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300년 종가집 차례상

글쓴이 : 우렁이 날짜 : 2019-09-12 (목) 16:01 조회 : 21019 추천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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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블로하고… 2019-09-12 (목) 16:04 추천 35 반대 0
그 뭐야 ㅋㅋㅋㅋ

튜닝의 끝은 순정 그거 아닌가
디아블로하고… 2019-09-12 (목) 16:04
베플로 선택된 게시물입니다.
그 뭐야 ㅋㅋㅋㅋ

튜닝의 끝은 순정 그거 아닌가
     
       
밀떡볶이 2019-09-13 (금) 11:27
저게 튜닝 아닌가요?
순정으로 가면....ㄷㄷㄷㄷㄷ
          
            
긴팔티 2019-09-13 (금) 14:09
그 옛날에는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슈라백작 2019-09-13 (금) 15:13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는 것은.... 조선 후기 이후라고 들은 것 같습니다....
언제나항상내… 2019-09-12 (목) 16:07
살아생전 즐겼던 것만 올렸나
     
       
싸리비 2019-09-12 (목) 16:10
차례상이니까요

지금처럼 차례상이 요란해진게 조선 후기,말기부터 라더군요
          
            
TRASH★ 2019-09-12 (목) 16:11
역시 유교가 변질된 후
               
                 
싸리비 2019-09-12 (목) 16:13
뭐 그래도 제대로된 양반네는 음식 하는거 도와준 동리 아낙네들 집에 돌아갈떄

푸짐하게 챙겨주고 차례,제사 지내고 남은 음식 어려운 이웃들 맛 좀 보라고 돌렷다고는 하더군요 ㅎㅎ

양반네 제사 지내는날이 그 동네 사람들 포식하는 날이었다고 하니까요
               
                 
차후 2019-09-12 (목) 17:42
변질이 아니라 고대부터 제사를 정해논 가례를 송나라때 주자가 한번 깔쌈하게 정리했는데 이게 조선으로 넘어와 정착되기 시작했죠....문제는 이후 족보위조로 양반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원조 양반가문은 가례를 fm으로 치루기시작하고 갑자기 양반된 집안도 경쟁적으로 fm대로 하기 시작하면서 괴랄하게 변질 되었죠
               
                 
고기집삼촌 2019-09-13 (금) 07:40
주자학의 송시열이 그따구로만듬... 거기다 가짜양반들이 늘어나자 차별주겠답시고 그렇게 화려하게함
          
            
강세이 2019-09-13 (금) 14:10
요건 말이 많긴한데
실제 어르신들한테 이여기 듣기로는
일제강점기 때까진 간소한 느낌이 많았으며
제사자체를 양반가에만 지낸경우인데
이게 전쟁직후 없어서 못머고 못살다가
명절에라도 푸짐하게 먹자가 시작으로 60-80년대에
차례상 문화자체가 새로 만들어진 수준이라더군요.
               
                 
공숲 2019-09-13 (금) 14:54
이게 맞는거 같아요
50년대까지만해도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던것만 봐도 먹고 살기가 매우 힘들었다는걸 알수있죠.
문제는 계급이 없어지면서 너도나도 제사를 지내다보니 지금까지 문제가된듯 합니다
그리피티 2019-09-12 (목) 16:09
그럼 전 뿌링클 치킨으로..
TRASH★ 2019-09-12 (목) 16:09
저게 전통인거 아는사람은많음
정작 양반 흉내낸 사람들이 제사상만 으리으리하게 차렸다고 하죠
지금은 시대가 좋아서 더올려아맞다고 하는 세대랑 제사거부세대의 갈등이 심화
결국승자는 여행가는 사람들
하이눈 2019-09-12 (목) 16:12
조상들도 다 저렇게 지냈을테니 섭섭해하진않을테고
가족도 편하고
좋네요
아침에 후딱 차례 끝내고 각자 하고싶은거 하거나, 가족끼리 점심외식이라도 하면 그만이죠
     
       
TRASH★ 2019-09-12 (목) 16:14
분란을 없애려면 점심전에
차례끝나고 얼른 처가댁 외갓집 빨리다녀와야되겠죠 ㅎㅎ
dOxOb 2019-09-12 (목) 16:16
제가 주워들은 이야기론 임진왜란 후 경제가 파탄나서 재산을 자손들에게 나눠주느니 장손에게 몰빵하게 되고
장손이 모두 물려 받아 다른 형제들은 살림이 넉넉하지 못함
그래서 명절 차례상이나 제사상을 크게 차려 찾아오는 형제들을 그날이나마 배부르게 먹였다고 하더라구요
국밥부장관 2019-09-12 (목) 16:45
어차피 우리나라 고유 문화도 아니고 짱개문화임
ragsak 2019-09-12 (목) 16:46
사실 저것 조차도 제대로 구해서 지내면 귀한집이였다고 합니다.

왜냐... 사실 지금처럼 농업이 발달하기 전이고 물류이동이 어렵다보니...;;;

흔히들 말하는 대추 밤 곷감 사과 배 많이들 하시는데 이렇게 다 구하기가 힘들었다네요-_-;;; 그렇다고 합니다.
코코코방 2019-09-12 (목) 17:28
차례상만 저렇지..
마을 사람들과 친인척들 상차림은..끝판왕임..
밀가루 포대 15자루 옯겼다면 말 될려나?
죽어야끝나지 2019-09-13 (금) 00:04
굿
조니미첼 2019-09-13 (금) 00:11
이거 말고도 종가집 차례상, 제사상 간소하게 차렸던 증거들 넘쳐나죠.

20세기 들어서 생긴 허례허식 다 없애야 됨.
jadoil 2019-09-13 (금) 01:08
와 저 대추 완전 맛있겠다
말린상태 인대도 저렇게 크다니
wdiydw3 2019-09-13 (금) 01:26
무식한 집안일 수록
그걸 감추기 위해 허례허식과 돈으로 치장하려고 한다.
음식을 많이 올려야 조상신이 돌봐줘서 무탈하고 재물운이 들어온다고 생각한다.

끄덕 끄덕
애쉬ash 2019-09-13 (금) 01:26

운율이 너무 좋음
빡침이 느껴지는 내재율에 체념과 관조가 주작처럼 날아오르는 피날레...한국 현대 운문 중 몇 안되는 수작

"음식상에 절하고 집에 와서 마누라랑 싸운다"

즐거운 한가위들 되세요~ 저는 차례 지낼거고 싸우지는 않을거예요 마누라가 없거든요 ㅋㅋ
풍원부원군 2019-09-13 (금) 02:05
경북 안동시 법흥동에 위치한 임청각은 대한민국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자 종택입니다.
임청각은 안동에서 가장 오래된 종택임에도 추석차례를 아예 지내지 않습니다.
기타 다른 안동의 종가들과 더불어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제사지내는 풍습이 있기도 한데 임청각은 10월쯤 간단히 조상의 묘를 찾아 시제를 모십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의 4대손이자 종손인 이창수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전통이라는 것은 원래 가가예문이잖아요.
조율이시로 진설을 하든 홍동백서로 진설을 하든 그 집에 맞춰서 진설하면 되는 거예요."
또 임청각의 모든 제사도 일년에 딱 한번 광복절에 합동으로 모십니다.
제사상은 고래의 전통을 계승하되 가급적이면 소박하게 모십니다.
광복절에 모시는 이유는 나라를 되찾으러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석주 이상룡 선생 때문이거니와
석주선생 본인, 아들 동구 이준형 선생, 손자 이병화 선생 삼대에 걸쳐 지난한 광복대업에 헌신한 이유에서입니다.
종손 이창수 선생은 또 말합니다.

이상룡 선생의 종가는 모든 제사도 일 년에 한 번, 광복절에 모아 지냅니다.
"제사상은 남들 보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는 조선 시대 때도 간소하게 지냈고 지금은 더 간소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제사란 과연 무엇일까요?
제사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본다면 좋겠습니다.
헤테로지니어… 2019-09-13 (금) 09:33
게다가 차례상, 제사상은 남자들이 차리고 여자는 못 들어오게 했다던데
겨울의바다 2019-09-13 (금) 09:52
원래 차례상은 새로난 곡식, 과일 같은거 있는걸로 정성스럽게 차리는거였는데 여러 양반, 부잣집들이 자체적으로 정한 규칙들이 합쳐지고 변하고 하면서 지금처럼 과하게 변했다고 들었어요. 뭐 홍동백서니 조율이시니 이런것도 그렇고.
왕자의게이 2019-09-13 (금) 10:36
오우..
마사노 2019-09-13 (금) 10:43
성리학의 이념중 하나가 소박함과 검소함입니다.
관학파와 사림의 집권중일땐 자기, 그릇, 의복류 까지 소박함과 검소함을 추구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쯤이 되서
상업, 농업, 광업등으로 큰 돈을 만진 상민층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를 요호부민이라 부릅니다.

정조때 양반들의 전유물인 향교를 수령이 관리감독하게 만듭니다. 이때 요호부민들이 수령과 결탁해서
(양반 vs 수령+부농)=향전이라 합니다.
이쯔음 해서 중앙 정계에서 낙향한 수많은 사림들이 사우를 우후죽순 만들게 되고, 이에 요호부민들은 절을 겁나 화려하고 크게 짓게 됩니다. 이때 절들이 많이 생겼어요. 흔히 말해 돈지랄입니다.

상차림도 이와 비슷한데, 양반은 성리학적 이념에 기초한 검소한 상차림을 하지만 요호부민들은 돈지랄을 하기위해 소위 상다리 부러지게 상차림을 했기에, 양반 vs 농민 상차림의 경쟁이 되어 현재 작금의 명절 상차리기가 된겁니다.
cainite 2019-09-13 (금) 11:26
애초에 가례를 따른다고 했으므로 다른 집 차례상을 본보기로 삼는거 자체가 자가당착이 아닌지.
오리매운탕 2019-09-13 (금) 13:35
차례지내는건 좋은데, 그 의미가 변질되고 그냥 과시용으로 이거저거 늘려놓으니 다들 차례지내기 싫어하지.
흐노니 2019-09-13 (금) 16:48
60~70년대야 못 먹고 못 살 때 니까 명절날 푸짐하게 해서 다 같이 나눠 먹었지만 지금은... 솔직히 저 정도로 하고 끝내야지... 어차피 매년 남는 음식에 그거 준비한다고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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