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나들이 제2편 - 판소리가 태어난 바로 그 곳. 고창 신재효 고택.

계통 없이 불려오던 광대소리를 통일하여 판소리 사설을 정리하신 조선의 셰익스피어 동리 신재효 선생의 고택에 다녀왔습니다. 신재효 고택 주변은 판소리 박물관, 국악당 등 문화 시설들과 고창 읍성을 둘러싼 공원 조성이 잘 되어 있어서 쉽고 편하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신재효 고택의 주변엔 탁 트인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우리의 소리가 널리 퍼질 것만 같습니다.

 고택 주변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으나 주변 부지보다 1M 정도 낮은 까닭에 안이 휑하니 들여 보입니다. 일전에 하병수 가옥은 안채가 빼꼼히 보여 들춰보는 듯한 재미가 있었는데 이렇게 정면이 바로 보이니 집이 발가벗은 것 같습니다. 

바자문 너머에 신재효 고택이 휑하니 보입니다.

담장이 있지만 부지 자체가 주변보다 낮은 가량에 안이 쉽게 들여다 보입니다.

  신재효 고택은 2고주 5량가로 초가집에서는 보기 드문 안정적인 가구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부재의 크기들도 일반 기와집에 비해 결코 작지 않습니다. 경주인(京主人,  고려·조선시대 중앙과 지방관청의 연락사무를 맡기기 위해 지방 수령이 서울에 파견한 향리나 아전 )  소임을 맡았고 관약방을 운영하던  부친이 있었고, 동리 선생 또한 총명하셔서  치산(治産)에 능해 가산을 넉넉히 했다고 합니다. 이런 배경을 보면 충분히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옛 사진과 비교해보면 쪽마루가 없어지고 굴뚝이 바뀌었네요.

지붕의 이엉은 계속 교체를 해줘야 하기 때문에 조금씩 모양새가 변했네요.

수로는 원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뭔가 자연스러워 보이진 않아요.

저 멀리로는 집 정면에서 동쪽 부분에 담장이 벽돌 담장이 있었군요.

우물 쪽도 많이 변했네요.

옛 사진의 고택은 일제 강점기 때 이미 원래의 모습을 꽤 상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좀 가까이 들여다볼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고택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툇마루와 대청이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대청을 열려있는 공간으로 생각해 와서 요즘 시대에는 대청을 활용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었는데 신재효 고택을 보고 이 생각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전퇴칸에 툇마루를 두고 대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문을 달아 놓음으로써 대청을 열려 있는 공간이자 닫힌 공간으로 충분히 활용 가능함을 봤기 때문입니다. 외부와 연결된 대청을 내부로 만듦으로써 적극적 공간으로 변화시킨 훌륭한 모습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대청도 충분히 현대의 거실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니 괜히 신납니다.

대청이 외부와 연결된 소극적 공간이 아닌 내부와 연결된 적극적인 공간으로 변할 수 있는 놀라운 구조입니다.

 이제 대청에서 살짝 뒤로 물러나서 집을 볼까요? 처음에 언급했지만 부재들의 크기가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런데 원주와 각주를 보니 흘림 기법이 적용되어 있네요. 기록화 보고서엔 원주에 배흘림이 돼있다고 하지만 도면을 봐도 그렇고 실제로 봐도 그렇고 배흘림이라기보다는 체감률이 적은 민흘림에 가깝더군요. 다만 각주의 경우에는 민흘림의 체감률이 상당히 커 보였습니다.

배흘림은 기둥 밑에서 1/3 지점을 가장 크게 하고 상부와 하부를 이보다 얇게 함으로써 기둥이 퍼져 보이는

착시현상을 막아줍니다. 민흘림도 배흘림과의 기능은 갖고 모양은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좁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둥을 살펴보고 있는데 기둥에 결구된 보아지와 단혀 그리고 퇴량의 보머리에 신기한 표시가 있습니다.

주역의 64괘 중 태극기에서도 볼 수 있는 건괘와 곤괘일까요? 

보아지에 표시된 저 표식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언제 새겨진 걸까요?

그나저나 보머리에 박혀있는 나사못은 뺐으면 좋겠네요. 

 기둥을 보고 나니 이제 방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방은 모두 온돌 방이고 부엌과 대청 사이에 2개, 그리고 대청 오른쪽에 건넌방이 있습니다. 이 방들의 크기를 보고 있으니 현대의 집들에 견주어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충분히 현대적으로 활용해도 손색없을 만큼의 크기인데 천장이 낮아서인지 좀 더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살문과 사롱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한지를 거쳐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방과 방 사이에 아자살 문이 크게 있는데 후퇴칸에도 세살문이 또 나있습니다. 문을 이렇게 칸마다 둔 이유는 뭘까요?

막혀 있었다면 답답해 보였을까요?

보고만 있어도 아늑하고 포근해 보이는 우리 집의 방입니다.

사진을 찍은 때가 2시경으로 대낮이었는데 참 밝죠?

우리 한옥은 유리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제일 밝은 집이었습니다.

햇빛을 내부로 끌어들일 수 있는 훌륭한 집입니다.

 건넌방에는 동리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 밀랍인형들이 있었는데 이건 그냥 뭔가 섬뜩해 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밀랍인형에 대한 공포감이 조금 있습니다. 어렸을 때 서대문 형무소에 견학 갔다가 고문 당하는 모습이 재현된 밀랍인형들을 보고 나서는 말이죠... 좌우간 건넌방에는 공간의 활용을 위해 기둥이 하나 없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건넌방 뒤쪽으로는 세살문과 사롱창이 있고 전면으로는 세살문이 칸마다 있어서 낮에는 환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운데 기둥을 넣지 않음으로써 공간의 활용도를 높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부엌을 한 번 볼까요? 부엌은 마지막 칸에 자리하고 있는데 굉장히 넓습니다. 이곳의 부엌 역시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병수 가옥에서도 그렇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언제나 즐거워 보입니다. : )

부엌이 상당히 크지요? 그런데 사롱창들이 사방에 있어서 겨울엔 정말 추웠을 거예요.

천장은 연등천장인데 이 부분도 보수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바깥에 연목들도 모두 새로 교체한 것으로 보이는데 느낌이.... 그냥...

대충 한 것 같아 보이는 이유는 왜 그런 건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서까래가 여유 없이 가득 차 있어서 이런 느낌을 받았나 봅니다.

옛 사진을 보니 서까래 사이에 여유가 운치 있어 보입니다.

역시 우리는 여백의 미를 즐길 줄 아는 민족인가 봅니다.

 각  칸들을 둘러보고 난 뒤에 주변을 어슬렁 거리면서 천천히 살펴 봅니다. 집 뒤쪽으로는 우물과 굴뚝이 보입니다. 굴뚝은 옛 사진과 비교해보니 보기 좋게 바꿔 놓았습니다. 굴뚝에 항아리를 뒤집어 얹어 놓아서 정감있게 보입니다.

이런 굴뚝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을거에요.  참 재미있는 굴뚝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우물은 말라 있어서 흔적만 남기고 있습니다.

집 뒤쪽으로는 연못이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연못을 메우고 고창 경찰서를 세웠다고 합니다.

원래 모습이 남아있었더라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요.

 그리고 조금 더 들어가면 복원했다는 연못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문화재청의 실수 중 하나라고 합니다. 

아마 뒷마당의 큰 연못을 잘못 알고 복원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 연못은 신재효 고택이 조선의 침체기가 오면서 일본인인 오까다에게 매각되었고, 

오까다가 조성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복원당시 문화재청은 잘 알아보지도 않고 

신재효 선생이 조성한 연못인 줄 알고 복원했다고 하네요... 에휴...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집의 느낌은 음... 사랑채가 담장에 둘러쌓여 답답해 보인다라는게 느껴지네요.

당연히 그러지 않을까요? 3000평이 넘는 부지에 300평 규모의 대저택을 비롯한 여려 채의 집이 있었던 곳인데 사랑채만 덩그러니 남고 주변에 담장을 쌓았으니까요. 너무 안타깝습니다.  사랑채라도 남은게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생각을 하는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퇴칸을 활용한 공간 구성에 큰 재미를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고택이었습니다.

*옛사진의 출처는 문화재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