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별곡 4 - 봉투야, 어디 갔니?

“ 그런 문제라면 바쁘실 텐데 굳이 안 오셔도 됩니다 .”

“ 별 문제 아니니까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 어머님의 도움이 필요하면 제가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 죄송하지만 그 땐 제가 선약이 있어서 ...”

학부모의 방문을 이 핑계 저 핑계로 피하는 것도 한도가 있는 법 , 간혹 만나기 싫다는 뜻을 완곡하지만 분명히 표하는데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접선을 시도하는 스토커 학부모도 있다 . 어떤 학부모님은 사전 연락도 없이 무조건 쳐들어오고 보는 통에 어떻게든 다른 선생님들의 눈이 우글거리는 방을 벗어나지 않음으로서 소기의 방문 목적을 이루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었던 모 고등학교의 파란만장한 교사직을 3 년만에 충동적으로 때려치운 후 예술고등학교 실기 강사로 근무하던 어느 날 , 휴게실에 혼자 앉아 책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출입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 동료 강사 선생님이라면 노크할 이유가 없기에 ‘ 누군가 ...?’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허락도 없이 문이 열리고 공포의 아줌마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정 XX 선생님이시죠 ?”

“ 어 ? 아 , 예 ... 실례지만 뉘신지요 .”

“ 선생님들한테 여쭈어보니 여기 계시다고 해서 ... 저 XXX 엄마입니다 .”

“ 그러세요 ? 저 지금 별로 어머님 만날 일 없으니까 그냥 나가주시겠습니까 ?”

차마 이렇게는 말하지 못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할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

“ 아 , 그러세요 ? 어서 오십시오 .”

이런 ... 딱 걸렸다 . 기분이 고약했다 .

“ 그런데 ... 지금 제 수첩이 여기 없는데 , 다른 방으로 가실까요 ?”

양반 자손으로서 남녀 단 둘이 은밀하게 한 방에 있을 수는 없는 법 , 학부모를 데리고 동료 선생님들이 있는 장소로 이동할 핑계를 찾았다 .

“ 아니예요 . 별다른 문제가 있어서 찾아뵙는 건 아니니까 괜찮아요 . 여기가 조용하고 좋은데요 .”

학부모의 ‘ 조용하고 ’ 라는 말이 ‘ 은밀하고 ’ 로 들렸지만 계속 다른 방을 우길 수 없어 그냥 앉고 말았다 .

“ 저희 아이가 선생님을 참 좋아해요 . 집에 오면 선생님 얘기만 하더라구요 . 호호호 ...”

학부모의 그 말에

“ 아 그래요 ? 저도 역시 저를 참 좋아합니다 , 으하하하 ...!”

이렇게 대답할 수는 없고 , 그렇다고 딱히 뭐라 대꾸할 말도 없고 ...

“ 좋기는요 ...”

그냥 아무 영양가 없이 무색무취한 대답을 했다 . 설사 아이가 나를 싫어한다 해도 ‘ 우리 애가 선생님이라면 이를 갈아요 . 집에 오면 선생님 모양을 본 뜬 인형에다 바늘을 꽂으면서  저주의 주문을  퍼붓거든요 .’ 라고는 말할 턱이 없으니 괜한 말이다 . 학부모는 한동안 자기 자식이 얼마나 특별한 아이인지를 여러 가지 사례를 열거하며 칭찬하더니 , 그 아이의 지나친 순진함과 바보스러울 정도의 착함을 걱정하는 척 하면서 칭찬한 후 , 아이의 잠재된 능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기를 부탁하는 일련의 의례적인 사전절차를 마친 끝에 드디어 , 마침내 , 바야흐로 , 필경 , 결국 , 이윽고 ... 오늘 대화의 핵심이자 본론인 핸드백을 ... 열었다 . 그와 동시에 ,

“ 이 / 아 / 거 / 닙 / 얼 / 니 / 마 / 다 / 안 / 이 / 되 / 러 / 지 / 지 / 만 / 마 / 식 / 십 / 사 / 시 / 나 / 오 /.../!”

학부모와 내게서 동시에 튀어나온 말이 뒤섞였다 . 너무 심할 정도로 손사레를 치는 나를 바라보며 학부모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 하지만 ‘ 아 , 그러세요 ? 참 잘난 선생이군요 .’ 하면서 봉투를 도로 집어넣을 리는 없었다 . 황당한 표정을 수습한 학부모는 그 봉투를 억지로 내 손에 쥐어주려고 시도했다 . 그와 동시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 선생님 , 그러지 마시고 성의이니 받아주세요 .”

“ 부탁입니다 . 제발 이러지 마십시오 .”

“아이 참,  이러시면 어떻게 해요 ?”

“ 괜찮습니다 . 그럼 전 이만 ...”

학부모가 봉투를 탁자 위에 놓는 것을 본 나는 되는대로 학부모에게 인사한 후 황급히 그 방을 박차고 나왔다 . 운동장으로 나온 나는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불을 붙여 깊이 빨아들인 후 연기를 하늘로 후 ~ 뿜어냈다 .

비참했다 . 그런데 ... 비참한 기분이 드는 그 이유가 나를 더 비참하게 했다 .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 학부모가 내민 그 봉투 안에 얼마나 들었을까 궁금한 것이다 . 아울러 얄궂게도 그 학부모가 봉투를 도로 가져갔을까 , 아니면 탁자 위에 놓고 갔을까 하는 것이 궁금해 미치겠는 것이다 . 얼마인지는 모르나 그 돈이면 하루에도 몇 번씩 ‘ 고객님 ’ 을 찾는 은행 직원의 소름끼치는 전화를 안 받아도 되고 , 아들놈 밀린 등록금도 납부할 수 있을 텐데 ...

그로부터 한 시간도 안 되어 , 가증스러운 한 인간은 추한 꼬락서니로 텅 빈 탁자 위아래를 샅샅이 뒤지는 주접을 떨고 있었다 . 자신에게 온갖 해괴한 욕설을 퍼부으며 ...

“이런&^%9i쉬빠를놈의43@가이스키 ▽∞␦₡ℵ닝기뤼⧧ *&뭐가그리 ⨫⺉ |좔라따고\ ⽘〥씨탱구리 #@ ゔ ᛪᑞ ౨౭൭ g!”

아... 지금도 그 비참한 순간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그냥 콱~! 어찌 해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