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건보공단에서 해주는 건강검진에 위내시경이 있었습니다. 재작년에 위내시경을 비수면으로 한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대장내시경도 해보자... 해서 건강검진 받을 때 같이 하고 싶다고 해서 내과 의사와 상담
비수면 힘들다고 자꾸 수면으로 하라고 하는데.. 저는 덩치가 커서 마취되면 간호사들도 의사도 힘들 것 같아
내가 거드는게 나을 것 같다고 하니 OK해서 비수면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D-day는 어제!
문제는 상담하던 날 상담하기를 약을 먹어야 하는데 가루약 줄까? 알약 줄까? 가루약은 싸고, 알약은 싸다고만 설명해줘서
당연히 형의 떡도 싸야 사먹는다고, 싼걸 선택.... 그런데 이게 이렇게 힘이 들 줄이야. ㅠ
어제 아침 6시부터 한시간마다 물에 타 먹는 약을 먹는데.. 찝찌름하고 여튼.... 물을 4L이상 마셔야 하는데
이게 정말 곤욕이더군요.
6시 30분 한병
7시 30분 한병
8시 50분 한병 (원래 한시간마다 마시라고 했는데 도저히....)
10시 00분 한병
이 네병을 마시는 동안 정말 싹 나오더군요. 정말 속이 허허롭다고 해야하나...
그리고 마지막
11시 30분에 한병 이거 먹으니 또 딱 멈추더라고요. 그리고 물 좀 더 마시고
3시에 병원 입장!
하자마자 쉬마려서 오줌 한번 싸고( ㅠ_ㅠ )
건강검진과 가서 혈압재고 키재고 시력재고 청력재고 허리둘레도 재고... 몸무게를 물었더니
간호사분께서 말없이 손으로 숫자를 가리키기만 하더군요... 숫자를 외면하고 X-ray찍고
오줌을 받아오라는데 오자마자 눈 탓에 진짜 소식이 1도 없기에
내시경까지 해야하니 내시경 하고 받겠다고 하고
대망의 내시경!
뒤가 뚫린.... 아 이 옷 처음 입어보는데 정말.... 뒤가 두렵더군요....
태어나서 이렇게 뒤가 두려웠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뒤를 자꾸 돌아보게 되는 ... 그런 옷이었습니다.
그리곤 안내에 따라 어느 침상에 마치 엄마 뱃속에서 취했을 자세로 옆으로 눕길 요구하더군요.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여성 간호사들의 영혼빠진 친절한 말투...
"자~ 이렇게 누우실게요~"
'누우실게요? 저건 문법에 맞지 않는 말 아닌가?' 하는 저항하는 마음과는 달리
그녀들의 차가운 손길에 따라 저는 정말 공손하게 시키는 대로 쭈구려 누웠습니다.
"자 위내시경부터 하실게요~"
'위부터 하는 이유가 같은 걸 쓰기 때문일까?' 이런 생각에 이를 즈음 의사가 말합니다.
"자 꿀꺽 하시고~"
역시나 공손히 저는 꿀꺽 했습니다.
내시경이 식도를 지나 위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기 위해 온몸에 힘을 빼고
잠깐동안의 역겨움을 참고 나자 내시경이 쑥 빠져 나옵니다. 약 1~2분?
침을 질질 흘리며 눈물도 찔끔 흘렸습니다.
뒤가 허전하니 괜히 눈물도 나오더군요.
아~ 외롭다.
고독하다.
간호사들에 둘러 쌓여 있건만 나는 어찌 이리도 고독하단 말인가.
나의 이 허허로움을 그 누가 알아줄까
"젤좀 바를게요~"
철퍽....
앗차거... 인간이 이렇게도 기계적일 수 있을까?
이 기계적임은 민망한 나를 위한 저 간호사들이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이리라.
그렇게 젤을 똥꼬에 바른 저는 고독에 휩쌓여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혹시 위에 했던걸로 아래도 하나요?"
목에 뿌린 마취약 탓에 새는 발음으로 물었습니다.
갑자기 간호사도 웃고 의사도 웃고... 나름 순서가 뒤바끼진 않겠지 걱정이 많았건만 돌아오는 대답은
"다른거에요~"
안 보이니 알 수가 있나... 부끄러워서 오른팔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음 ㅠㅠ
그렇게 하릴없는 대기시간이 지나고
"위내시경보다 좀 더 불편하실거에요.."
'아~ ㅅㅂ 얼마나 불편하다는거야. 막 죽겠는걸까?'
"자 들어가실게요."
'아니 저 간호사는 엇다대고 존대를 하는거야. 내시경님께 존대를 하는걸까?'
하는 찰라 뭔가 다가와 닿는 느낌 그리고
스윽
다른 말로는 표현이 안 됩니다. 스윽입니다. 스윽....
그냥 스윽 들어오더군요. 정말 무심하게 스윽....
역시나 저항하지 말아야하기에 허~ 하며 온몸에 힘을 빼고 받아들였습니다.
'이건 치욕이 아니야. 이건 건강을 위해 누구나 하는거야. 깎두기 어깨 형님들도 여기선 뻐기지 않는다구.
넌 잘 하고 있는거야. 잘 한거야.'
마음과는 달리 눈물이 정말 찔끔 나오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시경은 내 속을 휘저으며 여기저기 찰칵찰칵 내 대장 사진을 찍어 댔습니다.
그렇게 한 5분? 뭔가 들어오는 느낌이 아닌 나가는 느낌이 들더니 뭔가 다시
쏘옥~
"용종이 없어 금방 끝났네요~"
저 말 안해줬으면 정말 훌쩍댈뻔...
흩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안내에 따라 옷을 다시 갈아입고
진찰실에서 의사가 방금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더군요.
재작년엔 있던 역류성 식도염은 사라졌고
위엔 야주 약간의 염증,
"대장이 잘 생기셨네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잘생겼다는 소리 들어봤는데 ㅅㅂ 뵈줄 수도 없는 대장임....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군요."
"위는 2년 단위로 내시경 하시고 대장은 다음에 건강보험공단에서 검진할 때까지 안 하셔도 될 것 같네요~"
"네 담엔 꼭 알약을 먹어야겠어요."
의사의 위로 가득 담긴 칭찬(?)을 뒤로하고
아까 못본 소변.......
하루종일 약먹고 싹 빼고
먹은게 없으니 정수기 물을 미친듯이 마셔도
영혼까지 끌어모아도 나오지 않더군요.
내시경하는데 30분 걸렸는데 한시간 반동안 오줌 싼다고 기다리다
결국 못 싸고 오늘 다녀왔습니다.
오늘 나갈 택배 준비해두고, 문산까지 오줌싸러 갔다 와서
진순이 큰컵 하나 때리고
위아래 뚫린 썰 풀어봤습니다. ㅋ
저는 대장내시경이 훨씬 편했습니다.
집에 오니 방구 뿡뿡뿡 세번 나오고 나니 속도 편해지고...
배고파서 계란 부쳐서 고봉밥 미친듯이 먹음 ㅋ
쓸데 없이 긴글 읽느라 고생이 막심하셨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실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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