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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영화 '퓨리' 에서 전쟁의 비인간성을 잘 보여주는 장면
글쓴이 : 휘몰아치는파…   날짜 : 2021-09-17 (금) 03:54   조회 : 6048   추천 : 17


사람을 못 죽이겠다는 신병에게 억지로 권총을 쥐어주며 
눈앞에서 독일군 포로를 죽이라고 강요하는 전차장의 모습
전쟁이란게 적군을 죽이지 못하면 나와 내 전우들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해도

내가 만일 저 상황에 있었다면 적군을 쉽게 죽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 기사회생kor 2021-09-17 (금) 09:03


    토까는 걸로 재능있는 늠이  있었죠 ~~

    한국전쟁의 역사적 인물
  • PzGren 2021-09-17 (금) 04:25
    https://youtu.be/CdQ2mUo3jy4?t=119

    그러던 신병이 이렇게 바뀌죠. 2:35 부터...
    비록 백린탄을 맞고 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적병의 고통을 덜어주려던 목적이였지만 말이죠.
    추천 0 반대 0
  • K딸배 2021-09-17 (금) 04:28
    싸우는 적이 야수인데 같은 야수가 아닌 도덕군자라. 혼자 죽으면 좋은데 보통 안그렇죠. 누군가 델코가는.
    추천 2 반대 0
  • PzGren 2021-09-17 (금) 05:04


    여담이지만 백린탄 하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는데...
    https://namu.wiki/w/%EB%B0%95%EC%A0%95%EC%9D%B8

    1970년대 육군 제3사단(백골부대) 사단장을 지낸 박정인 장군이란 분이 있습니다.
    1928년 함경남도 신흥군 출생으로 1946년 월남하여 2년 뒤인 1948년 육군사관학교(6기)에 입학 후에 임관하고 6.25 전쟁때 대대장으로 활약하면서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긴 양반인데. 1967년 거의 막차로 준장으로 진급을 하게 됩니다.

    이하는 위 링크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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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년 3월 7일 제3보병사단장으로 부임했을때의 일이었다. 진백골 18연대 전방대대에서 군사분계선 표지판 작업 도중 북한군의 사격도발로 부상자가 생기자 당시 사단장이었던 박정인은 직접 마이크를 통해 적측에 사격중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북한측은 아측의 경고를 끝내 무시했고, 결국 포병연대에 사격명령을 내렸다. 직후 105mm 견인곡사포에서 발사된 백린연막탄이 북한군 GP내부를 관통해 폭발하는 바람에 북한군 GP건물이 통째로 날아갔고, 후일 밝혀지길 그 안에 있던 상주인원 36명까지 몰살되었다고 한다. 이후 부상당한 장병이 무사히 구출되어 후송되면서 포격은 끝났다. 이른바 3.7 완전작전. 이 작전은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당시의 미루나무 절단 작전(일명 '폴 버니언' 작전), 1999년 6월의 제1연평해전, 2009년 11월의 대청해전, 그리고 2015년 8월의 서부전선 포격 사건등과 더불어, 휴전 이후 한국군이 북한의 도발을 성공적으로 격퇴한 대표적인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추천 1 반대 0
  • PzGren 2021-09-17 (금) 05:07
    그 사건 이후 북한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사단이 통째로 교체된 건 물론이고 남쪽 3사단에 대응하기 위해 2개사단을 배치했는데 북한 장교와 사관들이 가장 꺼리는 곳이라고 한다. 한 예로 1975년 김부성(소좌급 대우)와 같이 귀순한 인민군 유대윤 소위의 증언을 통해 그날의 공격이 심리적으로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밝혀졌다. 유 소위는 “그날 백골 포병이 GP 막사에 명중시킨 포탄에 인민군 36명이 사망했다”며 지금도 백골부대는 북한군이 가장 겁내는 부대”라고 증언했다.

    이로 인해 작전 약 1달 뒤에 박정인은 육본에서 무보직으로 5개월 있다가 예편하였다. 1985년 이산가족 평양방문단원이 평양에 방문했는데 북한 로동당 정치보위부의 고위간부가 찾아왔다. 그는 “함경남도 신흥군 출신의 박가 성을 가진 요란한 사단장 요즘 뭘 하오?”하고 질문했다. 평양방문단원은 "나는 군대 일은 모르오" 라고 대답했지만 그만큼 북한이 무서워하는 맹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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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하들이 적탄에 맞아 쓰러져가는데 나몰라라 할 수 없었던 지휘관이였던 거죠.
    군법에서 상부의 허가가 없는 불법 전투 개시는 사형에 처하는 중범죄임을 잘 알고 있었을 테고,
    7.4 남북 공동 성명으로 인한 남북협상 기간이어서 과도한 충돌은 피해야 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추천 1 반대 0
  • 수영고프다요 2021-09-17 (금) 07:28
    인간임을 인지하면서도 적이니까 죽여야 하는게 전쟁이니까요.
    그래서 전쟁은 일어나선 안되는거죠.
    추천 1 반대 0
  • 윤돌사마 2021-09-17 (금) 08:11
    전 쏠수있습니다, 적군인데 망설일 필요가.,
    추천 0 반대 0
  • 기사회생kor 2021-09-17 (금) 09:03
    베플로 선택된 게시물입니다.


    토까는 걸로 재능있는 늠이  있었죠 ~~

    한국전쟁의 역사적 인물
    추천 3 반대 0
  • fowmad 2021-09-17 (금) 11:11
    국립 묘지에??
    뭐하냐 안파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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