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
오랜만에 극장에서 좋은 영화를 본것 같네요. 처음엔 별로 리뷰적을 생각이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애착이 계속 가서요.
'좋은 스토리'란 무언가를 계속 고민할수록 기준은 확고해져가지만, 밖으로 그것을 말하는게 무서워요. 왜냐하면 그건 저에게 좋은 스토리라고 생각해요. 계속 고민을 하는것은 누구나 보기에 좋은 스토리를 찾는 것이기보다, 내가 좋은 스토리를 찾아가는 과정인거 같아요.
제 취향의 영화가 가지는 연출적 특징을 최대한 간결하게 정리하자면, 관객이 스크린을 통해 영화속 세계관을 접할때 관객은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작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현실과 유리되어 영화를
더 많이 들여다볼수있고, 커다란 카타르시스를 경험할수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앞에 관객이 작아지도록 만들려면, 관객이 인물과 플롯을 연민하고 사랑하도록 만들면 됩니다.
스토리
오락영화에 무슨 스토리냐 하실테지만
기본적으로 서사가 군더더기없을수록 오락과 작품성의 균형이 조화롭게 됩니다.
우선 영화는 콩의 시선을 주로 따라가게 되어있죠. 저는 이 선택이 좋았다고 봐요. 고질라 영화들을 많이 봐왔지만 고질라는 파충류에 가까워서 관객이 이입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콩은 영장류에 가까워서 얼굴표정이나 행동을 통해 관객이 캐릭터에 몰입하기가 쉬워요. 그래봤자 말못하는 괴수지만요.
아무튼 인간이 콩을 돔시설에 가두어 놓은채 영화가 시작하는데, 콩이 나무를 돔시설 벽에 던져버리죠. 이것은 콩의 자유가 제약되어있기도 하지만, 언제든 시설을 파괴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할수 있다는것도 보여줍니다. 그런데 '왜 탈출하지 않는가?'에 대해선 '지아'라는 스컬아일랜드 원주민 소녀 때문이죠. 둘은 인간과 괴수의 관계에서 수화로 말하는데, 클리셰적인 설정이긴 하죠. 이것은 콩과 인류를 연결하는 소통의 통로이면서, 콩이 인간의 말을 따르도록 제약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나중에보면 콩이 지아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것은 아니죠. 지구속 공동인 '할로우 어스'로 인도하려는 지아의 말에 시큰둥하게 반응하기도 합니다.
고질라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데 이것도 영리한 연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작들관 다르게 인류를 적대시하며 행동하는데 그 의중은 모르겠단 말이죠. 고질라가 변심했나? 이런 생각들이 들죠. 어쨌든 고질라가 아무리 의지대로 행동할수있는 자아를 지녔어도, 영장류에 비해 관객이 인물을 따라가기 힘들죠. 그에비해 콩은 가족을 잃어 외톨이가 된 존재이고, 인간에게 갇힌채 살아왔습니다.
저는 이러한 부분이 관객이 영화앞에서 수축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콩은 외톨이이고 자유를 제약당해 살아왔습니다. 관객은 스토리가 나아가는 동안 콩과 시선을 같이합니다. 마치 아끼는 사람앞에서 작아지듯, 그 사람과 시간을 동행하듯 말입니다. 그러한 관계는 물질적 이익을 계산하지않게 되고, 나말고 다른 가치에 신뢰를 주게 합니다.
또한 관객이 작아진다는 부분에 있어서, 고질라의 정보를 관객이 모른다는 것이 있습니다. 스토리의 어떤 극적인 순간, 영화적 순간들은 관객에게 정보를 언제, 얼만큼 주느냐에 따라 갈린다고 생각해요. 관객이 고질라의 심중을 모르니 고질라의 존재는 안개처럼 형태가 모호하고 두려운것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러한 갈등요소들에 대한 수축되어진 관객의 시선은, 가족을 찾아가는 콩에게 자연스레 모이게되죠.
고질라는 괴수의 왕답게 독자적으로 행동하는데 '에이펙스'라는 기업의 괴수개발을 견제하기위해 시설을 공격하죠. 기업이 지구정복을 위해 모략을 꾸미는 일이야 영화속에서 빈번한데 사실 연출이 아쉬웠습니다.
<승리호>도 마찬가지죠.
'지구정복'만을 위해 기업 경영자가 탐욕을 품는것 말고 다른 스토리는 없는가 싶습니다.
아니면 애초에 메카고질라는 킹기도라의 의지때문에 스스로 알파가 되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이펙스는 메카고질라를 조종해서 무력을 뽐내려는 것인데, 기업의 목표가 돈이아니고 무력이라니 의아합니다. 차라리 메카고질라라는 병기를 미국정부에 판매하려고 개발했으나, 킹기도라의 자유의지가 메카고질라를 오염시켰고 그로인해 통제불능이 되었다면 매끄럽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러면 킹기도라의 악의가 좀더 극적으로 드러날뿐더러, 기업의 목표가 돈이게 됩니다.
반쯤은 멍때리고봐서 자질구레한 개연성들이 잘 기억나지는 않네요. 먼저 고질라가 메카고질라 개발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것인지 의아했습니다. 메카고질라의 에너지원은 방사능이 맞는지, 그렇다고 고질라가 메가고질라라는 기계의 개발을 인지할수 있는것인지. 애초에 메카고질라는 개발중인채 숨겨져있는것인데, 지구에 등장하기전에 고질라가 자기대신 알파를 차지하려는 메가고질라의 존재를 어떻게 알수있는것인지요. 이부분은 좀더 그럴듯하게 개연성을 만들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메카고질라의 등장으로 당하는 고질라에게 많은 힘을 실어주었어야 했습니다. 처음엔 콩의 시선으로 고질라를 바라보도록 하다가, 사실 고질라가 에이펙스의 만행을 저지하기위해 행동한것이었고 그것이 '평화를 위한 헌신'이게 느껴지도록 연출했어야 합니다. 인간은 '우리가 고질라를 오해하고있었어'라며 반성해야하고, 그 뒤에 메카고질라에게 당하는 고질라가 처절하게 느껴지고 콩의 도움이 타당성을 갖게 됩니다. 보면서 메카고질라와의 싸움이 멋있긴한데 '그뿐이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할로우 어스'라는 지구속 공동이 등장하는데 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질라와 콩이 싸우고, 다시 메카고질라와 대결하는 스토리 구조 외에 다른 세계관으로의 확장이거든요. 몬스터버스 시리즈를 설명하는 역할로서 가치를 하긴 하지만, 새로운 환경의 등장으로 플롯이 복잡해져 따라가기 힘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차라리 스컬아일랜드를 버리지말고 도끼나 에너지원을 거기에 두었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이건 태클인데
괴물이야기만 나왔으면 좋겠다는 글들을보면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있나요?'묻고 싶습니다. 어쨌든 괴수가 중심이되는 플롯이라 인간들 이야기가 성가신 파리 느낌이죠. <에놀라 홈즈>에 나왔던 여배우가 나오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인간 캐릭터들의 미모나 개성이 뚜렷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건 칭찬이 아니라 역효과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이 괴수에게 집중해야하는데 자질구레한 설정들에 시선을 빼앗기도록 방해하고 있어요. 잘생기고 예쁜 배우들, 개성있는 캐릭터들, 굴곡있는 개인사들 이런거 가급적 쓰면 안됩니다. 지구적 재난인데 어디서 꽁냥거리는 이야기를 시간아깝게 보여주고 있나요. 정말 필요한 스토리 하나정도만 만들고 나머진 액션콘텐츠에 비중을 실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불편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차피 가족을 찾고싶은 콩이라면 좀더 구체적으로 그 욕망을 그려줬으면 했습니다. 전작에도 콩은 외톨이로 등장했는데 갑자기 콩을 불쌍하게 만들어버리고, 가족은 찾아야하니까 배타고 가야하고, 극지방에서 추위에 떨어야하고, 지구중심에 가야하는 여정까지가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가족이 있었다'를 말로만 설명하니까 덜 믿게 된단겁니다. 있었다 없는거랑, 처음부터 없는건 다르니까요. 가령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거나, 벽화를보고 그리워하거나만 해도 콩의 구체적인 마음이 드러나는거니까요. 말했지만 스컬아일랜드의 환경을 그대로 활용했다면, 콩이 살던 터전이니까 반대로 일원들이 없어진 콩의 공허함이 더 강조되게 되는것이죠.
액션
무술감독도 아니고 그래픽디자이너도 아니지만 감히 평해보겠습니다. 치고박고 싸우는게 어떻다라기보단 연출이 참 좋다고 생각했어요. <퍼시픽림>을 많이 참고했나 싶었습니다.
<퍼시픽림>에서 마음에 들었던게 도심의 빌딩속에서 벌어지는 점과, 액션과 캐릭터를 근경에서 잡는다는게 참 좋았어요. 일단 몬스터가 정글에서 등장하는 거랑, 도심에서 등장하는 거랑은 느낌이 다릅니다. 우리가 시골 밭에서 보는 벌레랑, 내가 자는 안방에서 보는 벌레는 느낌이 다른겁니다. 도심은 동식물이 무작위로 자라는 자연이 아니고, 인류가 거처하는 환경입니다. 그것을 압도하며 등장하지 말아야할 괴수가 도심에 나타나는건 이질적인 공포심을 불러일으키죠. 더불어서 싸우는 동안 부서지는 건물들이 눈요기거리가 되는건 덤이구요. 그게 딱 단적으로 이영화에서 드러나는데, 할로우어스에서 콩의 싸움을 보면 <콩 : 스컬아일랜드>에서도 그랬지만 확실히 자연보단 건물이 부서지는게 재밌습니다.
그리고 도심속에서 괴수가 보여지면 유독 커다래 보이는게요. 우리는 도시에 살고있으면 빌딩을 많이 봅니다. 그 빌딩을 원경에서 잡지않고 우리가 보는 크기과 동일하도록 근경에서 촬영하면 괴수가 커보입니다. <퍼시픽림2>를 보면 괴수나 로봇의 크기에 비해서, 액션이 빠르고 원경에서 많이 촬영되어 있습니다. 무거운것은 크고 느려야 질량이 커보이는데, 액션의 구도가 한눈에 잡힌다는 이점은 있지만 관찰자의 입장에서보면 생동감은 줄어듭니다. 그리고 <퍼시픽림2>는 환한 백주대낮에 싸우는데, 이것도 느낌이 다른데 생각을 안해봤네요. 이런것들이 한가지 요인으로 만들어지지 않거든요.
이 영화는 콩의 1인칭 시점이 등장하기도 하죠. 사람이 아니라 괴수의 1인칭 시점이라니 독특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살아있고 움직이는 물체가 화면에 가득 담길수록, 화면에서 보이는 정보의 양은 많아지죠. 앞서 말했듯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 관객의 위치는 작아집니다. 좋게 만들어진 영화라면 화면에 압도당하는 것이죠. 영화 <매드맥스>에서 조지밀러 감독이 가로로 긴 스크린을, 자동차들을 늘어놓아 채웠다는게 이런것이죠.
만약 이것을 원경에서 찍으면 강건너 동네에서 조그마한 애들이 싸우는게 보일겁니다. 시야에 들어오는 정보의 양이 수축되는 것이죠. 관객은 체험하는 입장에서, 멀리 관찰하는 입장이 됩니다.
외에 맘에 들었던 것이라면 해상에서 싸울때 배들이 폭발하는게 참 멋졌네요. <배틀쉽>에서도 느낀것이지만 파란 물위에서 벌겋게 폭발하는 것들이 참 아름답더군요. 그런것이나 메카고질라의 움직임도 멋있었습니다. 그냥 덩치크고 화력만 센게 아니라, 장착된 엔진으로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서 다이내믹한 움직임으로 고질라를 압도하는게 역동적이었네요. 꼬마가 기계에 술부으니까 맛탱이가는게 얼탱이 없긴했네요.
무조건 고질라보다 세다기보다 콩이랑 싸우느라 지친 고질라라서 발리는게 이해되기도 했구요.
도끼.. 이거는 그냥 대놓고 유인원이니까 석기시대의 유물을 그대로 써야한다는게 보여서, 헛웃음이 좀 나왔습니다. 그래도 뭐 액션이 워낙 좋았어서 귀여운 수준이었구요.
'이랬어야 된다, 이래서 아쉽다.'라는 말이 참 많았네요. 비난을 하자는건 아니고 '이런 점이 좋았지만, 이랬어도 좋겠다.'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스토리공부를 하는 입장에서, 마냥 비판하기보다 해결책을 이렇게 저렇게 제시해보는게 일종의 훈련을 하는거라서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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