 한화, 두산 같은 그룹들과 비교하면서 어떻게 하면 큰 회사 하나를 인수해서 재계 순위를 올릴지에 관심이 많았죠. 물론 그때는 2005년 전후여서 지금과는 또 상황이 많이 다르긴 합니다. 당시에 공기업을 재외한 재계순위 1위 삼성, 2위 LG, 3위 현대자동차, 4위 SK까지는 넘사벽이었고, 어떻게든 5위 롯데를 자산으로 따라 잡는 것이 회장의 목표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2006년에 대우건설을 인수하고 대한통운까지 인수하면 롯데 턱 밑까지 따라간다는 생각으로 기를 쓰고 대우부터 인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에 대한통운까지 인수를 했습니다.
현금이 많지 않아서 6조 6천억인가의 인수가액중 대부분을 엄청나게 리스크가 큰 풋옵션을 걸고 자금을 빌려서 인수를 했죠. 말하자면 사채빚을 얻어서 주식을 투자하는 것과 비슷하게, 큰 무리수를 둔 것입니다. 빚을 많이 끼고 투자를 해서 투자가 성공하면 그만큼 수익률이 leverage가 되므로 엄청나게 올라가지만, 투자가 실패하면 완전히 쪽박을 차게 되죠. 근데 대우를 인수하고 나서 리만 사태도 터지고 부동산 경기, 건설경기가 얼어붙으면서 그야말로 쪽박을 찼습니다.
자기 돈으로 샀다가 잘못된 것이면 도로 팔고 좀 싸게 팔리면 손해 좀 보면 그만이지만, 거의 빌린 돈으로 산 회사가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가치까지 떨어지니 갚아야 할 돈이 그룹 전체를 팔아도 갚을 수 없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캐시카우이던 생명, 종금, 렌터카 같은 회사들은 팔고, 지배구조상 팔수 없는 계열사들은
워크아웃을 진행합니다. 워크아웃은 빚 갚는 것을 유예하는 대신 채권단의 관리를 받는 것입니다. 직원들은 구조조정도 되고 급여도 동결/삭감되고 매번 채권단에 보고도 하고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회장 입장에서는 회사를 파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일이라 결정을 미루다가 결국 제 값도 못 받고 헐값에 파는 엉터리 결정을 여러번 했습니다. 금호생명 같은 회사는 제때 팔았다면 1조가까이 돈을 받았을텐데, 결국 때를 놓치고 2000억 정도만 받고 판 것으로 기억합니다. 업친데 덮친격으로 동생인 박찬구 회장과 갈라서면서 석유화학부문을 모조리 떼어주면서 더 어려움에 처하게 되죠. 그렇게 관심 많던 재계순위도 결국 수십위권 밖으로 나가게 되구요.
그 이후로도 그룹을 재건하겠다면서 지주회사인 금호건설과 자회사인 아시아나항공을 중심으로 여러시도를 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무리수도 두고 횡령도 하고 그렇게 하다가 결국 구속까지 되네요. 개인적으로는 그 분께 큰 은혜도 입은 적이 있는데 이렇게 회사나 회장이나 끝없이 추락을 하시니 마음이 참 안좋습니다. 회장 본인의 욕심이 과해서 이렇게 된 것이니 어쩔 수는 없지만..
(인플루언서)
쏘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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