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한 하소연

저는 모태솔로입니다.
"모쏠인데는 다 이유가 있다"더니 저 역시 그러합니다.
남들 다 하는 연애를 왜 나는 단 한 번도 못 해온 걸까.
이유가 있겠죠. 세상 모든 결과엔 그럴만한 원인이 있더라고요.


처음 만난 사람들과 대화 오고가다 보면 지금 애인이 있느냐 없느냔 질문도 나오기 마련인데,
그냥 솔직하게 말해왔거든요. 어릴 땐 이게 그리 큰 흠이 아니다 싶었고, 거짓말을 잘 못 해서요. (거짓말도 머리가 좋아야 하더란)

지내보니 장점이 전혀 없어요. 처음엔 "특출나진 않더라도 네가 모쏠일 정도는 아닌데?" 이러던 사람도
제 단점을 하나 둘 발견하면 "야이씨, 네가 이러니까 모쏠인거야. 고쳐!"
제 약점, 단점을 전부 '모쏠인 이유'로 엮으니
너무 억울하잖아요. 세상에 단점 없는 사람이 어딨나.


그런데, 다른 사람들을 관찰해본 결과
애인 있는 사람들은 약점, 단점이 없어서 커플인게 아니고,
남자든 여자든 특출난 매력을 둘 이상은 가지고 있는거 같아요.
꼭 그게 외모만 있는게 아니고,
말솜씨가 훌륭해서 어디서든 분위기를 주도하거나, 배려심이 많아서 (이성인)상대가 바라던 바를 먼저 챙겨주는 등.


저는 이성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지는듯 하네요.
왜소한 체격이라 듬직함이 없고,
남들에게 자랑할 만큼 얼굴이 잘 생기지도 않고,
유머감각은 진짜 꽝이고,
친구나 동료들이 저를 편하게 생각하긴 하는데
이걸 저만이 가진 매력으로 여자에게 어필하기엔 부족한가 봅니다.


또한, 여자들은 필요한 걸 말 하기 전에 남자가 먼저 알아차리고 해주길 바라나 본데
또는 자기도 생각지 못 했던 배려나 선물을 남자가 해주면 그렇게 좋아한다고.

그런데 남자가 이런걸 눈치껏 먼저 챙겨주려면 꾸준한 관찰도 하고, 연애 경험이 어느정도 있어야 가능하지 않나요?
너도 나도 연애마스터를 원하면
모쏠은 어떻게 경력을 쌓나?

그런데 더 넓게 생각해 보면,
지극히 당연한 흐름이라고도 할 수 있죠.
우리나라는 아직 받는 쪽은 주로 여자, 주는 쪽은 주로 남자인데
여자 입장에서는 굳이 속보이게 바라지 않아도
남자가 알아서 챙겨준다면 그것만한 매력이 또 없을 거예요.

이래저래 갈수록 가능성은 0에 수렴하고,
자존심도 떨어지고, ...


제가 연애를 포기한 결정적 사건이 여동생과의 다툼입니다. 4년 전이네요.
더 구체적으로 적자면, 제가 참다 참다가 화를 못 누르고 여동생을 때렸습니다.
심지어 옆방에 어머니도 계셨습니다.
싸운 원인까지 적기엔 모르는 사람한테까지 변명하고 싶지도 않고, 지금 주제와는 전혀 맞지도 않네요.

중요한건 제가 '화를 참지 못 하고' '어머니 옆에서' '저보다 약한 사람한테 폭력을 썼다'는 겁니다. 패륜이라고도 볼 수 있겠어요.
동생도 이미 성인이었는데 얼마나 수치스러웠을까.


제가 어렸을 때부터 공부도 못 하는 편이고, 교우관계도 넓지 못 했고, 괴롭힘도 많이 당했는데,
그나마 부모님께서 저에 대해 자랑하시던 하나가
예의 바르다, 인성이 바르다였거든요.
초등학교 때부터 반에서 따돌림 당하던 애를 저만 챙겨주고, 같이 놀고, 집에도 데려온 적이 많아서, 아버지의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아들자랑이 이거였어요.
(부모님은 모르시지만, 왕따랑 친하단 이유로 덩달아 괴롭힘 당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정말 신체적으로 약자인 동생을 때렸으니,
이제 이것마저 실망으로 변해버렸다는게 스스로 못견디게 수치스럽네요. 아, 나도 내가 싫어하던 사람과 다르지 않구나.
자신에게 크게 실망해보신 분들은 공감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만약에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끝까지 참았겠는가?
웃기게도, 참을 수 있다는 확신이 안 서더라고요.
제가 저를 통제 못 하는 경우를 겪으니 이젠 스스로 못 믿겠어요.


저는 그 뒤로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을 완전히 접었네요.
참 다정해 보이는 연인들도 평생 안 싸울 수는 없을 텐데,
만약에 제가 또 그런 상황에 몰리면 또 폭력을 쓸까봐 무섭습니다.
아니 폭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랑했던 사람이 저에 대해 돌이킬 수 없이 실망하게 될까봐 무섭습니다.
저는 상대가 저를 무시하는 태도보다, 증오하는 마음보다, 저에게 실망하는게 가장 무섭습니다.


장황하게 적고 보니 머릿 속이 정리가 되네요.
지금 사랑타령이 중요한게 아닌데.
요즘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서 부쩍 우울했는데
가을 타는가 싶기도 하고.
포기하면 편하다는데 가장 어려운 하나를 포기하니 마음도 편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생은 꾸준히 반성하고 나라를 구한 만큼의 선행을 하면
다음 생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요? 그러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