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녀에게 속살거린다.

"아이구 할머님~ 평생 그 모진 고통을 받으셨는데 억울해서 어째요? 일본놈들은 도대체 언제 사죄한데요?"

"아이구 할머님~ 일본놈들 사죄한다는 소식은 문안인사 오는 그 애들한테 뭐 듣는거 없어요?"

"아이구 어머님~ 이렇게나 홀로 집에 놔두고 그 애들은 뭐 한달에 한번 정도만 찾아온대요?"

"에구 어머니~ 몸도 성치 않은 분이 수요일날 힘들게 나가시고 그러세요? 그 애들도 이렇게 노인분께 나서라 해야하나? 사람들 참 모지네~"

"에구 불쌍한 엄니~ 그 애들 보니까 공장 끌려간 사람들 배상 받아주겠다는 애들인데 엄니가 어떻게 그 사람들이랑 같아요? 에구 불쌍해~"

"에구 억울해서 어째? 공장 끌려간 할머니들 일본이 인정 안해서 그 덕에 우리 엄니는 덤태기 썼네~ 억울해서 어째~"

"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에서 보상금 받았다는데 엄니 찾아오는 걔네들은 입 꾹닫고 돈 걷는거 돈 받는거 감추네~ 아이구 불쌍해~"

"엄니 억울해서 어찌 살아요? 엄니가 걔네들하고 엮여서 사과는 사과대로 못받고 보상은 보상대로 못받고 엄니 이름팔아 돈장사 하는거 같으니 엄니는 그 애들이 수상하게 했던거 다 기억해 보소~ 내가 도와줄께~  "

어느덧 그녀는 남아있는 촛불이 거의 사그러져 감을 느낀다.

밤 바람이 유리창을 두들기는 소리에 홀로 눕다 다시 눈을 뜰 때마다 하루 하루가 주는 축북의 순간이란 것을 감사하는 나날속에서 이제 그녀는 남아있는 한과 응어리를 풀고 해결하고 싶은 소망만이 간절하다.

소스라치게 끔찍했던 과거의 기억을 소명하기 위해 30년간의 투쟁속에서 아는 사람들은 하나 둘 사그러져가고

과거의 기억을 인정치 않는 일본의 행태에 대해 지쳐가는 그녀의 마음...

그런 그녀의 마음과 달리 다른 이들은 아직도 눈부신 삶속에 있다.

어찌 자신만 동떨어진 마음 서운한 마음 한조각이 없으랴....

그런 그녀에게 누군가 저리 속살거렸다.

그 속살거림은 외롭고 서운했던 그녀의 마음을 서서히 끈질기고 집요하게  미움과 증오로 바꿔간다. 하나하나...

다 잘될거라고.. 나는 당신의 진심을 누구보다 이해하기에 옆에 있겠다고..

나는 믿어도 된다고.. 당신의 뜻을 내가 실현해 주겠다고...

지쳐있고 남은 시간속에서 이룰 수 없던 무언가가 아니라 한가지는 분명하게 이룰 수 있을거다 라며 눈앞에 희망을 꺼내주었고

구체적인 듯 모호한 말에 점차 그녀는 그것이 사실로 될 수 있을거라 믿어간다.

그 믿음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지금까지 바쳐왔던 30년의 운동이 남들에게 속아 이용당한 것 같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그 믿음이 강해질수록 아주 자그마했던 기억이 다 섭섭함으로 그녀의 머리를 채운다.

이제.. 마이크를 잡고 화려한 플래쉬속에 앞에선 그녀는 자신의 귀에 속살대던 그것이 했던 장담이 진짜라고 여긴다.

그냥 몇 사람이 훑어보듯 지나가던 자리속에 피해자 중 한명이 아니라

만인이 지켜보는 플래쉬속에 피해자를 대표하는 한명이 되었구나 라는 체감을 할수록 그녀는 자신에게 속살거리던 그들의 말을 철썩같이 믿을 수 밖에 없게 된다.

디테일 속에 파고들어 하나씩 하나씩 진실을 거짓으로 바꾸며 사람을 농락하고  그 사람을 앞에 내세워 부리며 그 사람의 과실을 뒤에서 뺏어먹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것...

악마는 디테일 속에 있다.

그리고, 그 악마는 그녀를 미끼로 삼아 커다란 먹이를 통째로 삼키기 위해 정성껏 그녀에게 속살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