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한테 기대한 제가 등신 같습니다

어쩌면 아는 분도 계실 거고 어쩌면 저를 욕하는 분도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어떤 의견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꽤나 장문의 글이 될 거 같네요.
우선 바쁜 시간을 내어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저희 부모님은 헤어진 지 올해로 17년째이고
지난 여름에 드디어 이혼 도장을 찍으셨습니다

사유는 아버지의 잦은 음주와 폭력 및 의처증(이젠 이것도 의심이 갑니다.)이었고, 이를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제가 13살이었을 때 집을 나갔습니다. 때문에 아버지는 저와 두 동생들을 키워야 했고,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고생 엄청 하신 것도 사실입니다. 두 분 사이의 일은 두 분 사이의 일이고, 저희 삼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하신 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전 이를 인정하기 죽도록 싫었고 스무살이 되던 해부터 어머니를 찾아 다시 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기 마련이죠. 얼마 안 가 이를 알아챈 아버지는 제게 크나큰 상처를 줬고 전 고향을 떠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제들과도 사이가 틀어졌고요. 아버지가 저희 삼남매에게 이렇게 말했거든요. 너네 엄마는 바람 나서 집 나간 거라고.

그렇게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이젠 그때 어머니를 찾은 제 자신이 너무나도 후회가 됩니다.

물론 제가 필요해서 찾은 건 아닙니다. 단지 잘 지내시나 궁금했거든요. 하지만 그때 닿은 연락이 제게 이토록 큰 고통을 주게 될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군대를 다녀오고 저도 먹고 살 길을 찾아 대구로 내려왔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충주에서 1년간 살 때는 한 실내 앙궁장의 매니저로 근무했고 이때 나이는 28이었습니다. 네. 저도 압니다. 그 나이 쳐먹도록 변변한 능력 하나 없이 그러고 산 게 한심하다는 것을요. 하지만 전 제 자신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했고 현실에 충분히 만족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제가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이 한명 있는데, 물론 외가 친척 어른입니다. 그 분이 제게 일자리를 소개해준다며 안양으로 올라올 것을 권유했습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어머니도 원하는 눈치셨고 전 평상시와 같이 어머니 말에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소개해준 일자리는 도저히 저와 맡지 않았습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기전실이란 곳에서 하는 일이었는데, 일하는 분들과 나이차도 심하게 났고 제 적성에도 절대 안 맞았거든요. 그래도 참았습니다. 어머니를 위해서. 하지만 결국 안양으로 올라간 지 한달 만에 전 다시 대구로 내려갔습니다. 뭐... 도중에 설득 당해서 다시 올라오긴 했지만 말이죠.

문제는 이때부터입니다

제게 일자리를 소개해준 친척 어른이 어느날 저를 부르더니 오후 2시부터 순종적으로 나올 것을 강요하며 저희 아버지한테 맞고 산 너네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냐고, 너네 아버지 닮아서 그따위로 행동하냐고, 감히 자기 폰번호를 차단하냐며 온갖 욕설과 폭언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다 급기야는 부엌으로 가서 식칼을 가져오더니 저한테 들이밀기도 했고요. 지금도 그때 그 인간이 했던 말이 정확히 기억납니다.

“손가락 하나 자르고 혈서 써. 그럼 니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줄게.”

전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심정으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옆에서 어머니는 구경만 하셨고요. 그러자 기가 찼는지 그 친척 어른은 칼끝으로 제 팔을 툭툭 찔렀고, 제 휴대폰으로 제 턱을 쳤고, 눈모양이 마음에 안 든다며 볼펜으로 눈을 파버리겠다고 협박을 일삼았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가만히 계셨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다음날 그 인간하고 대판 싸웠다던데 그야 모르는 일이죠.

아무튼 그 일이 있던 날 어머니는 집에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미안하다며. 그런데 우습게도 평소 어머니가 우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저였지만 그날은 싫지도 좋지도 않더군요. 어쩌면 줄담배와 패닉의 영향일지도 모르지만 그저 멍했습니다.

그리고 몇달 뒤 전 다시 독립을 감행했습니다
이번에는 폰 번호까지 바꿔가며 치밀하게 준비했고 마침내 탈출에 성공했지만 그놈의 정 때문에 어머니를 모른 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연락을 하며 지냈습니다

월급을 받으면 일정 부분 어머니께 보내 제 적금 통장에 이체시켰고 저 또한 닥치는 대로 일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연히 알게 된 지인 덕분에 한 회사에 면접을 볼 준비를 하고 있고요

그러나 어머니는 제가 일자리를 너무 자주 옮긴다며, 거긴 월급이 너무 작지 않냐며 제 기대와는 전혀 빗나간 반응을 보이더군요. 심지어 적금통장에 이체시키라고 보내준 10월 월급의 일부도 이체가 안 된 상태였고요.

바로 어제였습니다

어머니는 또 다시 아버지를 욕하며 저한테 아버지처럼 살 거냐고 비난을 퍼부었고, 부담 갖지 말라며 나중에 늙어서 병 들면 알아서 죽을 테니 당신 모실 걱정은 하지 말라며 죄책감 아닌 죄책감을 안겨주더군요

언젠가 제가 친척 어른이 칼을 들이밀었던 얘기를 다시 꺼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사람이 가슴에 묻을 줄도 알아야지 언제까지 그럴 거냐고.”

이거 때문에 몰래 정신병원 가서 진단도 받았습니다

진단 결과는 우울증 및 홧병이었고, 심지어 의사도 제 얘기를 듣고 혀를 찼습니다

이젠 너무 싫습니다

가족이 짐처럼 느껴지고 사는 것까지 자기 입맛에, 자기 생각에, 자기 기준에 맞추려 드는 그 친척 어른과 어머니도 싫고 혼자 조용히 제 미래만 생각하며 살고 싶습니다. 더는 능력 없는 아버지 닮아서 그러냐는 소리도 듣기 싫습니다.

제가 쓰레기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