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75년 전인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두 번째로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당시 희생자는 8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낙하 중심지를 비롯해 주변 지역에는 평화를 기원하는 나가사키 평화공원이 조성됐다.

올해 원폭투하 75주년을 맞아 나가사키시는 대대적인 행사를 개최하려고 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규모를 축소했다. 행사 참석자는 예년의 10% 수준인 500명 정도로 제한됐다.

나가사키 평화공원의 땅을 실물 크기로 인쇄한 8월 9일 자 나가사키 신문

행사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을 맞아 현지 언론사인 나가사키신문은 9일 지면에 평화공원의 지면 사진을 인쇄해 배포했다. 신문을 펼치면 마치 평화공원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구성한 아이디어다. 코로나19로 이동이 어려우니 대신 신문을 펼치고 원폭 사망자들을 추모하자는 뜻도 전했다.

나가사키신문은 “올해 평화기념식은 집에서 열린다고 상상해보자“라며 “회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당신을 위해서 신문지 한 장 분량의 식전장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를 본 일본 누리꾼들은 SNS 에 “발상이 대단하다”는 칭찬을 올리며 앞다퉈 ‘인증샷’을 올렸다. 앞서 원폭이 투하된 시각인 오전 11시 2분에 맞춰 SNS 에 올리자는 독려도 있었다. 많은 일본인은 신문에 서서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나가사키신문 관련 인증샷 /트위터 갈무리

그러나 일본 정부는 다른 생각을 가진 듯하다. 전쟁을 일으킨 과거사를 반성하기보다 ‘피해자 코스프레’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9일 나가사키 원폭 사망자 위령식·평화기원식에 참석한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이 ‘세계 유일의 피폭국‘임을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일어난 참사로 초래된 고통은 다시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며 “(일본은) 유일한 전쟁 피폭국으로서 '핵무기 없는 세계'의 실현을 위해 국제 사회의 노력을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아베 총리는 핵무기의 개발과 사용을 전면 금지하자는 핵무기금지조약( TPNW ) 비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조약은 총 50개국의 비준으로 발효하게 되어 있고 현재 7개국의 추가 비준이 필요한 상황인데 일본은 쏙 빠져 있다. 세계 유일의 피폭국임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핵무기를 금지하자는 논의에는 눈 감은 것이 아이러니다.

9일 나가사키 원폭 사망자 위령식·평화기원식에 참석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또한 이번 행사에서 아베 총리는 일본이 세계2차대전을 일으키고 한국 등 아시아 각국에 엄청난 피해를 준 것에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원폭 투하를 당한 근본적인 이유는 외면하고 희생자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피해'만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일본 언론은 패전일인 8월 15일을 '종전기념일'이라고 부른다. 자신들이 가해자라는 것을 감추는 동시에 전쟁에서 졌다는 점을 감추려는 꼼수다. 정부와 언론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다.

평화는 중요하고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안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원폭 희생자의 고통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과거의 가해자가 ‘피해자 코스프레’로 진실을 왜곡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원폭 투하의 현장에서 자신들의 피해를 부각하는 동시에 스스로 저지른 과오를 덮으려는 일본의 행태가 안타깝기만 하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5&oid=293&aid=0000030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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