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수, 연기력과 디렉팅에 대하여

https://etoland.co.kr/link.php?n=9141829 복사

먼저 만화책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기려는 일본식 실사판과 달리, 

원작을 모티브로 삼은 스핀오프 같은 느낌으로 상상력을 발휘한 점은 참 좋았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였기 때문에 끝까지 호기심을 잃지않고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완주가 쉽지 않았던 몇 가지 요인이 있는데 그중 첫째가 어색한 연기였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작품들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는데,

원래 연기력이라는 건 모국어가 아니면 평가하기가 매우 어려운 영역이죠.

표정만이라면 누구나 그럴 듯하게 지을 수 있으니까요.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경찰청 사람들"을 보여줘도 그 어색함을 잘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우리도 영어에는 꽤 익숙하기 때문에 "서프라이즈"의 재연배우들 연기가 어색하다는 걸 아는 거죠.

유럽이나 제3세계 영화들을 보고 연기력을 평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작품들이 외국에 점점 더 많이 알려질수록 연기에 대한 평가도 점점 더 엄격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아직까지는 외국 평론가들의 우리나라 배우들 연기 평가보다 그냥 우리가 느끼는 게 더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문화사대주의나 일제의 우리문화 말살정책 따위와는 관계가 없는 얘기입니다.

오히려 내 친구가 TV에 나오면 보기 힘든 것처럼, 외국인들에게 평가받는 우리나라 작품이 더 좋은 모습이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게 작용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뭐, 이것도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좀 웃긴 일일 수 있겠지만요.

어쨌거나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작품에서 가장 거슬리는 부분은 1화에서  이제 갓 인간의 몸을 빼앗은 괴물들의 기계적인 말투였습니다.

물론 원작의 설정에 충실했죠.

문제는 " 기계적인 말투" 자체가 아니라, 기계적인 말투 연기가 무슨 '경찰청 사람들' 같더라는 겁니다.

이건 조연과 단역 배우들의 연기력 문제가 아니라 감독의 디렉팅이 문제였다고 봅니다.

저는 이게 연상호 감독이 (어제 뒤늦게 찾아본) 일본 실사판 기생수의 연기톤을 그대로 살리려고 한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일본의 실사판이야 원래 어린아이가 봐도 누가 나쁜놈이고 누가 우리편인지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과장되고 정형화된 연기를 하잖아요.

도입부 내레이션부터 실망스러웠는데, 알고보니 이건 그냥 일본 실사판 도입부를 그냥 그대로 사용한 거였더군요. 

뭐, 도입부를 그대로 가져다 쓸 정도면 그 톤을 그대로 이어가려고 노력했다고 해도 (칭찬은 못할지라도) 적어도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주조연급 배우들의 연기도 한마디로 말해서 "이 사람이 어떤 캐릭터인지 쉽게 설명해주기 위한 연기"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이정현입니다.

이정현은 한때 "저 여자 진짜 귀신 들린 거 아닌가" 싶었을 정도로 연기 잘하는 배우죠.

그런데 이 연기는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보신 분들이야 다 아실 테니 길게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초반에는 진짜 힘들었지만,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액션씬 카메라 워킹 등,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볼만했습니다.

욕도 아까운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보는 내내 아쉬움에 불만이 터져나오더라도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들도 있는 거죠.

작품이 기대에 어긋난다고 과도하게 비난하는 것도 웃기는 짓이지만,

자기가 재미있게 봤다고 정당한 비평과 비판들에 악플로 대응하는 것 또한 한심한 짓일 겁니다.

화제를 모은 작품인만큼 그런 경우가 많이 보이길래 한마디 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