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신자(信者)와 신자(神子)가 그것이다.
신자(信者)는 믿는 사람이다. 그들은 신의 존재를, 천국의 영락과 지옥의 영벌을, 자신의 구원을 믿는다. 그들 중 더러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지만 혹시라도 지옥에 떨어질까 두려워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열쒸미! 믿는다. 자신의 합리적 이성이 그 믿음을 방해할 경우에는 그 이성을 마비시키고, 스스로를 무뇌아로 만드는 만용에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뇌를 가진 인간인 이상 끝없이 솟아나는 의심은 어쩔 수 없는 법, 조용히 ‘저는 믿어요.’라고 담담하게 고백하는 대신 이를 악물고 ‘믿!~슈미다’의 단말마를 부르짖는다. 믿어지지 않는 것을 이를 악물고 억지로 믿으니 혀가 꼬이고 발음이 이상해지는 것이다. 과연 신께서 우리에게 요구한 믿음이 이런 종류였을까? 믿는다고 악을 박박 쓰는 것을 잠시 멈추고 골방에 들어가 신의 미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다음과 같은 미세한 음성이 들리지 않을까?
'얘야, 제발 좀 부탁인데, 거짓말 좀 하지 마라'
일년에 단 한 번 '욤 키푸르' 때 단 한 사람인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에서 그에게 허용되었던 기도는 단 한 마디였다. 정확히 어떤 발음인지 전해지지 않는 야훼의 존엄한 이름 'YHWH'였다. 굳이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아버지...' 이 한 마디만 부르고 조용히 물러나야 했다. 그 분과 나의 관계가 부자지간임을 확인한 이상 그것으로 모든 것의 시작이자 완성이고, 그 외의 모든 말과 행동과 간구는 중언부언일 뿐이기 때문이다.
신자(神子)는 신의 아들이다. 아버지인 신이 그의 형상을 따라 만든 붕어빵이다. 신의 형상이 무엇인가? 신은 영(靈)이다. 그것이 신의 본래 형상이다. 흙으로 인간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바람, 기운, 영)’을 불어넣었을 때 ‘비로소’ 생령(生靈), 즉 살아있는 영이 된 존재가 우리 인간이다. 공중의 새나 땅의 들짐승이나 바다의 물고기들을 만드실 때는 그분의 형상을 따라 만들지도 않았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지도 않았다. 그저 말씀으로 ‘있으라’ 했을 뿐이다. 신의 본질인 영을 이어 받은 우리 인간만이 영인 것이고, 그 인간인 우리가 신의 아들들인 것이다.
그러나 그 영(靈)이 죽어버렸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따 먹는 그 날에 ‘정녕 죽으리라’는 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것을 따 먹었다. 그런데 신의 경고와 달리 그 날 그는 멀쩡했다. 나뭇잎으로 빤쓰를 만들어 입고 어두운 곳에 숨고, 그 이후로도 천년 가까이 살면서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다. 절대 변개할 수 없는 신이 마음이 약해져서 방침을 바꿔 그를 살려둔 것일까? 아니면 너무 연로하셔서 깜빡 잊으신 걸까? 그것도 아니면 설마 죽음으로 협박했는데도 따 먹을 줄은 미처 몰랐던 ‘전지전능’의 한쪽 구석에 있던 작은 결함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그 영(靈)은 참으로 그 날, 그 즉시 죽었다. 영이 죽어버린 탓에 살아있는 영인 신을 피해 어둠 속으로 달아났다. 그를 향해 신은 묻는다.
이 질문은 노쇄해서 눈이 침침한 신께서 인간이 어디에 숨었는지 찾을 수 없어서 던진 질문이 아니다. 절망과 죽음 앞에 놓인 사람에게 그가 처한 실존에 관한 심각한 질문이다. 지금도 그는 우리 각자에게 피를 토하는 음성으로 묻고 계신다.
머리가 터질 듯, 할 이야기가 많다보니 또 삼천포로 빠졌다.
어쨌든 그 일로 해서 신 앞에서 영의 형태로 아담과 함께 있던 우리는 ‘그 날’ 즉사했다. 우리의 본질인 영이, 온 인류가 몰살당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도서관 안에도, 영이 죽은 수많은 사망자들이 좀비처럼 들끓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죽은 송장인 줄도 모르고 열심히 자신들의 바벨탑을 쌓고 있다. 파릇파릇한 소년 소녀들은 좋은 대학을 가려고, 듬직한 청년과 아리따운 처녀들은 돈 많이 주는 직장에 가거나 돈 많은 신랑을 얻기 위한 보다 유리한 조건을 차지하려고, 죽음이 그닥 멀지 않은 내 또래의 늙은 아저씨들은 하다못해 공인중개사라도 할 깜냥으로 열심히 ‘살아있는 척’들을 하고 있다. 늙은 좀비, 젊은 좀비, 못난이 좀비, 예쁘장한 좀비, 고약한 좀비, 착한 좀비, 발랑 까진 좀비, 순진한 좀비, 뚱땡이 좀비, 쭉빵 좀비...... 자신들이 가는 길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그저 열심히 달려가느라고 모두들 바쁘다.
일요일이면 수많은 ‘성도(거룩한 무리)’들이 그들의 신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는 예의 ‘믿!~슈미다’ 내지는 ‘주!셥셔셔!’의 단말마를 이를 악물고 부르짖는다. 이집트를 나온 후 모세가 산에 올라간 틈에 금송아지를 만든 후 ‘이는 우리를 이집트에서 구해내신 야훼이시다!’라며 열정적으로 예배를 드린, 그것도 다른 신이 아니라 ‘야훼’를 섬긴 이스라엘 백성을 무자비하게 도륙하신 신의 분노는 까맣게 잊은 채.
우리의 믿음은 아무것도,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니다. 신은 우리가 그 존재를 믿어주어야만 비로소 존재하는 허약한 존재가 아니다. 그는 'I AM'이라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함축된 의미의 단어로 밖에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내가 그인 자', ‘스스로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구원은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확신해야만 비로소 효과가 있는 신비한 자기도취의 마술이 아니다. 자신이 신께 속했다고 확신한 자들 중 신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목숨 걸고 전 인생을 다 바쳐 종교에 충실했던 2천 년 전의 파리사이 사람들이 그렇다. 그 누구보다도 철저한 신자(信者)였으나 결단코 신자(神子)는 아니었기에 그들은 여전히 영이 죽은 회칠한 무덤, 즉 좀비에 불과했다. 반면, 자신이 신께 속했다고는 감히 생각조차 못했던 쓰레기 막장인생 죄인들을 향해 2천년 전의 그 청년은 그들이 자기의 형제요 신의 자녀임을 알려주었다. 그들의 잘못을 까발리고 야단친 후에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는 그들을 용서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들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부드럽게 안아주고 손을 잡아준 것이다. 말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사랑을 느낀 그들은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스스로 죄악을 토해내었으며,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사랑을 받고 있는지, 신이 자신들을 향해 얼마나 큰 은혜를 베푸는지 절감하고 그 청년 앞에서 무너진 것이다. 창녀 마리아와 세리 자케우스(삭개오)와 오른편 강도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신자(信者)는 아니었으나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이 신자(神子)임을 깨닫고 그 사실에 감격했으며, 이제는 모든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지는’ 신자(信者)까지도 되었다.
신자(信者)는 신자(神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들이다. 하지만 신자(信者)의 그 ‘믿음’이 신자(神子)가 되는 것을 막는 경우도 많다. 그 ‘믿음’은 신께서 바라시는 ‘믿음’이 아니다. 세상의 어떠한 사람에게도 아무런 구별 없이 무조건 나누어주신 신자(神子)의 신분을 감격하여 ‘받아들이는 행위’가 ‘믿음’이지, 신의 존재를 유효한 것으로 만드는, 즉 발칙하게도 신의 생사여탈권을 쥔 우리의 잘난 ‘그가 존재하고 있고 대단한 능력이 있음을 인정(認定)하는 행위’가 아니다. 신은 거룩하다거나 능력이 뛰어나 내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주실 것이 틀림없다는 ‘신념’도 아니다. 신에 대한 우리 인간들의 체계화된 견해에 불과한 ‘신학’은 더더욱 아니다. ‘모든’ 인간들에게 선포된 ‘네가 받아들이기만 하면, 너는 내 아들이다’라는 그 무지막지한 선포를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다. 이 대상에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다. 나는 교회 반대자니까, 목사들만 보면 밥맛이 없어서, 요즘 바람피우고 있으니까 찔려서, 술 담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전혀, 문자 그대로 ‘전혀’ 신자(神子)의 신분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신자들이여, 신자 되기를 그만두고 신자가 되라.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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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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