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별곡 5 - 욕심이 과하면 화가 되느니라

3 년간의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청산하고 내로라하는 명문 예술계 고등학교의 실기강사가 된 지 두 해째인가 되는 어느 가을날 , 신사동에서 운영하던 화실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 한 학생의 어머니가 건 전화였다 .

“ 아유 , 선생님 . 우리 아이를 맡겨놓고 찾아뵙지도 못하고 ... 죄송해요 .”

“ 아닙니다 . 괜찮습니다 .”

괜히 학부모님이 찾아오시면 다른 아이들 있는 데서 부담스러운 이야기들이 오가는 것이 거북하니 학부모가 오지 않으면 나로서는 신간이 편한 노릇이었다 .

“ 어때요 , 선생님 ? 우리 애 잘 하나요 ?”

“ 음 ...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이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

그 학생은 내가 근무하고 있는 예술고등학교와 한 울타리 안에 있는 예술중학교 3 학년 학생으로 , 단짝 친구와 함께 화실을 다닌 지 두어 달 쯤 되는 학생이었다 . 하지만 말이 학생이지 , 그림은 전혀 그리지 않고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 예고 입시가 불과 몇 달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두 녀석은 불안한 기색 하나 없이 줄기차게 놀아 재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특하게도 수업료는 꼬박꼬박 납부하여 거의 모두 수업료를 안내는 학생들로 꾸려가는 화실 살림에 큰 보탬은 되었지만 .

“ 그렇죠 ? 이 녀석이 그래요 . 언제 철이 들지 ...”

학부모님의 반응은 의외였다 . 내 말에 전혀 낙담하는 구석이 없었다 .

“ 그래서 말씀인데요 ... 아무개 엄마와 의논을 해봤는데요 ...”

아무개 엄마란 그 녀석과 단짝 친구의 엄마를 말하는 것이었다 .

“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

“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지만 말씀해보십시오 .”

“ 저 ... 선생님 , 올해 입시 때 말씀인데요 ...”

“ 예 .”

“ 입시 심사에 선생님 들어가시죠 ?”

“ 예 ? 그게 ... 무슨 말씀이신지 ...”

“ 아이 , 참 ... 이거 정말 송구스러워서 ... 어려운 부탁인 줄은 알지만 ...”

“......”

“ 저 ... 심사 들어가시거든 우리 애랑 아무개 그림 좀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

“ 아 ... 예 ...”

“ 정말 죄송합니다만 ... 꼭 좀 부탁드릴게요 . 섭섭지 않게 해 드릴 테니까 ...”

“ 음 ... 예 , 좋습니다 .”

“ 정말요 ? 선생님 ! 아유 ... 고맙습니다 .”

시원시원한 내 대답이  의 외인 듯 학부모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 솟아올랐다 .

“ 예 , 정말입니다 . 대신 미리 확실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

“ 예 ...?”

“ 방금 어머님께서 섭섭지 않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 이왕 말씀 나온 김에 확실히 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 아 , 예 ...”

“1 인당 2 억씩 해서 두 명이니까 4 억은 주셔야겠습니다 .”

나의 그 마지막 말에 혼이 나갔는지 학부모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 실제로는 몇 십초이겠지만 기분으로는 10 분 정도로 느껴지는 시간이 흐른 후에야 인사조차 없이 조용히 전화가 끊겼다 . 이후로 화실 경영은 다시 어려워졌다 . 꼬박꼬박 수업료를 내던 두 학생을 다음날부터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 하지만 기분은 삼삼했다 .

뱀꼬리 > 1 인당 1 억씩 해서 2 억만 챙길 걸 그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