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특정 영화에 관련된 평가이기보다, 개인적이고 조금 모호한 이야기이다.
<기생충>을 처음 봤을때 그랬다.
'역시 봉준호는 나랑 안맞아.' 얼마후 두번 봤을때에야 '생각보다 볼만하지만, 그래도 안맞아.'라고 생각했다.
나는 봉준호 감독 작품중 재밌게 본것이 많지않다. <살인의 추억>정도나 어렸을때 재밌게 보았지, <설국열차
>나 <옥자>같은 영화들은 평작 이하의 재미였다. 그의 영화들엔 '인물
의 삶을 고찰하는 위로의 메시지'같은게 적었다. 그것이 내 생각엔 드라마라는 장르의 본질인데 말이다.
드라마라는건 진지한 영화들에만 녹아있는 스타일이 아니다. 장르영화에도, 오락영화에도 잘만든 영화들은 인물들의 삶이 생동감넘친다. 인물의 삶에 관객이 깊은 사랑을 느끼려면 욕망과 함께, 난관에 꺾여나갈 절실함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필수적으로 난관에 봉착한 인물이 '왜' 역경을 헤쳐나가야 하는지, '왜' 슬퍼해야하는지 설명해야한다.
<포드 v 페라리>에서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켄 마일스 캐릭터를 돌아보자. 마일스는 자동차 덕후로 자유분방한 기질의 캐릭터이다. 그는 자동차 회사 포드를 위해 일하게 되는데, 자동차 경주 영화임에도 자동차 덕후가 순수하게 자동차를 좋아하는 것만도 쉽지가 않다. 포드는 자기 주관이 강한 마일스라는 인물을 싫어한다. 그래서 그가 자동차를 개발하고 경주에 참가하는것에 지속적으로 태클을 걸어온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지만, 훌륭한 플롯으로서 기능한다. 마일스에게 포드라는 존재가 '왜' 갈등인지 영화 초반에 드러난다. 바로 자유분방한 인물이라는 것. 기업은 투자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감독해야한다. 반면 마일스는 자동차 개발자로서는 실력이 출중하지만, 사람에게 친화적이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대하여 쉽게 양보하지않는다. 서로 협동하여 프로젝트를 진행시킬수있다면, 순수하게 자동차 액션에만 치중하는 영화가 될수있다. 반대로 인물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드라마'를 만들어 내기위해선, 인물 개인이 좇는 방향성에 '왜'를 부여해야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포드 v 페라리>에서 결승선을 통과한 직후 켄 마일스를, 갈등에 대응하는 가장 어른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친구 맷 데이먼과 대화하며 걸어가는 모습은 정말 놀라운 영화적 순간이었다.
<아이언맨>이라는 영화를 돌아보자. 히어로 영화라고 드라마적 요소가 없을리 없다.
토니 스타크는 테러집단에서 탈출한 뒤, 진정으로 인류를 보호할 무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무책임하게 자신의 재능을 뽐내며 미사일을 팔아먹던 그가, 경제적 이익이 아닌 악으로부터 선한 이들을 지키기위한 갑옷을 만든다. 그는 '왜' 슈트를 만들어야만 하는가. 그는 '왜' 테러집단에 맞서 필사적으로 탈출해야만 했는가. 그는 '왜' 지옥에서 살아내야만 했는가.
바로 자신을 구해준 잉센 때문이다. 만약 잉센이 없었다면 그는 테러집단에서 자력으로 생존했고, 천재성으로 악에 대응하는 무적의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낱 인간에 불과했다. 폭발 파편이 심장에 박혀 여과기를 떼어버리면 죽는 상황이었고, 잉센의 도움이 없었다면 생명을 유지할수도, 슈트를 만들지도 못했다. 동굴안에서 유일하게 언어적 소통이 가능했고, 생명의 은인이었고 친구가 되어주었다. 토니 스타크는 자신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사랑받고 구원받았다. 이것이 앞으로 그가 개과천선하고 영웅으로서 헌신해야할 '왜'이다.
그런데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에는 '왜'가 없다. 일단 주인공이 하나가 아니고 가족이다. 그리고 부잣집 식구들도 악이 아니다. 반지하에 살며 재력을 탐하여, 남을 기만하는 기택의 가족들을 관객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자신이 가난하다고 무고한 사람 뒤통수를 치는 그들을 어떻게 공감해야할까. '왜' 그들을 응원해야할까.
내가 임시적으로 찾아낸 결론은 '그래도 되니까'이다. 기우는 과외하던 친구의 도움으로 부잣집에 들어간다. 그리고 연이어 기정과 기택과 충숙이 부잣집으로 입성한다. 마치 기우가 주도면밀하게 계획하여 실행하는것이 아니고, 부잣집이 기우네 가족을 원하는듯 말이다. 그저 우연으로 상황이 맞아떨어지고, 거짓말같은 양상을 관객은 지켜보기만 하면된다. 거기에 '왜'를 따질 필요가 없다.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브루스는 왜 신이 되어야만 했을까. '그래도 되니까'이다. 다르게 말하면 '그럴수 있으니까'이다.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예를 든 영화들의 분석코자 함이 아니다. 영화마다 관람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재미가 없는 영화의 문제는 대부분 관객에게 있는것이지 영화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제목의 영화 <테넷>을 말해보자. 나는 좋아하는 감독이 있다고해서 모든 영화가 좋지만은 않다. 오히려 평작 이하의 영화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런데도 놀란 감독만큼은 인생영화가 많았기 때문에 기대를 안 할수 없었다.
<테넷>은 보면서 짜증이 났다. 마치 아날로그적 촬영방식에 있어서 놀란 감독 본인이 가진 기술력을 뽐내는 영화라 생각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지 못하는 영상미가 없는 시대에, 굳이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한것 치곤 촬영 기술말고는 영화의 메시지가 없다고 여겨졌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했던 '인물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타당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테넷>의 주인공은 정부의 비밀요원으로 등장한다. 그것이 cia든 fbi든 정체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건 인물이 왜 지구의 시간을 역행시키려는 악의 세력에 맞서는가다. 필사적으로 사토르를 막아야만 하는 이유, 막지 않으면 잃게 되는것에 대한 조명이 없었다. 일반적인 클리셰인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든가, 직업적 사명감같은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관객이 인물을 사랑하는 공식이니까 말이다. 그래야 인물이 갈등을 만나면 같이 슬퍼하고, 갈등을 극복하면 같이 기쁘다.
나는 잘못 생각했다. <테넷>은 주인공을 사랑할 필요가 없다. 놀란감독이 짜놓은 플롯을 경이롭게 구경하면 되는것이었다. 어쨌든 <테넷>은 기본적으로 권선징악의 구조를 따른다. 주인공은 선하며 악에 대항하는 인물이고, 사토르는 인류를 재앙으로 몰아넣기위해 행동한다. 행위의 소재는 '인버전', 즉 시간의 역행과 순행 속에서 대립하는 것. 그 안에서 사투를 벌이는 과정 자체를 '세속적'으로 관람해야 하는것이다.
인물이 기쁘고 슬픈것에 큰 가치를 둘 영화가 아닌것이다. 왜냐하면 그러라고 만든 영화가 아니니까.
근래의 나는 개인적으로 어떤 한계에 부딪혔다. 내 삶의 전체를 뒤돌아보게되는 성질의 것이었다.
<기생충>처럼 재미없는 영화를 왜 칭찬하는 것이며, <테넷>은 왜 재미있다는 것이며, 왜 예술영화들은 예술이 되는가. 그러한 질문이었다. 나는 그동안 예술이 사치라고 생각했다. 액면가만 보면 그렇다. 대중에게 느껴지는 가치의 대중성에 비해, 경제적 가치는 유독 높은것이 미술 작품들이니까 말이다. 영화까지 통틀어서도 평론가들에게 추앙받는 예술 영화들이, 반대로 대중에겐 전혀 친숙하지 않음은 사실이다.
내눈에 그것은 마치 '인생을 유독 고되게 살아낸 이들에 대한 사치성 연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사랑한 '드라마'가 대중이 원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대중을 끌어안고 삶에 위로를 주는 것이라 착
각했다. 그러나 가끔가다 한번 극장을 찾거나, 아니면 퇴근해 잠들기전 영화한편 때리는 사람들에게 위로는 드라마가 아니었다. 말그대로 대중을 끌어안는것은 생각없이 편히 볼수있는 '오락'이지 주인공이 난관을 극복해야하고 성장하는 낯간지럽고 무거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창작을 하는 나는 한동안 부쩍 외로워졌다. 길게 말하지 못하지만 그 외로움을 예술영화와, 내가 공부하던 것에서 위로받았다. 내가 생각한것이 마냥 사치만은 아니었고, 내가 '대중성'이라고 착각한것은 대중이 아니라 내가 원한것이었다. 현실을 강하게 부정하면 할수록, 현실을 망각하는 껍데기는 한꺼풀씩 고통스럽게 벗겨내어진다.
결국 영화든 사람이든, 내가 그렇게 보고싶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던 것이었다. 내가 가장 보기 싫은것이, 내가 가장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그림자가 외부에 투영된 것이었다. 영화도,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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