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설득 못하면 주택 물량 못 맞춘다
송진식 기자 [email protected]
실효성 놓고 갑론을박 이어져
계획 중 ‘공공재건축 38%’ 차지
‘2배 남는 장사’ 사업성 충분한데
강남 등 주요 단지들 “관심 없어”
정부가 지난 4일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8·4대책)’을 통해 “공공참여 고밀 재건축(공공재건축)으로 향후 5년간 5만가구 이상 공급하겠다”고 밝힌 이후 정책의 실효성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8·4대책의 전체 공급량인 13만2000가구 중 공공재건축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37.8%에 달해 공공재건축의 성패에 목표 공급량 달성 여부도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재건축 단지별로 차이는 있지만 정부가 공공재건축의 ‘인센티브’로 내건 ‘용적률 500%, 50층 건립’은 분명 사업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다만 같은 단지에 공공임대가 들어서는 데 대한 기피의식, 재건축 규제 완화 등 인센티브를 넘어 추가 개발이익을 요구하는 조합원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알려진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8·4대책으로 신규 공급되는 주택 숫자에서 공공재건축분 5만가구를 아예 제외시켰다. 압구정 현대, 잠실주공5단지, 대치동 은마 등 주요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도 공공재건축에 선긋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상은 다르다고 정부는 본다. 12일 한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현재 밝힐 수는 없지만 공공재건축에 관심을 갖는 단지들이 분명 있다”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국토부와 서울시 간 본격 가동한 ‘공공정비사업 활성화 TF’를 활용해 사업성 분석, 무료 컨설팅 등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라며 “8~9월 내 선도 사업지를 발굴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부동산 업계 역시 공공재건축의 사업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현재 4400가구가량인 은마아파트는 제3종일반주거지역이라 서울시 조례상 재건축 시 최대 250%의 용적률, 35층 이하 층고제한을 적용받는다. 은마는 이미 204%의 용적률을 적용받아 지은 터라 재건축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추가 물량이 220가구(조합원분 제외) 정도다. 절반을 기부채납하는 조건으로 용적률을 300%까지 높여도 330가구가 최대다.
반면 공공재건축을 적용하면 500%를 적용받아 1320가구가량이 추가로 확보된다. 이 중 절반을 기부채납하더라도 660가구가 남아 기존 조건의 2배다. 재건축 완료 후 가구당 시세가 최소 20억원을 상회한다고 봤을 때 공공재건축으로 330가구가 더 늘어날 경우 개발이익 측면에서 적지 않은 금액이다.
서울 강남권의 한 공인중개사는 “강남권 재건축단지 중에서도 가구 지분이 12~13평 규모로 적은 은마나 압구정 현대 등은 공공재건축 조건이 결코 나쁘지 않다”며 “50층으로 건물을 올렸을 때 희소성이 높은 초고층 대단지로서 추가적인 가치상승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공공재건축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등이 조합과 함께 사업의 공동시행사가 되는 구조다. 공공이 참여하기 때문에 사업의 투명성이 보장되고, 신속한 인허가로 빠른 사업 진행이 가능하다. 정부가 공공재건축의 장점으로 가장 먼저 꼽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재건축의 경우 99.9%는 사업 과정에서 각종 비위나 설계 변경 등을 놓고 조합 내 갈등을 겪고 실제 이로 인해 사업이 무산되는 경우도 많다”며 “재건축을 통해 개발이익보다는 깨끗한 내 집 한 채를 갖기 원하는 조합원에겐 공공재건축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잠실주공5단지만 해도 10년 전에 이미 재건축 허가를 받았고, 서울시가 일부 대로변 지역에 50층 건립허가도 내줬지만 설계 문제와 기부채납을 둘러싸고 조합 내 이견이 생겨 사업 진행이 안 되고 있다.
공공 재건축 실효성 논란
장점에도 불구하고 업계가 공공재건축 참여 저조를 예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공임대에 대한 조합원들의 기피의식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공공재건축이 사업성은 있지만 공공임대를 적지 않게 함께 짓는 데 대한 조합원들의 정서적 거부감이 너무 크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특화설계 제한이나 건축비 절감으로 인한 아파트 건물의 품질 하락을 우려하는 조합원들도 많다. 이 관계자는 “특히 강남권의 경우 ‘랜드마크’를 추구하며 루프톱(옥상) 사우나, 조식뷔페 등 단지 내 초고급 특화시설 및 설계를 적용하는 게 최근 추세”라며 “공공임대를 같이 짓게 되면 특화설계가 제한되고 건축비 절감 압박이 높아진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합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공공재건축 특성상 기존 조합들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극복 과제로 꼽기도 한다. 서울 용산의 한 공인중개사는 “막상 LH 등이 공동시행사로 참여하면 사업 진행이나 사업비 조달 과정에서 LH의 입김이 커지게 된다”며 “기득권을 쥔 기존 조합이나 재건축추진위 등은 이를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에 공공재건축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재건축 경험이 없다시피 한 LH 등이 사업 과정에서 불거지는 다양한 요구와 각종 분쟁을 원활하게 조정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업계에선 정부가 목표로 한 공공재건축 5만가구를 채우려면 적어도 2만가구 이상의 재건축단지 확보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재건축 대단지가 몰려 있는 목동의 경우 현 용적률이 150% 미만 저밀도 단지들이 많아 공공재건축 참여 요인이 크지 않다. 강남권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로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은 셈이다.
이 때문에 재건축부담금(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이나 분양가상한제 등의 기존 규제를 추가로 완화해 참여를 더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대해 국토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공공재건축을 이유로 한 추가 규제 완화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주택 관련 기관의 한 관계자는 “입지가 좋은 주요 재건축단지의 경우 정권이 바뀌면 재건축초과이익환수나 분양가상한제 등의 규제도 풀리고 층고제한도 완화될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는 곳이 적지 않아 공공재건축에 참여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일단 모범이 될 만한 공공재건축 사례를 조성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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