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고밀 개발' 약일까? 독일까?

아파트 ‘고밀 개발’ 약일까? 독일까?

[아파트 속 과학] 용적률과 건폐율

생존을 위한 개체군 밀도와 상호 거리

최근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생태학에서 기본 개념으로 등장하는 개체군 밀도와 환경수용력을 연상시킨다. 개체군 밀도란 특정 지역에 서식하는 특정 종에 속하는 개체군 수를 말한다. 개체군 수는 세대를 거듭하면 지수함수처럼 폭발적으로 증가해 이론적으로 J자형 생장곡선을 그릴 것 같은데, 실제로는 환경저항에 부딪혀 S자형 생장곡선을 그리게 된다.

여기서 환경저항은 특정 지역에서 특정 종이 유지될 수 있는 개체 수에 상한이 있다는 의미인데, 생태학에서는 이를 환경수용력이라고 표현한다. 개체군 밀도가 상승하면 먹이와 생활공간이 차츰 부족해지고, 노폐물과 질병은 증가하며, 천적 증가로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결국 환경수용력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더 이상 개체 수를 늘리지 못하게 된다.

일정 지역에 살 수 있는 최대 개체 수가 정해져 있다는 것은 얼핏 초파리처럼 단순한 생명체에만 적용될 일 같지만 실제로는 고등한 동물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동물의 경우는 세력권이나 영토권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동물은 특정 지역을 자신의 활동 영역으로 설정한 후 동일 종의 다른 개체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방어한다. 개체 사이에 일정 거리를 확보해 특정 지역에 사는 개체군 밀도가 적정하게 유지되는 셈이다. 백수의 왕으로 불리는 사자조차도 본인만의 활동 영역을 확보하지 못하면 먹이를 구하지 못하고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1992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파 앤드 어웨이’는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 먼저 달려가서 깃발을 꽂는 사람이 주변 땅을 차지하는 꿈같은 얘기가 나온다. ⓒ 유니버설 픽처스

지성을 갖춘 사회적 동물인 인간도 개체군 밀도, 즉 서로 간의 거리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할리우드 영화 ‘파 앤드 어웨이’는 1800년대 중반 미국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홈스테드법에 의해 먼저 달려가서 깃발을 꽂는 사람이 주변 160에이커의 땅을 차지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인간도 척박한 환경에서 농작물을 가꾸고 가축을 키우며 생존하기 위해서는 적정규모 이상의 토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물론 산업혁명 이후 생산성 향상과 사회적 분업화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 필요한 토지면적을 계속 줄이고 있다.

아파트의 개발 밀도 보여주는 두 가지 척도

우리나라 사람 열에 아홉은 도시에 산다. 국토교통부가 2020년 7월 발표한 ‘2019년 도시계획 현황 통계’에 따르면 전체 국토의 16.7%를 차지하는 도시지역에 거주하는 인구 비율은 91.80%에 달했다. 일자리를 찾아, 혹은 교육 때문에 사람들은 도시지역으로 계속 몰리고 있다.

인구가 몰리지만 토지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도시 내 주거지역의 고밀 개발은 필연적인 상황이다. 공동주택인 아파트는 고밀 개발을 기본 바탕으로 두고 있어 도시에 최적화된 주거형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무한정 밀도를 높여서 존엄한 인간을 닭장처럼 다닥다닥 서로 붙여 살게 만들 수는 없다. 도시 내 주거지역에 개발 밀도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류가 도시를 형성하기 시작한 이래 위정자들은 주거지역의 개발 밀도를 신경 써 왔다.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로마인이 살던 집합주택을 높이 7층 이하로 제한하고, 일정 폭 이상의 도로를 확보하도록 했다. 당대 로마는 인구 100만 명 이상 거대 도시로 급성장했는데, 개발 밀도 제한을 통해 지나친 과밀을 억제함으로써 안전과 위생은 물론 정치적인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다.

특정 지역의 개발 밀도를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되는 용적률은 높이의 개념이고(왼쪽), 건폐율은 넓이의 개념이다(오른쪽). ⓒ 주택도시보증공사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개발 밀도 제한은 용적률과 건폐율을 통해 관리된다. 용적률은 대지면적에 대한 대지 내 건축연면적(대지 내 건축물의 바닥면적을 모두 합친 면적)의 비율이다. 땅 위로 얼마만큼 건축물을 지었는지를 나타내는데, 국토계획법에서 정한 허용범위 안에서 지자체 별로 지역여건을 고려해 도시계획조례로 상세하게 정한다.

아파트를 건립하는 일반주거지역의 용적률은 과거 400%가 일괄 적용됐는데, 예를 들어 100㎡의 땅에 바닥면적 50㎡의 건물을 8층까지 올릴 수 있었다. 2000년부터 용도지역을 세분화하면서 전체적으로 용적률이 낮아졌는데, 국토계획법에서 일반주거지역의 용적률로 1종은 100% 이상 200% 이하, 2종은 150% 이상 250% 이하, 3종은 200% 이상 300% 이하, 준주거지역은 200% 이상 500% 이하로 규정한다.

서울의 경우 용적률은 도시 과밀을 억제하기 위해 국토계획법에서 정한 범위 중 낮은 수준을 적용하고 있다. 용도지역에 따라 정해져 있는 기준 용적률은 지구단위계획 수립 시 획지계획, 공동 개발, 친환경 계획 등으로 인센티브를 받아 허용 용적률로 높일 수 있고, 과밀 개발의 대가로 지역주민을 위한 시설을 기부채납하는 공공기여를 통해 상한 용적률까지 더 높일 수 있다.

건폐율이란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면적의 비율이다. 쉽게 말하자면 땅에 얼마만큼 건축물을 넓게 지었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만약 건폐율에 제한이 없다면 똑같은 용적률이어도 건축물을 대지면적 가득 채워 숨 막히게 지을 수도 있다. 일반주거지역의 건폐율은 1종과 2종은 60%, 3종은 50%다. 이는 건축물을 올릴 때 1종과 2종은 40%, 3종은 절반 이상을 남겨야 한다는 의미다.

일반주거지역에서 1종과 2종보다 용적률이 더 높은 3종의 건폐율이 더 낮은 이유는 3종이 고밀하게 개발돼 더 답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3종은 1종이나 2종보다 건축물 높이를 높여 지상에 여유 공간을 더 많이 확보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도시지역의 고밀 개발 적정 수준은?

일반적으로 아파트를 건립할 때는 지구단위계획 수립이나 도시관리계획 결정(변경)을 통해 용도지역을 기존보다 1~2단계 정도 종 상향을 시켜서 고밀하게 개발한다. 결과적으로 도시의 개발 밀도는 점점 높아지게 된다.

아파트의 고밀 개발은 토지이용 효율을 증대하고, 저밀 개발에 비해 시설 설치비용을 절감하며, 자연녹지 훼손을 줄일 수 있다. 각종 편익시설을 주거 인근에 배치해 편리하고, 대중교통수단의 효율성이 증대된다. 사회적 접촉 기회의 증가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경우 이웃 형성과 공동체의식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단점으로는 고밀 개발 건축물이 가지는 위압감과 답답함이 상당하고, 거주민이 원치 않는 사회적 접촉이 빈번히 발생해 스트레스가 증가할 수 있다. 도로, 주차장 등 기반 시설과 대중교통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을 경우 불편은 상상을 초월한다. 수용인구가 많아 편익시설이 부족하고, 일조권과 사생활 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고밀도로 개발된 아파트가 밀집해 있으면 편익시설 증가와 대중교통 이용 등 장점이 있다. ⓒ 김홍재

인구가 밀집하는 도시의 주거지역에서 아파트 형태의 고밀 개발이 단독주택 중심의 저밀 개발보다는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파트를 통한 고밀 주거 개발은 대중교통 기반 시설 확충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서로 시너지효과를 내며 발전하고 있다.

반면 멕시코시티나 방콕, 자카르타, 마닐라 등에서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저밀 주거 단지를 통해 도시 외곽으로 확장하고 있다. 인구 분산으로 지하철이나 통근 철도 같은 수송 용량이 큰 대중교통 기반 시설을 갖추기가 마땅치 않아 자동차와 버스에만 의존하고 있다. 덕분에 통근거리가 멀어지고 교통 체증이 심각해지면서 평균 출퇴근 시간이 한 방향으로 2~3시간씩 걸려 도시의 생산성과 삶의 질 저하가 심각한 상황이다.

쾌적한 주거환경 형성을 위해 도시 내 주거지역의 적정 개발 밀도에 대해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 진행된 연구들을 살펴보면, 아파트 입주민이 선호하는 주거환경의 용적률은 법적 상한 용적률 수준보다 다소 낮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 반해 건설사들은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 최대한의 고밀 개발을 선호한다.

향후 주거지역에서 용적률을 현재보다 상향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 하향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다각적 검토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더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용적률을 상향할 경우, 교통 혼잡과 주거환경의 질이 전반적으로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반대로 주거 쾌적성을 목표로 용적률을 하향할 경우, 인구의 총량 감소가 아닌 거주지 재배치이기 때문에 도시 확장과 광역 통행량 증가에 따른 생산효율성 저하가 발생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