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가족

방금 이토에서 뇌성마비 아빠 사연을 보다가 문득 수십년 동안 잊고 지내던 같은 장애를 가진 사촌 동생이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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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집이라 명절마다 가끔씩 보던 사촌 동생은 뇌성마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인 제 삼촌도 교통사고로 장애가 있었고, 이래저래 어렵게 사셨습니다.
성별도 다르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서 제대로 이야기도 나눈 적 없었지만,
그 순한 웃음 조차도 어린 제게는 익숙지 않아 불편함과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촌동생은 사춘기를 지나는 어느 때부터 명절에도 오지 않고, 어느새 잊혀진 존재가 됐습니다.

지난 여름 오랜만에 삼촌께 안부 전화를 드렸을 때도, 삼촌은 이제 사회 자리 잡은 작은 아들 자랑만 열심히 하셨죠.
저도 아무 생각 없이 그 동생에게만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말았습니다. 첫째는 제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져 있었지요.
생각해보니 시집도 갔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세월이 흘러, 어느새 저는 두 딸 아이, 그 중의 하나는 장애를 가진 공주님의 아빠가 되어 있습니다.
처음 아이를 낳고, 알면서도 임신 중절을 안 했다고 저를 책망 하던 어느 가족, 불편함과 두려움의 눈빛으로 내 사랑스런 아이를 바라보는 길 거리의 누군가들,
지금은 다 익숙해지고 아이가 너무 이뻐서 하루 하루가 행복하지만, 가끔씩 그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그 차가운 세상의 공기가 생생해 가슴이 아려옵니다.

뇌성마비 아빠 사연에서, 놀림받을까봐 아이 학교에 찾아가지 못하고 담벼락에 기대 앉아 속상해 하는 아빠를 보면서 남 일 같지 않아 그만 울컥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 사이에서 어느새 잊혀진 그 동생이 떠올라 당황스럽고 미안하고 창피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 나는 그 때 그 어린 마음, 아팠을 마음을 헤아리지 못 했을까 책망하는 마음이 먼저 드네요.
큰 집에 와서도 왁자지껄한 명절 속에서도 외톨이로 지냈을 그 동생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것이 너무나 미안합니다.

아마도,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깊은 강물을 지나야 비로소 영혼이 깊어지기 때문이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봅니다.

지금, 깊은 강물을 지나고 있는 모든 이들께, 혼자가 아니라고, 끝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키 큰 나무숲을 지나니
내 키가 커졌다
깊은 강물을 건너니
내 영혼이 깊어졌다
 
- 박노해 '키 큰 나무숲을 지나니 내 키가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