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새벽 횡성군 송전리 김태봉(90세) 씨 축사에서 불이 발생했다. 축사에서 4년간 지내온 암소 ‘사랑이’가 불에 그을린 채 축사를 탈출해 100m가량 떨어진 골목으로 이어진 주인집에 화재를 알려 피해를 줄이고 새끼를 구한 이야기가 커다란 감동을 주고 있다.

불이 나자 어미소 사랑이는 불이 난 사실을 알리기 위해 축사를 박차고 100m가량 떨어진 주인집 마당까지 달려가 온몸으로 마루를 발과 머리로 들이받아 거칠게 울어대며 잠든 김 씨 부부를 깨워웠다. 소란한 기척에 놀라 밖을 내다보니 축사에 있어야할 ‘사랑이’가 한밤중에 숨을 헐떡거리며 마당에서 방을 처다보고 머리를 흔들며 서 있었다. 밖으로 나가보니 축사에 씨벌건 불이 난 것을 확인한 김 옹은 119에 신고했다.

이불로 키우던 소 11마리 가운데 암소 2마리와 송아지 1마리만 폐사하고 나머지는 화를 면했다. 축사에서만 지내던 어미소 사랑이는 100m 떨어진 집까지 찾아왔다. 낯선 오솔길과 골목길을 지나야 해서 다소 어려울 수 있었다.

덕분에 올해 ‘사랑이’가 낳은 송아지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 불을 끄고, 새끼도 살렸지만, ‘사랑이’는 밤새 가쁜 숨을 몰아쉬다 다음 날 아침 주인집 마당에서 결국 숨을 거두었다. ‘사랑이’는 숫 송아지 2마리를 낳은 어미소로 뱃속에 또 다른 새끼를 임신한 상태였다.

평소에도 김옹의 지극한 사랑을 받아온 “‘사랑이’는 뽀뽀라고 말하면 머리를 들어 입을 맞추는 시늉을 하곤 했다.”며 “내가 나이 먹어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며 김옹은 스스로를 자책했다. 19일은 김옹의 아흔번째 생신이었다. “자식들이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내려온다고 했지만 생일상을 차려먹을 기분이 아니라고 오지 말라고 했다.”며 어제까지 이리저리 뛰어 다녔으나 오늘은 몸저 누웠다.

축사 주인 김옹은 “갓 태어난 송아지를 입양해 한 식구처럼 애지중지 키워온 ‘사랑이’를 내 잘못으로 잃은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생전에 축사에만 크던 애가 멀리 떨어진 우리 집 마당까지 달려와 화재를 알렸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며 축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다른 소들과 함께 묻어 주었다.

4년 동안 축사에서만 지낸 사랑이가 주인집을 찾아 화재를 알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마을주민들은 “말은 못 해도 자식을 지키려는 모성애와 주인의 사랑에 보답하려는 마음이 깊었던 것 같다”고 김옹을 위로하고, 축사를 세롭게 다시 정비하고, 스스로 장비 등을 동원해 ‘사랑이’를 땅에 묻어 주었다.

한 이웃은 “횡성군과 축협에서 횡성 한우를 이용한 돈벌이에 만 연연 한 싸움만 할께 아니라 어미소('사랑이')의 각별한 마음을 본받아야 할 일”이라며 “봉분이라도 만들어 주고 아름다운 사연을 오랫동안 기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mail protected]
강원도민을 위한 시사정론 시사강원신문사
Copyright © 시사강원신문사 www.sisagw.com 무단복제 및 전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