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영리병원 허가취소 정당…녹지병원 결국 좌초

국내 첫 영리병원 허가취소 정당…녹지병원 결국 좌초
박미라 기자 [email protected]

제주지법 행정1부(김현룡 수석부장판사)는 20일 중국 녹지그룹의 자회사이자 녹지국제병원의 사업자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이하 녹지제주)가 제주도를 상대로 낸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취소처분 취소소송’에 대해 기각한다고 밝혔다.

■ 내국인 진료제한 개설허가에 녹지병원 반발

녹지그룹은 2017년 8월 제주 서귀포시 헬스케어타운 부지 내 지상 3층·지하 1층 건축 연면적 1만8223㎡에 47개 병상, 4개 진료과목을 갖춘 병원 건물을 건립하고 제주도에 개설허가 신청을 했다.

제주도는 수차례 허가를 연기하며 결론을 내지 못하다 2018년 12월5일 ‘내국인 진료 제한’을 조건으로 녹지병원의 개원을 허가했다. 하지만 녹지병원은 조건부 허가에 반발하며 의료법이 정한 3개월간의 개원 기간 내 업무를 시작하지 않았다. 의료법에는 개설 허가를 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를 시작하지 않으면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제주도는 의료법 위반 등을 이유로 청문 절차 등을 밟아 2019년 4월17일 개설허가를 취소했다.

이 과정에서 녹지병원은 2019년 2월 제주도가 진료 대상을 외국인으로 한정해 개설허가를 낸 것은 위법하다며 허가 조건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주지법에 냈다. 또 같은해 5월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추가로 냈다.

녹지병원은 제주도가 개설허가에 붙인 내국인 진료제한 조건이 위법하고, 이 조건을 시행할 경우 경제성이 없어 병원 운영이 어렵게 되는 등 업무를 시작하지 않은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내국인 진료 거부에 따른 의료법 위반 등 형사처벌의 위험성, 개설허가가 늦어지는 동안 채용 인력의 이탈 등도 개원하지 못한 이유라고 밝혔다.

■ “개설허가 위법여부 상관없이 업무 시작했어야”

재판부는 이날 “원고는 개설허가처분에 붙인 조건에 위법이 있음을 주장하며 별도 소송을 제기했다 하더라도 개설허가에 공정력이 있는 이상 일단 개설허가 후 3개월 이내 의료기관을 개설해 업무를 시작했어야 하는데 업무 시작을 거부했다”며 “개설허가에 위법이 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개설허가를 취소할 의료법 제64조 제1항 제1호의 사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내국인 진료를 제한할 경우 경제성이 없어 병원운영이 어렵다는 주장, 진료거부에 따른 형사처벌의 위험이 있다는 녹지병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또 “개설 허가가 늦어지는 동안 채용했던 인력이 이탈한 사정이 있더라도 개설허가 후 병원개원 준비를 위한 어떤 조치도 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인력 이탈을 업무시작 거부의 정당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며 “3개월 이내 업무 불개시에 대해 업무정지가 아닌 허가취소의 처분을 한 것이 재량권의 일탈·남용한 것이라는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날 제주도가 내국인 진료제한 조건을 달아 녹지병원 개원을 허가한 것은 부당하다며 녹지병원이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조건 취소 청구 소송’에 대해서는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취소처분 취소소송’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선고를 연기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다투는 의료기관 개설허가 처분은 이미 제주도가 2019년 4월17일자로 허가취소 처분을 함에 따라 이미 소멸한 상태”라며 “소송의 대상이 이미 소멸한 경우에 해당돼 부적법한 소가 돼 판단할 수 없어 각하 판결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허가취소처분이 취소돼 개설허가가 되살아나면 내국인 진료제한 조건이 위법한지 여부에 대해 판결할 수 있다”며 “개설허가취소 처분 취소 소송 판단 결과가 확정되기 전에는 이 사건의 판결이 가능한지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시민단체 “영리병원은 의료체계 흔드는 재난”

한편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등 3개 단체는 그동안 기자회견을 통해 “녹지국제병원 개설은 대한민국의 의료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재난과 같다”며 “영리병원은 감염병 대응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인 돈벌이 병원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우리는 지금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더 많이 고통받는 감염병 시대에 살고 있다”며 “영리병원이 아니라 더 많은 공공병원이 필요하고, 제주특별법과 경제자유구역법에 명시된 영리병원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녹지병원은 국내 다른 병원과 달리 환자 진료를 통한 수익을 투자자가 회수할 수 있고, 건강보험 의무 적용을 받지 않는 국내 첫 영리병원이라는 점에서 설립 초기부터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현행 의료법은 국내에서 영리법인이 의료기관을 세울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즉, 모든 병원의 목적은 영리추구가 아닌 환자진료여야 한다. 이 때문에 진료나 수술 등을 통해 생긴 수익 역시 다시 병원에 재투자해야 한다.

반면 예외적으로 영리병원이 허용된 곳이 바로 국내 7개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다.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하 경제자유구역법)과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제주특별법)은 외국인 투자비율이 출자총액의 50% 이상이거나 500만달러 이상의 자본금을 가진 외국계 의료기관에 한해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있다.

이들 영리병원은 병원 운영으로 생긴 수익금을 투자자가 회수할 수 있어 이윤추구가 가능하다. 건강보험의 당연지정제 적용을 받지 않아 의료비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

때문에 영리병원 반대단체들은 “녹지병원을 시작으로 의료비를 마음대로 책정할 수 있는 영리병원이 확산되면 주변의 비영리병원의 의료비에도 영향을 미쳐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고, 건강보험으로 다져진 의료체계가 흔들려 의료 공공성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찬성 측은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의료서비스 향상과 선택권 확대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성장 산업으로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이며, 고부가가치 외국 의료관광객을 유치해 관광산업의 활로를 열 것이라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