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A의 한국인 연구자들

포이에마 2019-07-24 (수) 00:14 조회 : 1051 추천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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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이] 1969년 7월 21일(표준시), 미국항공우주국( NASA )의 아폴로 11호 유인 우주선이 달의 고요한 바다에 착륙했다. 전 세계는 열광했다. 달 착륙 이후 NASA 는 태양계의 모든 행성과 심지어 태양까지 탐사선을 보내며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우주 분야 연구소로 자리매김했다. 이토록 '대단한' NASA 의 연구자들은 어떤 생활을 할까. 매일경제신문은 아폴로 달 착륙 50주년을 맞이해 NASA 제트추진연구소( JPL )에서 근무하는 3명의 한국인 과학자, 1명의 한국인 엔지니어와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NASA JPL 은 연방정부의 기금으로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에서 운영하고 있는 연구시설로 태양계 및 외계행성 탐사, 우주로봇 개발 등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인터뷰의 모든 의견은 인터뷰 당사자의 개인 의견이며 NASA 나 JPL,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의 입장이나 정책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NASA JPL 에서 하고 있는 일이 궁금하다

▷성기윤 박사(54)=빛을 연구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적외선 분자 분광선(분자에서 방출되는 특정한 파장의 빛)을 실험적으로 측정하고 분석하는 연구를 한다. 어떤 빛이라도 전파되어 오는 동안 원자나 분자 같은 물질과 만나 상호작용을 하게 되는데, 그 상호작용의 흔적들이 분광선에 남는다. 이 분광선들을 적외선 영역에서 측정하고 관측하는 것이 나의 연구 분야다. 적외선 분광선 연구를 응용해서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 나의 실험실 연구 결과들은 NASA 가 수행하는 지구나 행성대기, 성간분자(별과 별 사이의 성간에 존재하는 물질 중 분자 상태로 존재하는 것) 운동의 지상 관측과 원격 탐사 위성 자료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데 사용된다. 예를 들면 내가 참여했던 공동 연구 중 하나는 '프로필린'이라는 분자를 토성의 위성 타이탄 대기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 새로운 분자의 발견은 카시니 탐사 위성의 업적 중 하나로 2013년도 NASA 헤드라인 뉴스로 발표되기도 했다.

▷이희교 박사(40)=데이터 사이언티스트다. NASA 는 지구의 기후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인공위성과 관측용 비행기를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NASA 의 위성 자료를 이용해서 지난 수십년 동안 강수량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최근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미세먼지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위성도 운영하고 있다. 다음달 NASA 는 산불로 인한 연기의 움직임과 화학반응을 연구하기 위한 비행 시험관측을 시작한다. JPL 에서 나는 위성 자료를 활용하여 대기오염, 물의 순환 등을 연구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 또한 위성에서 얻은 데이터 분석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서영민 박사(38)=우리 은하에서 별이 형성되는 지역을 연구한다.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성간 분자운(분자구름)에서 별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성간 분자운의 어떤 특성이 원시 항성의 질량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분자운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성간 분자운의 화학적 특성은 어떻게 변하나.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성층권 테라헤르츠 망원경2( STO 2)' '성층권 적외선 천체 망원경( SOFIA )' '100m 그린뱅크 전파 망원경( GBT )' '허셜 우주 망원경( HSO )' 등 다양한 망원경을 이용해 별 형성 지역을 관찰하고 있다. 현재 NASA 의 차세대 계획 중 초고압 기구를 이용한 성층권 적외선 망원경을 만드는 일에 천문학자 및 소프트웨어 개발자로도 참여하고 있다.

실험하고 있는 NASA JPL 의 엔지니어 이춘섭 박사

▷이춘섭 박사(46·엔지니어)=차세대 측정 장비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NASA 과학자들은 연구를 위해 측정용 장비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장비는 극악한 우주 환경에서 동작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기네스북에 쉽게 올라갈 정도의 관측 정밀도를 가져야 한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관측된 데이터를 갖고 우주 과학을 한다. 측정 장비 개발 엔지니어들은 새로운 과학을 실질적으로 가능케 하는 인력이다. 현재 NASA 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연구 분야 가운데 하나는 '플룸( Plume )'이다. 플룸은 엔셀라더스, 유로파, 그리고 혜성에서 분출되는 먼지 형태의 분출물이다. 생명 필수 요소 가운데 하나인 물이 플룸에서 발견되면서 플룸에 대한 관심이 NASA 내에서 더욱 높아졌다. 그 물을 관측할 수 있는 장비로 테라헤르츠에서 동작하는 '헤테로다인 수신기'를 개발하고 있다. 테라헤르츠는 우리가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기가헤르츠보다 1000배 높은 주파수다. 이 같은 수신기는 금성 행성의 대기권 구성 물질과 바람의 속도 등 대기권 관측도 가능케 한다. 이 수신기는 플룸이 분출되는 곳 그리고 금성에 갈 차세대 위성을 가능케 하는 핵심 기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영화에 등장하는 NASA 연구원들은 '괴짜'로 묘사되는 일이 많다. 실제 그런가.

NASA JPL 의 `고해상도 분자 분광학 연구실`에서 연구하고 있는 성기윤 박사

▷성기윤 박사=글쎄.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은 없다. 대신 자신의 분야에 엄청나게 열정적이며 헌신적인 사람들을 많이 봤다. NASA 에서 일하는 괴짜 과학자는 할리우드 영화가 만들어 낸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NASA JPL 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성기윤 박사=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에서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 학위논문을 준비하던 시기에 지도교수가 '박사후 연구 제안서'를 준비해 국립연구위원회( NRC )에 제출해 보라고 권유했다. 지금은 NASA 박사후 연구 프로그램( NPP )으로 개편된 이 프로그램은 같이 일하고 싶은 NASA 기관의 과학자와 함께 연구제안서를 쓰는 방식이었다. 당시 지도교수가 JPL 의 브라운 박사를 추천했다. 사실 브라운 박사는 한 해 전에 열린 국제 분광학회에서 만났던 적이 있었다. 그는 내 발표를 듣고 도움이 되는 질문과 격려를 해 준 분이었다. NRC 연구제안서가 선정됐다는 통지를 받았을 때, 이미 나는 캐나다의 한 대학으로 박사후 연구직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였다. 캐나다에서 박사후 연구원 계약이 끝나갈 무렵 다시 JPL 의 브라운 박사와 연락이 됐고 심사 인터뷰를 거쳐서 2007년 박사후 연구원으로 JPL 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3년 후 정규직 연구과학자로 전환됐다.

NASA JPL 에서 연구하고 있는 이희교 박사

▷이희교 박사= NASA 는 천체물리학, 행성과학 측면의 업적들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NASA 에는 지구과학, 천체물리학, 우주기상학, 행성과학 등 크게 네 가지 과학연구 부서가 있다. 그리고 전 세계 대부분의 대기 과학자들은 NASA 자료를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학원생 시절 NASA 의 위성데이터를 이용해 대기화학을 연구했다. NASA 의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당시 NASA 과학자들이 쓴 수많은 문서와 논문을 읽어야 했고 그러면서 알게 된 NASA 의 독특한 연구가 나를 JPL 로 이끌었다. 내 생각에 NASA JPL 에 지원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춘섭 박사= NASA 에 오게 된 계기는 국내 박사학위자로서 영어를 배우고 미국에서 일할 경험을 찾기 위해서였다. KAIST 박사과정 시절 외국 생활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채용 사이트에서 NASA JPL 이 내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에 대한 엔지니어를 구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채용될 것이라곤 생각하지도 않고 지원했다. 놀랍게도 JPL 은 내게 전화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흥분된다기보다는 두려웠다. 영어 실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전화 인터뷰 전 나는 형편없는 영어 실력으로 예상 질문과 답을 꼼꼼히 적어놨다. 인터뷰가 시작됐고 질문에서 아는 단어가 들리면 준비했던 답을 읽어 내려갔다. 맞는 질문인지 아닌지 몰랐다. 일주일 뒤 NASA JPL 은 내게 "함께 일하자"고 연락해 왔다. 너무 기분이 좋았는데 곧바로 9·11 테러가 발생했다. 별 문제 없겠지, 생각했는데 곧바로 NASA JPL 에서 "예산이 취소돼 함께 일할 수 없게 됐다"고 하더라. 다른 직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3주 뒤 갑자기 JPL 에서 "다시 함께 일할 수 있게 됐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그렇게 NASA 에 합류했다. KAIST 를 졸업하고 얻은 첫 직장이고 여전히 이곳에서 연구하고 있다.

성층권 적외선 망원경으로 연구하고 있는 서영민 박사

▷서영민 박사=박사과정을 하는 동안 황소자리 분자운에서 별이 형성되는 과정을 집중 연구했다. 별 형성 연구 분야의 대가로 불리는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폴 골드스미스 박사다. 그는 JPL 과학자로서 미국의 FCRAO 망원경을 사용해 황소자리의 분자운과 별 형성 과정을 깊이 연구한 바 있다. 박사과정 중 그를 박사학위 지도 및 심사위원으로 초빙했고 박사과정 전반에 걸쳐 다양한 연구를 공동으로 수행했다. 박사학위 과정이 끝날 즈음 골드스미스 박사는 내게 NASA 박사후 연구과정 프로그램을 소개해줬다. 그와 함께 별의 형성과 성간 물질에 대해서 계속 연구하고 싶었기 때문에 2016년 JPL 에 박사후 연구원으로 오게 되었다. 오는 9월부터 JPL 연구과학자로 전환된다.

-NASA 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성기윤 박사=우선적으로 과학·기술·공학·수학( STEM ) 등의 어느 한 분야를 공부해 보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강한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또한 연구 결과물을 만들어 내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학생 개개인의 지도교수와 공동 연구를 수행해서 그 결과를 국내·국제학회에 발표하는 것을 권한다. 우리 과학자들은 학회에서 만나는 학생들을 향후 함께 연구할 수 있는 잠재적인 연구자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회에서 본인의 연구를 발표하고, 결과를 학술지 논문으로 내는 것이 본인이 속한 과학 학술 공동체에 자신을 소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희교 박사= NASA 가 관측한 거의 모든 지구과학 관측 자료가 대중에게 공개돼 있다. 비전문가 또한 이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웹사이트에 공개한다. NASA 웹사이트에는 고품질 데이터를 비롯해 물리, 화학, 지구과학을 배울 수 있는 자료가 무궁무진하게 많다. 또한 영어를 배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NASA JPL 은 항상 '팀'으로 일한다. 우리는 '함께' 일할 사람을 찾고 있다. NASA 는 연구성과도 중요하지만 '리더십'이나 '의사소통 능력' '창의력' 등도 높게 평가한다.

▷이춘섭 박사=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7년 동안 NASA 에서 일했다. 따라서 "한국에서 공부해도 NASA 에서 일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 교육을 받았느냐가 아니다. 화려한 영어 대화 능력도 아니다.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미국은 다른 나라의 인재에 대해 문이 열려 있다. 이는 미국이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된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미국 중국 인도 일본 등을 중심으로 우주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국도 이미 한국형 발사체와 그리고 달 탐사 계획 등으로 우주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으며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유능한 젊은이들이 NASA 보다 한국의 우주개발에 뛰어들었으면 좋겠다. 또한 큰 꿈을 꿨으면 좋겠다. 평생 이루지 못할 꿈을 말이다.

▷서영민 박사=과학자나 공학자를 꿈으로 삼기 이전에 왜 과학자나 공학자가 되고 싶은 지, 그리고 과학자와 공학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이 길을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좋은 과학적·공학적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지루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또 많은 실패를 경험할 것이다. 때로는 한 연구의 결과를 보기 위해 수년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과학자, 공학자로서 강한 동기부여가 있어야 연구 중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은 '글쓰기'다. 의아해할지 모르지만 논리적인 글쓰기는 과학과 수학에 대한 지식과 함께 과학자로서, 공학자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능력이다. 과학자로서 내가 하는 일의 약 50% 이상은 망원경을 사용해 연구 자료를 분석하는 일보다 과학 논문을 쓰고 연구 제안서를 쓰는 일이다. 만약 당신이 글쓰기를 싫어한다면, 과학자는 당신에게 적합한 직업이라고 볼 수 없을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당신이 존경하는 사람과 만나고 연락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혹여 연락한 사람들 중 일부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더라도 낙담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부분의 과학자와 공학자는 젊은이들의 열정과 적극적인 태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당신이 존경하는 과학자나 공학자에게 연락하고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는 것은 본인의 열정을 보여줄 뿐 아니라 훌륭한 과학자, 공학자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 된다.

< NASA 근무강도? 휴가는 6주, 많게는 3개월 쓰기도… 자율·창의 중시>

NASA 는 모든 선진 연구기관이 그렇듯 자율과 창의를 중요하게 여긴다. 실험실과 연구소는 24시간 개방돼 있지만 주당 40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한다. 현재 NASA 방문연구원인 김명종 한국과학기술연구원( KIST ) 책임연구원은 " NASA 의 일반적인 근무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지만 바쁠 때는 늦게까지 실험실이나 사무실에 남아서 일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며 "주당 40시간을 자신의 스케줄에 맞춰 자유롭게 활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2주당 하루 재택 근무가 가능하며 육아를 위한 출산 휴가도 가능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휴가도 한국의 연구기관보다 상당히 많다. 김명종 책임연구원은 "기본적으로 휴가는 6주지만 주말에 출장을 가면 휴가가 더 쌓이고 좋은 연구 성과가 있으면 상으로 받기도 한다"며 "1년에 3~4개월 휴가도 가능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휴가 없이 일하는 한국과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또한 휴가를 사용하지 못할 경우에는 필요한 사람에게 기부하는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김명종 책임연구원은 "연구원의 경우 정년은 무제한 이어서 연구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나이까지 일할 수 있다"며 "연금은 년당 1%의 연봉으로 적립되어 30년 근무 시 연봉의 30% 가 매년 나오고 국민연금과 더해지면 한화로 1억원 정도가 된다고 하니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현재 김명종 책임연구원은 KIST 첨단 우주 신소재관련 프로젝트를 NASA 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보론 나이트라이드 나노튜브( BNNT )'는 초고온에서도 견디고 방사선을 차폐할 수 있는 유연소재로 우주복 및 발사체, 우주선 부품 등의 활용도가 높은 소재다. BNNT 를 이용한 복합소재의 우주환경 적합성을 테스트하고 있다.

[원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