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무리한 산행의 결과로 오른쪽 어깨의 회전근개가 파열되어 봉합 수술을 받으러 입원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부도가 나서 없어진 수원의 유명한 정형외과였었는데 내시경을 집어넣어 보니 회전근개 뿐만 아니라 관절와순도 파열돼 있어서 두 군데를 봉합한 후에 열흘 가까이 입원해 있자니 가장 불편한 것 중의 하나가 씻는 문제였다.
집에서처럼 매일 한 번씩 샤워를 할 수도 없고 불편하지만 병원에 한 군데밖에 없는, 화장실 안의 1인용 샤워실에서 오른팔에 반기브스를 한 상태로 사흘에 한 번쯤 대강 샤워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샤워를 막 시작하고 있는데 바깥에서 잠겨진 문을 두드리며 이삼십대로 보이는 여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가 급히 샤워실을 써야 하는데 샤워가 얼마 만에 끝나냐고 묻는 것이었다.
황당해서 여기는 남자 화장실 안의 샤워실이라고 하니까 그래도 여자가(또는 "여자도"라고 말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음) 쓰는 샤워실이라고 말하면서 뭐가 그리도 급한지 다급하다는 투로 말하기에 지금 샤워를 시작했으니 10분은 걸릴 거라고 대답해 주니 자리를 떠나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여자가 쓰는 샤워실이라면 남자 화장실에 설치해 놓았을까?
어디를 어떻게 급히 씻어야 하기에 남자 화장실에서 그리 수선을 피웠을까 지금 생각해도 무척 의아해진다.
병원에 설치된 샤워실이라면 환자에게 우선권이 있고 보호자나 방문객은 후순위일 것이다. 발걸음 소리가 환자 같지는 않았고 보호자나 문병객일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무튼 황당하고 의아해서 가끔 가다 생각나는 일화인데 글로 옮겨서 감정의 찌꺼기를 털어버리고 싶어서 여기에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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