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내년 2월 ‘화성의 소리’를 듣게 된다

미국 화성탐사 로버 ‘퍼서비어런스’ 내년 2월엔 활동 개시 [경향신문]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지상탐사용 로버 ‘퍼서비어런스’ 활동모습 상상도. NASA 제공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탐사 로버 ‘퍼서비어런스’를 실은 유나이티드 론치 얼라이언스 아틀라스 V 로켓이 지난달 30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상탐사용 각종 장비 외에
소리 수집용 마이크도 장착

모래 폭풍·탐사 작업음은 물론
대기 흐름 분석 가능성도

보이저 1호의 지구별 사진처럼
인류에 커다란 선물 될 듯

2015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마션>의 도입부는 화성에 불어닥친 거센 모래 폭풍에서 시작한다.

모래 폭풍의 힘이 지나치게 세다고 판단한 탐사대장은 기지를 버리고 화성 궤도 밖으로 긴급 철수할 것을 결정한다. 대원들이 기지를 나와 탈출용 로켓을 향해 강풍을 가르며 걷는 순간, 대원 중 한 명인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바람을 타고 날아온 육중한 금속 물체에 강타당해 어둠 속으로 날아가는 사고가 일어난다. 시계 제로인 상황에서 구조는 불가능했고 남은 동료들은 결국 로켓을 타고 이륙한다. <마션>의 시작은 와트니가 홀로 ‘화성인’이 된 사연을 보여준다.

이 장면이 생동감 있는 건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까지 동원한 묘사에 있다. 수많은 모래 알갱이가 우주비행사 슈트에 빠르게 부딪칠 때 날 법한 거친 마찰음이 관객의 귓전에 꽂히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화성의 대기 밀도는 지구의 1%에 불과해 영화에서와 같은 강풍이 나타나긴 어렵지만, 소리가 만드는 감흥의 힘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화성의 진짜 모래 폭풍 소리는 어떨까. 이걸 아는 지구인은 아무도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리를 수집할 마이크를 달고 임무에 나선 화성 탐사선이 없었기 때문이다. 1999년 이후 3차례 시도됐지만 기술 문제로 마이크를 켤 수 없게 됐거나 탐사 계획이 취소됐다. 2018년 미국의 또 다른 화성 탐사선 ‘인사이트호’가 바람 소리를 지구로 전했지만 날 것 그대로의 소리가 아니라 압력 센서 등에 잡힌 정보를 보정한 것이었다.

지난주 발사된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지상탐사용 로버인 ‘퍼서비어런스(Perseverance)’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종 과학 장비를 실은 승합차 덩치인 퍼서비어런스에는 주변 소리를 담을 마이크가 두 대 실려 있다. 한 대는 퍼서비어런스가 내년 2월쯤 화성 대기를 뚫고 지상으로 하강할 때 작동한다. NASA 기술진이 안전한 하강을 위한 추가 정보를 얻는 데 활용한다.

또 다른 마이크는 퍼서비어런스의 특수카메라인 ‘슈퍼캠’에 장착된다. 슈퍼캠에는 화성의 암석에 광선을 쏴 가열하는 기능이 있다. 카메라로는 증발된 물질의 화학 구성을 분석하고 마이크로는 광선이 암석에 부딪치며 생기는 ‘펑’ 소리를 잡아내 암석의 질량과 경도를 알아낸다.

국내 천문학계의 한 관계자는 “마이크에 잡히는 소리와 연관 지어 화성 대기의 흐름을 분석하는 게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소리는 대기를 매개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마이크 장착이 특히 주목받는 건 ‘화성의 소리’가 전문가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에게도 특별한 선물이 될 거라는 점 때문이다. 퍼서비어런스 동체 주변을 지나는 바람, 바퀴에 밟혀 튀는 모래알, 상상이 아닌 진짜 화성 모래 폭풍이 내는 소리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대중의 애정과 호기심을 키울 거라는 얘기다.

국제과학단체인 ‘행성협회’에선 “화성 기압이 낮긴 하지만 인간의 귀로 잡을 수 있는 음향이 생길 것”이라고 분석한다.

탐사선에 마이크를 붙이자고 처음 제안한 인물은 유명한 천문학자이며 세계적인 과학대중화 운동가였던 칼 세이건이었다. 그는 1996년 NASA에 편지를 보내 “몇 분간 녹음된 화성의 소리는 대중의 관심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칼 세이건은 1990년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의 사진인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촬영을 주도했다.

명왕성 궤도 주변에서 찍은 작고 흐릿한 지구 사진은 지구가 광대한 우주에선 티끌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 때문에 ‘창백한 푸른 점’은 인간에게 겸손함과 인류애를 촉구한 ‘수작’으로 꼽힌다. 내년 2월 전해질 화성의 소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주목된다.

이정호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