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못간 길…상온 작동 양자컴퓨터 도전

ETRI, 광자 기반 양자컴퓨터
핵심기술 단일광자 생성 성공

구글·IBM 양자 컴퓨터는
-273도 극저온에서만 작동

◆ 글로벌 소부장 강국의 길 ◆

ETRI가 개발한 단일광자 생성 및 양자 게이트 회로가 단일 칩으로 구성된 패키지. 세계 최강 슈퍼컴퓨터를 사용해도 1만년이 걸리는 계산을 단 4분 이내에 해낼 수 있어 '꿈의 컴퓨터'로 불리는 양자컴퓨터를 현실로 만드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하나 있다. 현재 개발 중인 기술로는 '절대온도(영하 273도)'에 가까운 극저온 상태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 컴퓨터는 가장 작은 연산 단위로 '비트(bit)'를 사용한다. 비트는 '0' 아니면 '1'이기 때문에 비트 하나당 정보 하나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다르다. 기본 정보 단위인 큐비트(qubits)가 0과 1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기 때문에 n개 큐비트가 나타낼 수 있는 상태의 수는 2의 n제곱만큼 커진다. 이를 양자컴퓨터의 '병렬성'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큐비트 2개는 '00, 01, 10, 11'이라는 4개 상태를, 큐비트 4개는 2의 4제곱, 즉 16개 상태를 나타낼 수 있다.

큐비트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매체는 전자, 광자, 원자핵이다. 현재 양자컴퓨터계 최강자로 평가받는 IBM과 구글은 전자를 활용하는 초전도체 기반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고 있다. 구글에서 만든 53개 큐비트로 구성된 '시커모어'라는 양자컴퓨터 칩은 엄청난 연산 속도를 자랑하지만 섭씨 영하 273도까지 냉각해야만 작동한다.

주정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양자광학연구실 책임연구원(박사)은 "초전도체를 기반으로 한 기존 양자컴퓨터는 절대온도 0도까지 냉각하면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원리를 이용하기 때문에 상온에서 작동하기 어려워 항상 극저온 환경을 유지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원자핵을 큐비트로 사용하는 '이온트랩(이온덫)' 방식 역시 극저온에서만 작동한다.

그런데 ETRI는 빛의 최소 단위인 광자를 이용해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광자는 상온에서도 양자가 0이기도 하고 1이기도 할 수 있는 '양자 중첩' 상태를 매우 잘 유지하는 특성이 있어 상온에서도 양자컴퓨터를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 박사는 "광자는 자연의 기본 에너지 단위로 다루기가 매우 어렵지만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이 적어 상온에서 광자의 결맞음 동안 양자 중첩 상태를 매우 잘 유지한다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결맞음은 양자 정보가 유지될 수 있는 시간이다.

이와 관련해 ETRI는 광자 기반 양자컴퓨터를 구현하기 위한 핵심 기술인 '단일광자'를 생성하고 양자 게이트를 동작하는 데 성공했다. 단일광자를 개발하기 위해 세계 여러 연구소가 연구하고 있지만 실제 통신에서 많이 활용되는 1550㎚(나노미터) 파장 대역에서 단일광자 광원을 얽힘 상태로 생성하는 기술은 ETRI가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주 박사는 "굉장히 강한 레이저 빛을 실리콘 광 집적회로에 입력하면 광 집적회로 내에서 비선형 상호작용에 의해 새로운 단일광자가 두 개 만들어진다"며 "이렇게 만들어진 광자는 얽힘 상태로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양자 얽힘은 중첩과 함께 양자컴퓨터 작동에 꼭 필요한 핵심 현상이다. 얽힘이란 두 개 입자가 강한 상관성을 가지면 아무리 멀리 떨어뜨려놔도 한쪽이 반응할 때 다른 한쪽도 즉각 반응하는 현상을 말한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와 달리 마치 '블랙박스' 같은 형태로 작동한다. 주 박사는 "양자컴퓨터는 블랙박스처럼 열어볼 수가 없다"며 "이 때문에 양자컴퓨터 계산에서 오류가 발생해도 열어서 보정할 수 없어 오류 측정을 알아내거나 오류 보정을 하기 위해서는 얽힘 상태를 활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즉 양자컴퓨터 안에 있는 양자와 밖에 있는 양자를 얽힘 상태로 만들어놓으면 밖에서도 오류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ETRI는 얽힘 상태 양자 광원을 이용해 양자 정보를 조작하는 광 집적회로 소자도 개발했다. 관련 내용은 오는 12월 우수 국제학술대회인 ECOC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주 박사는 "향후 국내 반도체 기업, 양자 관련 소재·부품·시스템 기업과 협력해 상온 동작 양자컴퓨터 구현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새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