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이면 가끔 파슬리 쓴 맛이 떠오릅니다.

파슬리 쓴 맛을 좋아하는 분 계시죠?

저는 고기 요리할 때 파슬리를 향신료로 많이 씁니다. 건조 분말보다 신선한 채소를 더 좋아하는데, 오래 씹다보면 느껴지는 쓴 맛이 좋아서요. 거기에는 사연이 있어요. 요즘처럼 여름비가 부담스럽게 내리면 파슬리에 얽힌  시골에 계신 엄마 생각이 납니다. 

저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굉장히 모험적인 시도를 많이해서 힘들었습니다. 어느 해는 고급 허브였던 파슬리 씨앗을 일본에서 사 와서 고급 레스토랑에 비싼 값에 팔 수 있다며 농사를 지었습니다. 온 식구가 그때까지 듣도보도 못했던 서양채소가 이상한 모습으로 자라는 걸 보며, 그 모양 만큼이나 이상한 만큼의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며 기대가 컸어요. 얼마나 맛있길래 고급이냐고 조금 뜯어서 먹어 봤는데, 비누맛에 쓴 맛까지, 기대와 다른 맛이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없는 채소라 판로를 만들지 못해서 다 버리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시작할 때의 호기가 꺾이자 금새 앓는 소리를 하며 소주를 됫병으로 마시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상대적으로 포기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한 보따리를 캐서 시외버스로 한시간 쯤 걸리는 시내로 가서 그때 제일 고급 호텔 정문 옆의 골목에 자리를 펴서 그걸 늘어놓고 누군가 알아주는 사람이 있겠거니 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렇지만 , 오후가 다 지나도록 아무도 알아보는 이가 없어 낙담이 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거기에 큰 소낙비가 와서 채소가 다 젖어 버렸습니다. 수확한 채소는 비를 맞으면 바로 썩어버립니다.  어머니는 속상한 마음에 자신의 신세가 서러워서 한참 우셨다고 합니다. 비싼 종자 값에, 몇 달간의 희망이 없어졌고, 아버지에 대한 실망까지, 게다가 우리집은 자식이 여섯이나 되어 없는 살림에 힘들게 살았거든요. 

그 때에 누가 우산없이 택시에서 내리더니 호텔 뒷문으로 뛰어 가다가 어머니가 우시는 걸 보고 왜 그러시냐며 달래려고 다가 왔습니다. 그리고 그 채소 파슬리를 보고는 이 지역에서 파는 걸 처음 본다며 한봉지를 사줬습니다. 그 손님은 그 호텔의 요리사였습니다. 그 호텔은 박정희가 밥을 먹는 유명한 곳인데, 그 요리를 자기가 한다고 합니다. 또 파슬리가 좋은 채소인데 우리사람들 입맛에는 맞지 않아서 많이 팔기 어려울 거라고 조언도 해줬습니다. 지금은 횟집에서 장식 채소로도 흔하게 쓰이지만, 당시에는 회 먹는 문화가 별로 없는 시대였어요. 고기는 없어서 못먹는 시절이라 향신료 문화가 전혀 아니었고요. 그러니, 망한거죠. 그래도 어머니 생각에는  그거라도 팔았고, 그 요리사의 응원까지 들었으니 살 기운이 났다고 합니다. 그 해 그 농사는 완전히 망했습니다. 

이 사연은 수십년이 지나고 제가 다 커서 들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날 생생하게 기억을 꺼내 이야기 해 주신 건, 어머니가 그 기억을 간간히 꺼내 되새겨 왔기 때문일 듯 합니다. 어머니가 요즘 치매 증상이 있으세요. 이제 어머니 기억 속에서 뭉텅뭉텅 빠져나가고 있을 많이 이야기들이 궁금해요. 거기에 내가 모르지만, 알아야 할 것 같은 사정들도 많을 텐데. 어머니는 저희 앞에서는 저희 탓을 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 인생이 생각같지 않을 때에도 힘이 되었어요.  그래도 속 마음은 달랐겠죠. 말씀을 안하시니 저는 모르지만, 대강 기분은 알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들은 후로 횟집에서 천사채에 올려져 나오는 파슬리가 반가워서 꼭 먹습니다. '쓰니 좋구나. 어른 맛이다'.  어머니가 빗속에서 눈물 맛으로 먼저 아셨던 파슬리! 정말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