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넷> gv영상을 보았지만 더 별로가 되었네요.

전문적으로 영화 연출이나, 인문학이나, 과학을 배우지 않고 뇌피셜로 장황하게 쓰는 글입니다. 때문에 편향적이거나 오류와 모순이 많을수 있습니다.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았었고 창작에 대한 꿈이 있었습니다. 긴 설명은 글의 요지에 필요가 없으니 취미로 영화 연출을 공부하는 정도라고 해두지요. mbti가 intp라서 그런지 잡학을 좋아하지만 한분야에 전문성이 깊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김상욱 교수의 양자역학에 대한 강의를 많이 찾아듣곤 했습니다. 면대면 강의를 좋아하는지라 책은 싫어해도 강의영상같은건 흥미로우면 드라마 몰아보듯 볼수있습니다. 영화 <테넷>의 소재인 시간은 아니지만 '입자의 이중성'에 관한 김상욱 교수의 강의를 4~5시간 분량만큼 찾아서 본것 같네요. 어쨌든 형이하학적이고 과학적인것보다 저는 영화를 탐구하면서 형이상학적인것, 특히 '사람의 마음이 타자에게 어떻게 동하는가'를 설명하는 '수사학'의 관점에서 고집스럽게 영화를 보곤합니다. 논리적으로 쉽게 설명될수 없는 영역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테넷>에서 놀란 감독이 과학의 개념들을 빌려와 영화적 설정으로 구현한 부분들에서 구멍을 매우 많이 느낍니다. 이것은 gv영상을 통해 영화의 설정을 정리하면서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시간이나 엔트로피, 평행세계에 대한 모순들을 제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고, 그 부분을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가 구멍이 많다는건 관객이 영화를 이해하며 인식되는 구멍을 말합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특정한 시간에 인물이 떨어지는 기존 영화들의 설정과는 다르게, 시간의 순행과 역행이 교차하는 방식의 도입이 신선하다고 말합니다. 저는 낯선 방식의 도입이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시간의 교차와 더불어 왜 인버전된 총알에 맞으면 치유가 되지않는지, 과거를 바꾸면 단일한 미래의 역사가 있어 미래또한 바뀌는 것인지에 대한 평행세계의 개념등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시간의 교차만 경험하는것도 관객은 대단히 낯설고, 인물, 컷편집마저 뒤섞여 있습니다.   복잡한 정보들을 정리해나가기도 관객은 어려운데, 플롯의 순서까지 선형적이지 못합니다. 플롯과 영화적 설정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관객이 영화를 보는동안 많은 구멍이 생긴다고 생각하고, 영화관람에 이득이 아니라 손해라고 느낍니다.

시간의 역행과 순행이 교차한다는 설정만으로도 sf영화를 시리즈로 만들수 있는데, 관객에게 낯선 소재의 과학 이론들을 놀란 입맛대로만 과하게 집어넣었다고 생각합니다. 전 클리셰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집이 편한 이유는 안정적이기 때문입니다. 늘 참신하고 새로운 가치들이 좋다면 결혼도 매년마다하고, 이사도 매주 다녀야 하겠지요. 중요한것은 '새로운 소재의 도입'이 아니라 '기존 소재를 해석하는 시선의 변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가 영화를 보는 고집스러운 관점입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선 이렇게 영화를 만드는것은 놀란의 고집이고, 이렇게 영화를 보는 저의 고집일테지요.

개인적으로 영화는 '시선의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험이나 존재를 다른 시선에서 바라볼수 있게 해주는것이 예술이고, 특히 영화는 관람하는 시간동안의 체험성이 강한 컨텐츠입니다. 존재를 다양한 시선에서 바라보고 다양한 의미에서 인식한다는것은 이런것입니다. 칼을 누군가를 베기위한 도구로 볼것이냐, 요리하며 음식을 썰기위한 도구로 볼것이냐의 차이입니다. 모든 존재는 인간에게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의미를 같습니다. 심지어 나치가 했던 행동조차 '유태인을 다 죽이지못한게 한이다'라고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요.

존재를 인식하고 의미를 발견하는것은 대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상을 사랑하지 않으면 무의미하며 무관심하니까요. 그러한 부분에서 영화는 캐릭터의 감정을 따라가면서 캐릭터를 사랑하게 되고, 캐릭터의 삶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독립영화, 예술영화의 특성을 말하는것이 아니라 <반지의 제왕>에서 등장하는 나라들과 인물을 관객이 사랑하고 <매드맥스>에서 사막의 풍경과 퓨리오사를 사랑하고 <인터스텔라>에서 우주의 광활함과 쿠퍼와 브랜드 박사를 사랑하는, 장르영화에서의 캐릭터와 세계관에 대한 체험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캐릭터를 사랑하려면 필요한 요소들이 다양합니다. 매우 구체적인 욕망이 있어야하고, 능동적이어야 하며, 이중적인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테넷>은 그전의 리뷰에서 제가 적었지만 캐릭터의 욕망이 불분명합니다. '요원으로서 재앙을 막아 세상을 구하자'라는건 매우 구체적이지 않은 욕망입니다. 그리고 그 욕망을 따라가는 동기에 관객이 몰입할수 없습니다.

캐릭터의 동기와 관객과의 단순한 감정적 거리는 캐릭터가 '개인적으로 소유한 스토리'에 좌우됩니다. <매드맥스>에서 퓨리오사는 어머니를 잃었고, 임모탄의 아내들을 구해야하며, 팔 하나가 없습니다. 이러한 설정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캐릭터에게 연민을 부여합니다. 선역이나 주인공에게만 해당되는게 아닌것이 <어벤져스 : 인피니티워>의 타노스에게도 관객은 공감합니다. 타노스는 문명의 발달 과잉으로 고향을 잃은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전쟁의 상흔을 가진 딸을 품어 안습니다. 타노스를 선악으로 판단하기 전에 이러한 설정들로 타노스가 욕망하는것에 대한 타당성과, 그럼에도 사랑에 대한 개인적인 순수함을 지녔다는것을 관객이 공감합니다. <곡성>에서는 주인공과 딸의 화목한 관계가 영화 초반에 펼쳐지면서 딸을 구해야만 하는 주인공의 힘든 여정을 관객이 감정적으로 동행할수 있게 합니다.

이것들은 클리셰나 진부한게 아니라 영화의 기본적인 틀입니다.  <테넷>의 주인공은 그러한 개인적인 전사가 없습니다. 관객과의 감정적 거리가 멀죠. gv에서도 인물에대한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관객의 불만을 언급합니다. 주인공이 캣을 왜 구해야하는지 관객은 납득하지 못합니다. 세상을 왜 구해야하는지 관객은 절실함을 느끼지 못합니다.(허구언날 'save the world!'를 외치는 영화를 보면 한숨이 나오네요.) 주인공이 세상을 구하면 개인적으로 얻는 이득이 무엇이죠? 세상을 구하지 않으면 잃는 가치들이 무엇이죠?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는 고향인 샤이어와 호핏을 사랑합니다. <인터스텔라>에서 쿠퍼는 사랑하는 딸의 미래를 지켜야하고, 딸에게 돌아가야합니다. <인셉션>에서 디카프리오는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하고, 자신의 수배를 풀어야 합니다. 싸우기만하는 <존윅>에서 조차 존윅은 사랑하는 강아지를 잃습니다. <조커>에서 아서는 코미디언의 꿈이 있고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테넷>에서 주인공은 어떤것을 사랑하며, 무엇을 위해 싸울까요. 관객은 사토르를 저지하는 여정에 어떤 가치를 믿으며 주인공일행과 동행해야 할까요.

사토르는 내가 죽기 때문에 타인 모두가 죽어야 하고, 내가 아내를 가질수 없기때문에 빼앗겨서도 안됩니다. 미래의 인류는 과거의 인류로부터 고통받았기에 과거에 대한 복수를 하려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원한들은 말로만 등장할뿐 설득력을 갖지못한채, 관객은 영화적 설정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기에도 바쁩니다. 기존 영화들에 쓰이지않던 과학적 이론들을 영화적 설정으로 도입한 참신함은 돋보일지 모르나, 기본 스토리는 1차원적이고 말의 거창함에 비해 의미는 갖추지 않습니다.

전 솔직히 영화보다 gv에서 김상욱 교수의 설명이 몇배는 재미있었습니다. 결국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는 끝없이 증가하여 지구와 태양계는 분해되고 열적 죽음 상태에 이를것이다'같은 추측이 더 재미있습니다. 이것이 모순 없는 과학적 추론에 더 가까우며, 정보로서 더 가치있으니까요. 지적인 탐구를 좋아하는 저로서도 이러한 구멍투성이인 지식을 왜 영화를 통해 공부해야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과학이론을 영화에 빌려오지 말아야 된다가 아닙니다. 영화 설정을 모순되게 구현하지 말아야 한다는것도 아닙니다.

<인터스텔라>에서 상대성이론을 빌려와 지구의 시간이 수십년 흐르게 만듭니다. 그로인해 관객이 캐릭터와 경험하는것은 지구에 남은 사람들이 손해보았을 희망에 대한 안타까움입니다. 관객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위해 여정하는 쿠퍼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이라는 영화를 보면 죽은 아버지가 남긴 마법의 흔적을 따라갑니다. 마법을 통해 죽은 아버지를 하루동안 만나려고 모험하는 스토리를 그립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주인공이 욕망을 향한 진정성이 있기에 관객은 주인공을 사랑할수 있습니다. 과학적인것에 가깝고 먼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도 영화적 설정을 관객이 용납하도록, 스토리를 따라가는 주인공과 관객을 가깝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객이 주인공을 사랑하도록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보았을때 <테넷>은 영화적 설정이 과한데에 반해, 캐릭터의 타당성은 부족했습니다.

가끔 이동진 평론가의 영화해석을 보면 느낍니다. 다양한 관점에서의 해석을 제공하지만, 현실적으로 영화는 빈그릇인데 갖가지 상징들로 살을 붙이려는 느낌을 받습니다. '영화는 시선의 예술이다', '캐릭터는 이중적이어야 매력있다'라고 말했지만 결국에 영화는 중심이 되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심이 잡힌 영화여야 다양한 해석도 의미가 있는것이지, 애초에 생각없이 보기에 좋다는 관객들이 태반인 상황에 이동진 평론가가 말하는 것들이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놀란 감독은 힘이 분산되어있는 상태가 선한것으로 보는것 같다.'

'영화제작에 대한 전권을 쥐고있으면서도 대중의 취향이 아니라 작가주의적인 마인드가 놀랍다.'

라며 찬양하는 의미부여에 객관성을 잘 못느끼겠습니다. 꿈보다 해몽인 말같습니다.

갖다 붙이는대로 다 좋은 의미가 되는것이라면 저는 유시민 작가의 말을 빌리고 싶습니다. 대중에게 쉬운말이 아니라 어려운 말을 굳이 하려는 사람은, 타인을 설득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기꾼인것이라고요.

cg가 아닌 촬영기술의 극단을 추구한것도 그렇고, 영화에 과학이론을 바탕으로한 구조를 강박적으로 짜넣으려는 것도 그렇고 '기술과잉'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영화도 있는것 아니냐'고 물을때 이런 질문도 해볼법합니다. 우리는 '감정'이 과잉되어있고 감정유발을 강요하는 영화를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신파'로 부르고 '감성팔이'로 부릅니다.

<인셉션>이나 <다크나이트>에서 그래픽을 절제하여 촬영한 방식의 의미가, 설득력있는 영화적 메시지와 함께 했기 때문에 인정을 받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테넷>의 촬영기술이 대단하지 않다는것은 아닙니다. 다만 더 좋은 영화로 만들수 있는것인데, '기술적 존경'에 대한 지나친 너그러움으로 영화를 대하고 있진 않은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