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공백기에 쓴 글을 올려봤습니다.

안녕하세요. 횐님들 

저번에 제가 이런글은 어떨까요? 라는 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글을 써보았습니다.

그런데

제 필력도 허접하거니와

요즘 웹소설 트렌드에 맞지 않는 글 같은데요.

그래도 시간이 될 때마다 써서, 문피아에 올려보았습니다.

한번 읽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제목 : 변혁의 시대]

서막 - 꿈.

숲이 벌겋게 빛나고 있다.

 나무와 덤불 사이는 뜨거운 불길과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찼다. 불길을 머금지 못한 숲은 연신 사방으로 그 넘쳐나는 뜨거움을 내뱉고 있었다. 숲의 입구에는 시민들의 비명이 들려왔으며, 사람이 낼 수 없는 낮고 깊은 울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마지막 요괴 갑산괴의 울음이었다. 국가에서 파견을 보낸 병사들과 그 뒤를 쫓아온 시민들은 갑산괴가 산다는 숲에 불시에 불을 지르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불타는 숲과 함께 요괴가 사라지기를 바랐지만, 요괴는 숲에서 뛰쳐나와 호랑이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족히 3M는 되어 보이는 덩치에 노란 눈알에 크게 하나 박혀있었다. 그리고 붉게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한 요괴는 양손에 거친 톱니 같은 칼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주헌은 멀리서 그 무식하게 생긴 칼에 병사들의 방패와 갑옷이 찢겨나가는 것을 보았다. 시민들은 도망치기 바빴고 병사들은 탄식과 함께 죽음의 소리를 내었다. 절망에 사로잡힌 얼굴을 보던 병사의 대장이 주헌에게 소리쳤다.

 가라! 도깨비! 마지막 요괴야! 네 마지막 할 일을 끝내라!

 대장의 말에 주헌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도깨비만 가질 수 있는 사인검이었다. 그는 도망치는 시민들과 엇갈리며 말을 박차고 달려갔다. 검은 점점 푸르른 기운이 차올라 옅게 빛나기 시작했다. 

 으악! 살려줘! 둘러싸라! 물러나지마! 고작 요괴 한 마리다! 미친 짓이야!

 병사들에게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흥분한 숨소리, 거친 목소리, 겁에 질린 목소리가 한데 어울려 요괴를 둘러쌌으나 요괴는 계속 날뛰고 있었다.

 흥분, 온몸에 피가 끓어오르는 느낌, 머릿속에 강렬히 박히는 고양감.

 후!

 어느새 자신이 숨을 참고 있다고 느낀 주헌은 머금은 숨을 입으로 간결하고 짧게 내뱉었다.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요괴는 빠르게 다가오는 주헌을 향해 울부짖었다. 그 소리에 병사들이 움찔하는 게 보였다.

 비켜! 길을 터라! 도깨비가 온다!

 갑옷들과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는 눈빛들이 보였다.

 타고 있는 말은 거침없이 요괴한테 향했다. 분명 잘 훈련된 말이었으나 곧 죽는다는 것은 모르리라. 요괴는 다가오는 주헌을 향해 칼을 옆으로 크게 휘두르려는 게 보였다. 주헌은 잡고 있는 고삐를 느슨하게 잡고 안장에 올라 뛰어오를 준비를 했다. 목을 한 번에 베어야 했다. 마지막 파견 전 요괴 토벌 기록을 뒤져보았다. 어디서도 갑산괴를 퇴치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유령이 아니니 목을 베는 것이 희망이었다. 

 으악! 조심해!

 갑산괴가 검을 크게 휘두르자 병사가 그 끝에 걸린 것이 보였다. 그럼에도 요괴의 검은 주헌을 향해 거침없이 오고 있었다. 주헌은 말의 목까지 근접했을 때 안장에서 뛰어올랐다. 요괴는 다른 손을 들어 올렸지만, 이미 주헌의 푸른 검에 목이 베였다. 

 쿵!

 요괴의 머리가 땅에 떨어져 울림을 만들었다. 주헌은 옆에 서서 다시 참았던 숨을 후! 뱉었다. 파랗게 빛나던 검은 다시 사그라들었다. 그 순간 병사들의 소리가 들렸다.

 뒤! 뒤에!

 목을 베어 끝났다고 생각한 마지막 요괴 퇴치는 끝이 아니었다. 목이 잘려도 요괴의 몸은 움직여 주헌의 등을 노렸다. 주헌은 재빨리 뒤를 돌아 요괴의 검을 사인검으로 막았다.

 충격, 검으로 간신히 막았으나 처참하게 튕겨 나가 바닥에 처박혔다. 고개를 드니 옆에서는 거무튀튀한 방패와 창을 든 병사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들 중 몇 명이 손을 뻗어 부축해 주려고 왔지만, 순식간에 달려온 요괴의 검을 맞고 숲속으로 날아갔다.

 손이 떨리는 느낌. 도깨비가 되고 첫 임무를 수행할 때의 느낌. 몸이 흥분감에 휩싸여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느낌.

 

 주헌은 재빨리 바닥을 딛고 일어섰다. 

 요괴가 거침없이 다가온다. 병사들이 창을 내세우지만 요괴의 몸에 박힌 채 마른 나뭇가지 부서지듯 부서졌다. 요괴의 앞길을 막는 병사는 없다. 요괴의 주먹이 주헌을 향해 뻗었다. 주헌은 그와 동시에 검에 힘을 주고 주먹을 가르려고 했다. 

 다시 한번 충격. 아까의 충격으로 검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입에서 피가 토해졌다. 머리 위로는 재가 휘날린다.

 요괴는 천천히 자신의 잘린 머리를 들었다. 요괴의 눈이 움직이며 주변을 둘러본다. 한 손에는 무식하게 생긴 톱 같은 검을, 한 손에는 자신의 잘린 머리를 잡은 모습이 주변을 경악하게 했다.

 멀리서 대장을 바라본다. 그는 혀를 차고는 자신의 옆에 남아있던 병사들을 돌아보았다. 병사들은 모두 말을 타고 있었다. 대장은 그들의 앞을 지나가며 요괴와 같이 검을 치켜올렸다. 그의 투구에 장식된 감투가 불에 빛났다. 요괴의 머리 색과 같은 붉은색이었다. 병사들이 모두 대장을 바라본다. 흥분상태. 주헌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돌격!

 대장이 검을 치켜 내리며 외쳤다. 땅이 울리는 소리. 시민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말들이 울음소리. 기병들은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었다. 그들은 두 줄로 나란히 요괴의 옆을 찌르며 지나갔지만, 요괴의 거침없는 움직임에 소리는 바뀌었다.

 땅으로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 병사들의 신음. 말의 비명. 요괴에게 밟혀 뼈가 부러지는 소리. 요괴의 잘린 머리에서 나오는 저열한 웃음소리.

 병사들은 기가 죽었다. 요괴에게 무엇인가를 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공포에 휩싸였다. 이제 요괴는 병사들의 대장을 노려보았다. 시민들은 모두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더욱더 뒤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요괴가 달리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요괴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대장은 용기 있게 마주 오는 요괴를 향했다. 자기가 도망친다면 병사들은 어떻게 되리. 그는 요괴가 검을 들지 않은 쪽을 파고들었다. 요괴가 몸을 틀었지만 말에 더욱 박차를 가해 잘린 머리의 눈을 찔렀다. 

 요괴의 비명!

 요괴가 울부짖는다. 요괴의 눈이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병사들의 환호!

 다시 대열을 정비해라! 창이 있는 보병들은 대열을 갖추고 전진! 몸통과 다리를 노려 움직임을 봉해라!

 대장이 소리쳤다. 병사들은 자신감을 얻고 한걸음 전진을 한다.

 푹! 죽어!

 병사들의 자신감 있는 외침!

 크아악! 도... 도망쳐!

 요괴의 비명. 병사들에게 다시 찾아오는 절망감. 요괴의 붉은 머리카락이 불로 변했다. 불은 요괴의 온몸을 타고 불덩이로 변했다. 요괴의 몸짓 하나하나에 불덩이가 튀었다. 불덩이가 옮겨붙은 병사는 불을 끄지 못해 처참히 타기 시작했다. 남은 병사들은 그 모습에 다시 도망치기 바빴다. 요괴의 난동은 마치 터져나가는 폭죽 같았다. 결국 불길은 숲에서 끝나지 않고 들판까지 내려왔고, 저녁임에도 노을 내려앉은 듯 들판은 붉게 물들었다.

 요괴는 몸을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렸고, 몸에서 터져 나오는 불덩이는 멀리 도망치는 시민들까지 날아갔다. 마치 불의 폭풍이 된 듯 요괴는 계속 돌고 돌았다.

 크아악!

 다시 한번 요괴의 비명! 요괴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쉽게 멈췄다. 어느새 요괴의 불타는 몸의 등 뒤에 주헌이 사인검을 찔러넣고 매달렸다.

 마지막 남은 도깨비로서 마지막 요괴를 토벌하지 못한다면 누가 이 요괴를 잡을 수 있겠는가.

 미안합니다!

 주헌이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입에서 주문을 중얼거렸다. 그 소리는 병사들에게도 대장에게도 들렸다. 

 쿵! 쿵!

 

 요괴는 주헌을 떼어내려 발을 구르고 손을 등 뒤로 뻗어 보지만 헛수고였다. 그가 꽂은 검에서 푸르른 불빛이 점점 모이더니. 들판의 붉은빛을 집어삼켰다. 붉은빛은 그의 요술에 의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빛은 점점 커져 주변 일대를 모두 삼켰다.

 두우우우우우우웅!

 살아남은 시민들은 말했다. 그 도깨비가 동귀어진할 때 눈뜨지 못할 정도의 밝은 빛과 낮고 깊은 울림이 퍼졌다고. 그리고 그 일대가 초토화되었다고. 

 보고된 사망자

 병사 80명 출진 중 80명 사망.

 동원된 시민 30명 중 17명 사망.

 도깨비 1명 출진 중 1명 사망.

 그 도깨비 새끼 죽을려면 요괴랑 단 둘이 죽지. 병사들을 모조리 끌어들였다며?

 고아 새끼들이 사람 중요한 걸 모르니 그렇지. 

 쯧쯧. 그래도 더 이상 요괴는 안 나온다고 하니 거들먹 거리는 도깨비 새끼들 안 봐서 좋네.

 그럼 이제 고아들은 어떻게 해?

 뭘 어떻게 해. 노예로 부려. 이제 공짜 노예가 생기는 거지. 말 안 들으면 숲에 버리거나 내쫓으면 되고. 

 잘됐구먼. 도깨비 새끼들이 사라져서 아주 좋아.

 도깨비 새끼들 잡으라는 요괴는 안 잡고 암살도 했다던데.

 암살뿐인가 요괴 잡는다고 마을을 초토화한 곳이 한두 곳인가. 게다가 뇌물도 받아 처먹고 말이야.

 분명 그 마지막 도깨비도 받아 처먹은 게 많았을 거야.

 무당년들이랑 붙어먹는 것도 꼴 보기 싫었는데 칵~퉤!

 도깨비 자식들은 어떻게 해?

 몰라. 그 자식들도 노예로 쓰려나?

 낄낄낄

 무당들은? 

 요괴가 없어졌으니. 기생집에서 일하려나?

 낄낄 빨리 그 모습을 봤으면 좋겠구먼.

 

-----------------------

 "주한!"

 주한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깨어났다. 침대와 베게는 땀에 가득 젖어서 축축해져 있었다. 주한의 숨소리는 거칠게 내뱉다가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온몸이 뻐근하게 느껴졌다.

 "또 그 악몽이야?"

 물을 떠 온 그의 친구 한현호가 물었다.

 창밖을 보니 새벽녘에 내려앉은 달빛이 보였다. 방 한구석에는 한현호가 켜놓은 등불이 잔잔하게 빛나고 있었다. 방 안에는 둘밖에 없었다. 창밖에서 울리는 규칙적인 새소리와 옆방에서 들리는 코 고는 소리.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얌전한 주막의 밤이었다. 

 "아니, 이번에는 달라."

 "무슨 꿈인데?"

 물 잔을 받은 주한은 이마의 땀을 닦아 냈다. 식은땀이 흥건했다. 잔을 비운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에 대한 사망 보고서를 토대로 그려진 꿈."

 "오, 꿈에서 아버지는 보았어?"

 "내가 아버지였어. 내가 마지막 요괴인 갑산괴를 토벌했지. 마지막에 동귀어진까지 하면서 말이야."

 "동귀어진... 들은 바로는 최악의 마지막 토벌이라고 들었지. 요괴와 중대 하나가 증발한 사건. 그것뿐만 아니라...."

 한현호는 말을 하다 말고 주한의 눈치를 보았다. 주한은 이제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 그것뿐만 아니라 뒤에 숨겨진 사건도 있지."

 "그 건은, 이제 잊혀진 사건이잖아."

 주한은 예전부터 위로의 말로 잊혀진 사건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 모두 아버지를 욕할 때 그의 친구들은 앞에서 잊혀진 사건이다. 괜찮을 것이다라고 늘 얘기해왔다. 하지만 뒤에서는 모두 얘기가 달랐다.

 그의 아버지 주헌은 청주 지역 무당 살인 사건 및 뇌물 수수죄로 죄인 호송 중인 상태였다. 죄인 호송 중에 요괴를 토벌하러 가는 중대와 만났고, 그의 중대에 강제 동원되었다. 정식으로는 요괴 토벌에 성공하면 그 공로를 인정해 죄를 감안한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도깨비는 모두 숙청 대상이었다.

 "뇌물 수수. 모든 도깨비가 흔히 하던 짓이었다지. 우리 아버지도 마찬가지일 테고. 무당 살인 사건은.... 그게 맞는지 모르겠네."

 "뭐, 흔히 도는 소문이 맞겠지. 도깨비들도 요괴로 취급받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두 숙청당하는데, 도망친 도깨비들을 사이가 가깝다고 생각하던 무당들이 팔아넘겼다. 그에 마지막 도깨비가 숙청당하기 전 도깨비들의 복수를 행했다."

 주한은 반응도 없었다. 소문이 괜히 나는 게 아니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 생각은 9살에 아버지가 죽은 뒤 20년 동안 생각해 왔기에 머릿속 한편에 굳혀진 상태였다. 그리고 20년이 지났음에도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보고 아직도 마지막 도깨비 주헌을 생각했고, 늘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해댔기에 잊을 수 없었다. 도깨비는 성을 가질 수 없기에 쉽게 알아보는 탓이었다. 자식도 마찬가지로 성을 가질 수 없었다.

 "아직 날도 밝지 않았으니 다시 잠이나 자자. 그건 개꿈일 뿐이야."

 한현호가 말했다. 주한의 손에서 잔을 뺏은 그는 입구 옆 탁자에 올려놓았다. 

 "이제 요괴들이 판치는 시대는 끝났어. 불 끈다."

 "그래."

 후~

 방안에 등불이 꺼졌다. 창밖에서 은은한 달빛과 규칙적인 새소리, 누군가의 콧소리만이 잔잔하게 흘러들어오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밤이었다.

 주한은 잠들기 전 한현호의 말을 되새겼다. 

 '요괴들이 판치는 시대는 끝났어.'

=========================

1. 도깨비의 자식

5월이 곧 넘어가는 날. 해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주막의 마당은 이른 아침부터 떠들썩했다. 모두가 곧 있을 오성그룹의 입사 면접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대규모로 인력을 채용한다는 공고가 돈 후 오성그룹 본사가 있는 전대국가 뿐만 아니라 국경을 맞닿은 청충국가, 상경국가, 원강국가, 기경국가, 남전국가의 뜨내기들이 다 모여있었다.

 어젯밤에 보지 못한 이들도 많이 보였는데, 음식이 제공되지 않는 여관에서 머물다가 온 이들과 막 아침이 되어 산을 넘어온 이들도 가득했다. 모두 마루와 마당 평상에 자리를 잡고 식사하고 있었는데 일부는 벌써 술에 취해 흥청망청했다.

 "진짜네 이 자식 도깨비 자식이여. 내말 맞지? 어쩐지 머리 색이 좀 푸르다 싶었지."

 대청마루 주한의 옆에서 술을 마시던 패거리 중 한 명이 주한의 호패를 몰래 훔쳐보았다. 주한은 그를 곁눈질로 보았다. 그의 얼굴은 술에 취해 한껏 취해 벌겋게 상기되어있었다.

 "야 인마, 술이나 마셔."

 같이 앉아있던 동료가 그의 등을 돌리며 말했다.

 "너희들이 도깨비 아닐 거라며 쳇."

 아쉬운 듯 입소리를 낸 그는 다시 술을 마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현호가 부엌에서 다가왔다. 그의 한 손에는 소주가 한 병 들려 있었다.

 "무슨 일이야?"

 "늘 있는 일. 푸른 머리 색을 보고 도깨비를 의심하고 시비 걸으려는, 뭐 그런 거 있잖아."

 

 주한이 옆 패거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사내 세 명은 아무렇지 않게 막걸리를 마시며 큰 소리를 떠들고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모두 인상은 찌푸렸지만, 그들의 덩치에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다들 아침 식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현호는 소주병을 열어 주한의 앞에 한 잔 따랐다.

 "반주나 하자고. 전대국가에 왔으면 밤소주는 마셔야지."

 밤소주는 개뿔.

 옆 패거리에서 한현호의 말에 반응했다. 한현호가 패거리를 보자 좀 전의 술에 취한 사내가 눈을 마주쳤다. 주한도 그를 노려보자 다른 사내들도 합심했다. 

 "하~."

 한현호가 한숨을 쉬었다.

 주한이 소주를 받아 한현호의 잔에 따랐다. 그리고 둘은 눈을 마주쳤는데, 한현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에게 반응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주한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만 합격하면 더 이상 막노동을 안 해도 되겠네?"

 "모르지, 내가 너처럼 기술이 있냐, 합격할지도 모르겠고 합격한다고 해도 몸을 쓰는 일만 하다 오겠지. 그것보다 고마웠다."

 "응 뭐가?"

 "우리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 도와줘서."

 막 노동하니 제 어미 건강도 못 챙기고 천애 고아가 되지 쯧쯧

 사내들의 말을 뒤로하며 주한은 소주를 삼켰다. 한현호도 마찬가지로 소주를 삼켰다. 둘은 어릴 적부터 같은 마을에서 자라왔기에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아는 두 사람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1년 전에 병으로 몸져누웠고 그대로 일어나지 못한 체 임종을 맞이했다.

 

 "그래, 그러니까 이제부터 종종 연락하자고. 평소에 연락도 하지 않다가, 오랜만에 연락해서 하는 말이 어머님이 작고하셨다길래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진짜 고아가 되었네. 난 도깨비의 자식이라 그런가."

 낄낄낄 도깨비가 다 그렇지.

 주한은 소주병을 들어 한현호의 잔과 자신의 잔을 채웠다. 옅은 밤 향이 소주에서 올라왔다. 그리고 안주머니에서 손바닥 크기의 봉투를 하나 꺼내 한현호에게 내밀었다.

 "이제 돈은 더 안 보내 줘도 돼. 나 혼자 남았으니 부모님에게 안부 전해드려 그동안 감사했다고, 내가 꼭 크게 갚겠다고."

 "이건, 이번 오성그룹 결과를 보고 줘도 늦지 않아."

 "아니야. 오성그룹에 떨어져도 난 빌어먹으며 잘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봉투를 받은 한현호는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마지막 도깨비 주헌이 죽은 날, 자신의 부모님이 매년 주한의 집안에 보냈던 돈이었다. 비단 한현호의 집뿐만 아니라 다른 집들도 같이 후원했으나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건 그의 집안이었다. 마지막 도깨비의 무당 살인 사건과 뇌물 수수 사건이 공표된 이후에도 말이다.

 한현호의 집안은 전대국가 옆 충청 국가에 주공시 집안의 명망 높은 양반 집안이었다. 사람의 귀함을 중시 여겼기로 유명했는데, 특히 한양반의 집안은 대대로 요괴를 잡는 이들에게 언제나 후하게 대접했었다.

 잔을 내려놓은 주한은 허리춤에 있는 호패를 들여보았다. 이름 두 자와 도깨비 집안의 표시인 해태의 얼굴이 정면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래, 아버님께 꼭 말씀드릴게. 만약 무슨 일 생기면 주저 없이 연락해주고."

 "당연하지. 예로부터 도깨비 집안이라면 모두 주공의 한양반 집을 찾아가라는 말도 있을 정도니."

 왜 양반 집안이 쌍놈의 집안을 돕는거지?

 몰라 시발. 돈 많은 놈들의 생각은 알 수 없으니까 말이야.

 그 돈을 우리한테나 주지. 시이발 양반새에기들.

 낄낄낄.

 옆 패거리들의 비아냥이 들렸다. 분명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고, 주한과 한현호도 알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었다. 주한을 움직인 건 웃음 뒤에 나온 마지막 대화였다.

 우리도 오성그룹에 낙방하면 한양반 집에 가서 빌어먹자고.

 우리가?

 안되면 털어먹으면 되지.

 말 되네 낄낄.

 소주병을 잡은 주한은 단숨에 내용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거칠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현호아. 오성그룹 정보 알려준 것 고맙고, 지금은 미안하다."

 "아... 안돼."

 한현호가 말릴 새도 없이 주한은 소주병의 주둥이를 고쳐잡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옆 패거리 사내 한 명의 머리를 내려쳤다. 사내는 그대로 상을 향해 앞으로 고꾸라졌다.

 와장창!

 헉!

 "개새끼들이. 한 양반님을 욕해?"

 주한의 말에 주막 안은 일순 조용해졌다. 사내의 동료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주한을 노려보았다. 그들이 일어나려 하자 주헌은 깨진 병을 내밀며 소리쳤다.

 "시발놈들아, 자리에서 일어나면 무슨 일이 생긴다는 건 알아둬라. 도깨비 자식으로 태어나 천애 고아가 된 놈이 물불 안 가리면 하는 짓이 뭔지 보여주지."

 사내는 그의 위협에 자리에서 움찔거릴 뿐 일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일어난 사람은 고꾸라진 사내였다.

 "이익!"

 사내는 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어지러운 듯 일어나자 휘청였는데, 그것을 놓치지 않고 주한은 깨진 병을 놓고 그의 턱에 주먹을 꽂았다. 사내는 일어난 그대로 뒤로 고꾸라져 정신을 잃었다.

 쿵!

 꺅! 큰 소리에 놀란 여인의 비명소리.

 헉! 주인장! 싸움이 일어났소! 밥 먹다 놀란 사내의 외침.

 주변 사람들의 말을 기점으로 두 사내가 일어났다. 주한은 좀 전과 마찬가지로 사내의 턱을 노리고 오른 주먹을 직선으로 뻗었지만 사내는 가까스로 피했다. 하지만 바로 주먹을 뒤이은 오른발이 날아와 사내의 배를 걷어찼다. 사내는 뒤로 날아가 마당으로 넘어져 장독대에 부딪혔다. 그 틈에 다른 사내가 주한에게 몸을 날렸다. 주한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사내와 뒤엉켰다.

 몸이 엉켜 마루에서 마당으로 굴러떨어진 둘을 엎치락뒤치락했다. 이내 덩치가 큰 사내가 주한을 위에서 내리누르며 목을 조르는 듯했으나 주한이 과감하게 그의 낭심을 무릎으로 걷어찼다.

 으악!

 사내의 비명과 함께 구도는 일방적으로 변했다. 주한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내를 옆으로 치워놓고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입술은 작게 피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 야비한 자식..."

 "시발 야비? 세 명에서 한 놈을 패는 건 야비하지 않고?"

 "네가 먼저 병으로..."

 퍽!

 말을 하다 턱을 걷어차인 사내는 그대로 기절했다. 주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신을 잃지 않은 사내는 장독대에 부딪힌 사내뿐이었다. 주한이 검지 손가락을 부들거리며 사내를 가리켰다.

 "시발, 앞으로 또 마주치면 죽는다. 너네. 알겠어?"

 사내는 대답 없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잃을 것 없는 도깨비의 자식인 걸 알아보면 알아서 피해 가야지. 시발 싸움을 걸어? 멍청한 새끼들. 내가 누군 줄 이제 알겠지."

 한현호가 조용히 주한의 옆에 섰다.

 "경찰이 오기 전에 가자. 벌은 내일 면접을 본 후 받든지 하고 일단 여길 벗어나야 해. 가자."

 "고작 술집에서 일어난 싸움으로 다 덩치 좀 있는 사내 녀석들이 경찰에 신고하겠어?"

 주한은 사내를 계속 노려보며 말했다. 사내가 그의 말에 마른침을 삼키는 게 보였다.

 "아니, 이보게 가긴 어딜 그냥 간단 말이오. 이거 다 물어주고 가야지."

 어느새 부엌에서 나온 주막의 주인장이 그들 앞을 막아섰다.

 한현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루 위에는 대자로 뻗어 정신을 잃은 사내와 부서진 밥상이 있었고, 대청마루 끝에는 사내들이 뒤엉킬 때 부서진 모서리가 보였다. 그리고 한 명은 마당에 뻗어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장독대를 망가뜨리진 않았으나 그 옆에 주저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요?"

 

 품에서 봉투를 꺼낸 한현호는 1000원짜리 지폐 1장을 꺼냈다. 이 정도 금액이면 밥상을 새로 사고 마루를 수리하고도 남을 돈이었다. 

 "흠,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

 콧방귀를 뀌며 돈을 받은 주인장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옆으로 한현호가 한 걸음 다가와 속삭였다.

 "그리고 만약 경찰이 오면 이야기도 잘해주세요."

 "크흠, 뭐 얘기는 해보지."

 한현호는 그의 대답에 살짝 웃어 보이고는 주한을 보았다. 그는 어느새 말린 궐련을 꺼내 입에 물고 있었다. 

 "가자."

 "고맙다. 너도 하나 할래?"

 

 주한이 주머니에서 궐련을 내밀었다. 작은 봉투에 3개 피가 남아있었다.

 

 "아니, 나는 여자친구 만나러 가잖아. 궐련 냄새 싫어해."

 "그렇군."

 주막을 나온 그들은 자신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사람들도 더 이상 구경거리가 없어지자 하나둘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도깨비의 자식이란 걸 제대로 인식시켜줬네."

 "이제 다른 도깨비의 자식들한테도 까불지 않겠지. 개자식들."

 한현호는 주막에서 몇 걸음 나오지 않아 도시를 순회하는 이동용 마차를 손짓으로 불러세웠다. 말 두 마리가 끄는 나무 마차가 둘 앞에 섰다. 마차 안에는 다른 손님이 앉아있었다. 마부가 손을 내밀자 주머니에서 동전 5원을 건넸다.

 "대단하네. 먼저 간다. 내일 면접에서 서로 좋은 결과 있길 바라자고."

 "가라."

 "참, 꼭 연락하고 자식아."

 "고맙다. 정말로."

 

 한현호는 마차를 타고 멀어져갔다. 주한은 마차의 뒤를 보며 그 자리에서 궐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들이 머문 곳은 도시 외곽에 위치한 주막이었지만, 도시 국가인 전대 국가는 모든 곳에 마차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돌길이 깔려있었다. 바로 오성 그룹이 투자한 기반 시설 중 하나인데 오성 그룹은 전대 국가에서 성장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술 좋은 난쟁이들을 영입하였었고 그들을 필두로 세계적으로 성장한 기업이었다.

--

 

 창밖을 보며 고심한 표정을 짓는 한현호의 옆으로 강하나가 다가왔다. 그는 강하나가 다가왔음에도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오성 그룹 고급여관 5층의 위치는 상점 거리를 막힘없이 보여주었다. 창밖의 풍경은 형형색색이었다. 길가의 심어진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들은 붙잡고 불그스름하게 익히고 있다. 나무들 밑으로 자신들의 가게 앞에 외등을 켜고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과 실랑이하는 시민들이 있다. 그들의 의상은 모두 제각각이었는데 간편하게 청바지와 색이 입혀진 셔츠를 입고 있거나, 저고리와 도포를 입은 자들도 있었다.

 "무슨 생각해?"

 

 산뜻한 목소리가 적막을 깼다.

 한현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면서 고개를 돌린 그녀는 속옷만 입은 체 매끈한 몸매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가 한현호와 눈을 마주치고 생긋 웃어 보이자, 여우상을 한 그녀의 미모는 뚜렷하게 빛났다. 

 

 "그냥, 내일 있을 면접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어."

 "그것뿐이야?"

 "음, 그거랑 오랜만에 만난 우리의 저녁? 내가 빠트린 건 없었나?"

 한현호가 능청맞게 웃고 그녀를 마주보았다. 그도 그녀 못지않게 뚜렷한 이목구비가 미남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 달 만에 만났으니, 준비는 했겠지?"

 강하나가 양손으로 한현호의 목을 감쌌다. 둘은 오랜만에 만나 점심에 오성 과자집에서 다과와 함께 수다를 떨고, 맛있는 저녁을 한 뒤 들어온 것이었다. 

 늘씬한 몸매에 적당히 솟은 가슴이 보였다. 한현호는 그녀의 허리를 양손으로 감쌌다.

 "씻으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

 한현호는 물음과 함께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다리를 받쳐 그녀를 가볍게 들었다. 

 오성 그룹의 고급여관 내부는 아침의 주막과는 달랐다. 고급 목재를 이용한 침구들이 방안에 가득했고, 세공된 인강철을 유리 덮개에 넣은 푸른 등은 불꽃이 필요 없었다. 씻거나 물을 마시기 위해 마당에서 물을 길어오지 않아도 되었다. 만약 춥다고 하면 구석에 있는 벽난로에서 장작 또는 열을 내뿜는 인강철을 사용할 수 있었다.

 

 "천천히 씻지 뭐, 그것보다 난 자기가 무슨 생각 했는지 궁금한데?"

 

 한현호는 그녀를 침대에 조심히 눕히고 자신이 그 위에 올라탔다.

 "아까 말했잖아, 내일 있을 면접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이야. 그것 보다 소화도 시킬 겸 사랑을 먼저 나눠볼까?"

 "됐네요.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야."

 강하나가 한현호를 가볍게 밀쳤다. 한현호는 뒤로 물러나며 그녀가 상체를 세우는 것을 도와주었다. 둘은 나란히 침대 끝에 앉았다. 

 강하나는 한현호와 정략결혼 할 사이었다. 청충국가에서 우직하고 사람 돌보기로 유명한 한 양반의 집안과, 기경국가의 울서도시에서 장사로 어느 정도 성공한 상인 집안이 만난 것이다. 당시 강 상인의 집안은 더 이상 국가에서 고아들을 거두지 않는 모습에, 고아 자선사업 및 기부 활동을 한 집안이었다.

 두 집안의 첫 만남은 강하나의 아버지가 한 양반의 집안에 물건을 팔러왔을 때였다. 그때 둘은 얼굴을 텄고 서로 옳다고 하는 일들이 비슷한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두 집안은 정기적으로 친목을 가졌다.

 한현호의 부모는 그때 강하나를 처음 보았다. 그녀는 겉으로 보기에는 앙칼져 보이나, 그 성격은 밝고 활달하며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텄다. 특히 강 상인이 고아들을 도와 일을 나갈 때 같이 나가 돕는 모습에 며느릿감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이 둘이 서로 만난다고 하면 양가 부모는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 두는 단계까지 와있다. 

 "내년이면 나도 서른이야. 우리의 정략결혼 날짜가 있지. 우리 둘이 처음 만난 게 벌써 15년이나 지났다니 신기하지 않아?"

 "내가 13살에 오빠를 만났었나?"

 "그래, 그때부터 하나와 만난다고 하면 장인어른께서 경호원을 붙여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됐네."

 "그때는 요괴가 없어졌다고 해도 불안했으니까, 이제는 확실히 없고 말이야. 아직도 우리 아빠는 내가 조금만 험한 곳이라도 간다면 수행원을 붙여주신다니까?"

 "나 같아도 그렇겠다. 하나밖에 없는 아리따운 딸이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그런데 여기는 울서 도시에서 반나절이나 걸리는 곳인데 수행원이 안 보이던데?"

 "응, 내가 불편해서 거리를 둬서 티 내지 말아 달라고 했어. 수행원은 당연히 있고, 아래층에서 쉬고 있어. 저게 뭔 줄 알아?"

 

 강하나가 침대 옆에 놓인 탁자를 가리켰다. 탁자 위에는 그녀가 벗어놓은 금팔찌 2개가 올려져 있었는데, 팔찌는 평범해 보였으나 중간에 보석처럼 빛나는 것이 보였다. 한현호는 그것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자세히 봐봐."

 팔찌를 집은 그녀는 한현호의 눈앞으로 가져갔다. 보석은 방에서 빛나는 인강철 등과 똑같은 푸른 빛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뭐야? 작은 통신기라도 되는거야?"

 "아니야, 예전에 내가 위급할 때 쓰던 대롱 폭죽 있지? 그게 이걸로 대체 된 거야. 위급할 때 양 손목에 낀 팔찌끼리 부딪치면 내 수행원이 끼고 있는 목걸이에 신호가 가는 거야."

 강하나가 다른 팔찌를 들어 부딪히는 시늉을 했다.

 "역시, 장인어른의 딸 사랑은 대단하시네. 우리도 곧 부딪힐..."

 "아 정말."

 한현호의 말에 강하나는 피식 웃으며 그의 다가오는 얼굴을 밀었다. 한현호는 그대로 뒤로 누웠다. 푹신한 침대가 사뭇 어제 주막의 이불과는 달랐다.

 "내일, 오성 그룹 면접 말이야. 나는 괜찮은 데 주한이 잘 됐으면 좋겠네."

 "주한씨 잘 지낸다면서? 예전보다 얼굴도 폈고, 자신감도 생겼다면서 그러면 내일 면접에 많은 이점이 될 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이제 걔는 발품을 그만 팔고 한자리에 붙박여서 정기적인 일이 필요해. 매일 보따리 메고 산을 넘는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겠어."

 "난 처음에 그 사람 너무 음침해서 놀랐다니까."

 강하나의 말에 한현호가 누워서 째려보았다. 

 "왜? 틀린 말도 아니잖아. 우리 아빠가 내가 어릴 때부터 고아들을 위한 자선사업을 했다지만, 그 정도로 음침한 사람은 없었거든, 가만히 있어도 풍기는 분위기가 어두웠어."

 "아버지가 죽고 오명을 그대로 뒤집어썼으니까. 마을에서는 아무도 받아주는 이가 없었지. 자세히 말은 못 하지만 꽤 여러 가지 일을 당했더군."

 "그런데도 둘이 친하게 지내는 게 참 특이하다니까."

 "글쎄, 어릴 때부터 집에서 같이 살아서 그런가. 근데 이상하게도 성격은 맞았어, 아버지가 주한이를 데려왔을 때 처음에는 말이 없어서 벙어리인줄 알았지."

 "그래서 놀러 나갈 때 매일 데리고 나갔다며? 사고 친 적은 없어?"

 "없어. 그냥 바보 같이 당하기만 했지."

 "내가 놀리기만 해도 가만히 있고, 다른 사람들이 놀려도 가만히 있고. 근데 내가 누군가에게 맞거나 하면 경호원이라도 된 것처럼 달려들었지."

 "됐어. 똑같은 옛날이야기. 주한씨가 알아서 잘하겠지. 설령 면접에 떨어져도 말이야."

 "떨어지면 안 되지."

 "주한씨가 많은 일을 하며 독하게 살아왔다면서? 그럼 독한 마음 품고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너무 신경쓰지마."

 한현호가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가을로 접어든 저녁 공기가 쌀쌀하게 느껴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하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래. 이제 좀 씻자."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나머지 글은 하단 주소에 꾸준히 올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https://novel.munpia.com/346887/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