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안녕하세요. 내스키마입니다.

예전이라는 말을 계속 쓰시고 있고, 같은 말도 반복하시고, 사족이 많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 왕년에 내가 말이야 하는 느낌이 강하죠.
그리고 느낌만 전달하면 되는 걸 정확하게 써보겠다고 하니 글의 템포가 죽습니다.
이미 작가로써 완결낸 글도 많던데...안타까워서 예시를 남깁니다.
[유즈맵 셋팅인데 셋팅이 안됨] 3화의 수정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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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아악!”

내 머릿속을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쑤셔대는 것 같다.
이러다가 정말 죽을 지도 모른다.
오랫만에 느껴보는 고통이지만 도대체 사라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어?

“끄으으윽!”
“한······! 대체······봐!”

이명과 함께 잡음 같은 말소리다.
뭐라고? 하나도 안들려. 당신 의사야?
제기랄, 누구든지 나한테 어떤 짓이라도 좋으니 어서 빨리 이 통증을 없애달라고!
이러다가 뇌가 박살이 날 지경이란 말이야!
원래 죽을 땐 이정도로 아프단 말인가?

“끄아아악!”

고통의 강도가 극한까지 치달았다.
내 머릿속은 마구 휘젓은 잡탕찌개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다.
앞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 정신이 희미해진다.
죽는....

#



“한스야! 한스야! 눈 좀 떠봐! 괜찮아? 도대체 왜 이러는 거니?”

무겁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나는 물에 젖은 이불처럼 축 가라앉아 있다.
정신은 몽롱하고, 옆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아득하니 먼 천둥소리 같았다.

지구상 에는 나에게 당당하게 소리지를 사람이 있을리가 없다.
그러나 불현듯 한 여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누나? 이자벨 누나라고?

그러니까 이자벨이란 사람이 내 친누나라고?
그러니까, 나에게 누나라는 사람이 이자벨?
뭔 개소리야!

정신이 멍하지만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녀를 볼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 당연한 듯한 친밀감이 저도 모르게 샘솟는다.
이자벨은 걱정하는 투였다.

“한스야! 괜찮니? 어디, 어디가 아픈 거니? 물 좀 줄까?”
“······, 어.”
“그래, 잠시만!”

목이 갈라져서 새는듯한 목소리였다.
내 목이 아닌 것 같아서 영 어색하네.
그녀는 허겁지겁 주방으로 뛰어갔다.
나는 누워있어서 그녀가 뭘 하는지는 못보았지만 물 긷는 소리와 장작이 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분히 생각해보자.
얼핏 보더라도 연약한 소녀가 내 누나고, 그녀는 허름하고 낡은 옷을 기워입은 행색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이냐.

“끄으응!”

두통이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다.
요상한 기억들이 각인처럼 선명했다.
이자벨...누나.
이데아, 계급사회, 기사, 몬스터, 마법. 그리고······.
이해도 가질 않고, 정체 모를 단어들의 나열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한다.
딱딱하게 말라있는 갈색 지붕과 서까래들은 뒤섞인 물감처럼 경계를 잃고 흐려졌다.
현기증이 미쳤네 진짜.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계속 누워있는 동안에 몸이 회복이 되긴 했다.
누나인 이사벨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는 일을 말렸지만 지금은 생계활동을 하러 마을로 나가있었다.
나는 그 틈에 아무도 없는 숲 속의 틈새로 기어들어갔다.
그 덕에 끔찍했던 두통과 어지러운 증상은 한결 가셨지만 난 지금 다른 일로 머리가 아팠다.

[0128! 23487 24398 128345839 2049590 235849······!]

“하, 진짜 미치겠네.”

한숨이 멈추질 않는다.
바위에 걸터앉아 곰곰히 생각했다.
정신이 들자마자 첫 상태창을 확인했을 때부터 시스템은 알 수 없는 숫자만 뱉어내고 있었다.
프롤브를 소환해보더라도 마찬가지다.

내 속에서 도도히 흐르는 마력이 느껴지는데다, 시스템이 이상하나마 멀쩡히 작동하고 있는 걸 보면 각성 시스템은 문제가 없다는 뜻일텐데.
그러나 마력을 꺼내서 발현을 하려고 하면 중간 과정에서 발동 중단이 되고 말았다.

이 세계.
아니 어쩌면 새로운 형태의 던전인가.
던전에 입장한 기억은 없다만.
또는 망상과도 같은 환생이나 빙의일지도 모른다.
한지원의 몸뚱이는 시공간의 틈으로 갈갈히 찢어져 사라져버리고,차원 패턴 마법진이 간신히 영혼만 살려 다른 세계의 몸에 정착했다는 가설이다.
그렇다면 죽었거나 죽어가는 소년의 몸을 차지했다는 얘기다.

“지랄 같은 소리네.”

생을 마감하려는 최후의 시도가 타인의 몸을 강탈하는 짓으로 귀결되다니.
결국의 난 13살 육체를 손에 넣었고 새로운 삶을 얻었다.
이건 내가 원하던 결말이 아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한지원 이새끼야, 너 차원 패턴 마법진 좌표는 무작위로 세팅했을텐데?
너도 모르게 살고 싶어서 좌표 잘못 입력한 거 아냐?
어디인지도 모를 시공간의 틈에서 찢겨 죽는다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이 나에게 있어서 이런 짓을 해버리고 만 건 아니냔 말야.

그리고 평행우주 가설은 폐기다.
그건 예전에 이미 겪어봤으니 의심하기에는 너무나 확고하다.
진짜 환생과 빙의 같은 건가?

죽으려는 노력이 결국엔 나를 이런 꼴로 만들었다.

그냥 다시금 자살을 한다면······,
안돼, 이건 아니다.
자살을 떠올릴 때마다 이제는 괜찮니? 나만 바라보고 걱정하는 이자벨의 얼굴이 아른거려서 도무지 할 수가 없다.
왜 이토록 죽기가 힘든 건가.

아내와 아들마저 사라진 내게 있어서 간만에 느끼는 가족애가 그렇게나 소중하단 말인가?
내 손자와 손녀들과 그 밑으로 증손녀와 증손자들을 비롯한 셀 수 없을 정도의 수십, 수백의 자손들이 있었다.
그들은 혈연이었지만 나와 이어져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이자벨의 눈동자와 내 눈동자가 마주쳤을 때 나와의 천륜과 인연이 자연스럽게 맺어져 있음을 알았다.
그것은 말로 전달하는 게 불가능한 기묘한 감각이었다.

이자벨 누나는 세계에서 오로지 한 명 뿐이었고, 나는 혈연을 버릴 수가 없다.
지금도 가슴 한구석에서 고함을 질러대고 있다. 절대 그래서 안돼라고 말이다.
참으로 처절하고 애절한 목소리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되는가.

“하아-, 진짜 인생 잣 같네.”

13살 소년 한스.
또 다른 나의 이름이자 신분이며 관계다.
깊은 한숨이 떠나질 않는다.

그나저나 이놈의 시스템은 왜 이럴까.
세계별로 시스템 번역기가 따로 필요라도 하단 말이냐.
에라이, 빌어먹을, 필요할 때 왜 정작 없냐고.

“똑바로 나와! 상태창! 상태창!”

[0128! 23487 24398 128345839 2049590 235849······!]

묵묵부답이네.

“밥 잘 챙겨 먹어.”
“응.”
“놀러 나가면 해 떨어지기 전에 꼭 들어오고.”
“응.”
“방벽 근처는 얼씬도 말고.”
“알았다니까 자꾸 그러네. 얼른 나가보셔.”
“무슨 일 있으면······,”
“알아, 아랫집에 알리거나 여관으로 찾아갈 것. 늦었어. 얼른 가봐.”
“그래.”

매일 새벽에 이자벨은 똑같은 잔소리를 한다.
그래서 나도 똑같이 대답했다.

이자벨은 15살이었고 마을에서 제일 큰 여관에서 홀 서빙을 맡고 있었다.
인간이 사는 세계는 이루는 문명의 수준과 가치관은 그리 차이가 없는 듯 하다.
예전 일이다.
또 다른 세상의 와이프는 어린아이도 세상에 나가면 조금이나마 나은 내일을 위해 궁리하고 깨우친다는 말을 나에게 해주었다.
누구에게든 물려받은 것과 스스로 해나가는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병신 같은 한스 녀석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아동노동이 금지된 시대도 아닌데 집에서 한가하게 기다리기만 했던 건가.
나는 최근에 한스가 나름 뭔가를 해보려는 시도를 발견했다.

“한스야~ 노올자~”
“아, 새끼.”

울프라는 녀석이다.
한스와 제일 친한 친구이자 마을의 또래였다.
이곳은 어떤 환경과 기후이며 또 어떤 문화권인지, 특정한 정치 체제를 구성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애초에 그정도 지식은 고급 지식인들이 독점하는 시대인 듯 하니까.
13살의 서민 한스가 알 도리는 없다. 아는 것은 그저 태어나 일을 하며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며 산다.
삶이란 원체 단순하다.

내가 아픈 이후로 알아낸 것은 우르남 마을에 내가 살고있다는 점이다.
거대한 우랄산맥이 마을의 북동쪽에 있었고, 우르남의 주민들은 백 쌍의 부부와 다수의 아이들이었다.
조금 더 파고들어가자면 신분과 계급이 혈통을 따라 이어지는 신분제 사회다.

영주들은 세금을 걷을 권리과 계승권을 갖고 있었고, 지역 방어와 재난 사태를 책임지는 의무를 지녔다.
귀족과 기사, 마법사들이 이 시대의 지배 계급인 셈이다.

그리고 몬스터들은 아주 무서운 생명체들이고, 토끼나 너구리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는 것.
아랫집 아델 자매가 예쁘기 소문났고, 마을여관 주인인 용베르 씨의 삼형제 중 첫째인 디카프가 일자리를 찾아 용병단 가입을 위해 칼을 사서 마을을 떠났다는 것.
그리고 머지않아 큰 돈을 집으로 보내왔다는 것, 그 집 동생들이 소문내는 바람에 마을 소년들은 다카르를 동경하고 있다는 사실 등등.
온갖 소문들과 정보들이 내 머릿속에 가득했다. 한스 녀석의 추억도 이 시대 소년의 평균적인 쪽에 가깝고.

뭐, 이해는 한다.
말을 하거나 그림을 보는 방법이 교육의 전부인 이 땅에 굶어 죽지 않으려면 소년들의 장래는 농부이며, 소녀들은 농부의 아내가 되는 일 밖에는 없다.
가끔 기술을 가진 집안의 자식들은 기술을 이어받아 직업을 대대로 이어나간다.

한스는 그래도 사냥꾼이 되고 싶어했다.
개척촌을 찾아온 상인들에게 가죽을 팔아 대단한 수입을 올리며 바람과도 같이 움직이는 신비한 사람 정도로 인식한 모양이다.
사냥꾼을 흉내 내어 자그만 동물이라도 잡는 날이면 이자벨이 그렇게도 기뻐했으니.
아마 그녀는 고깃국을 먹을 수 있어서라고 생각한다만 좋은 게 좋은 거지.

소년의 시선으로 본 세상에는 한계가 있었다.
용병이 되어 마을을 떠난 디카프에 대한 동경심이 기억 속에 있었다.
용병=돈 많이범. 이정도 공식이다.
하등에도 쓸모없는 착각이다.

“한스야~ 노올자~”
“······.”

울프 시바 새끼.
그래. 놀아주지.
이백하고도 수십년의 구력을 어린 핏덩이와 한테 보여줄 시간이다.

“방벽으로 가자고?”
“어.”
“너희 누나가 알면······,”
“말을 안 하면 돼.”
“근처에 자경단이······,”
“들키지 않으면 돼. 어른들이 가지 말라는 게 왜 그렇겠어? 자기들만 좋은 거 하고 있다니까. 나도 살짝만 보고 올거야.”
“그래도······.”

울프의 호기심과 어린 아이 특유의 치기를 건드려서 꾀었다.
아이에게 있어서 경고와 금기는 예로부터 이거 해보시오라는 표시에 불과하다.
그리고 잔뜩 혼나면서 배우는 것이다.
난 누나의 말을 잘듣는 착한 아이여야 했다.
방벽 구경을 걸렸을 경우에는 울프가 회피용이자 바람막이가 되어줄 거다.
친구가 우겨서 마지못해 따라갔다고 하면 대충 넘어가겠지.

개척마을의 생활은 거의 일상적으로 반복된다..
터를 잡은 다음, 숲을 불태워 화전을 만든다.
봄부터 농사를 짓고, 여유가 되면 숲에서 자라나는 버섯과 약용 풀을 말려 비축한다.
가을 쯤되면 수확기가 끝나 축제를 벌이고, 겨울을 앞둔 산에 사는 짐승은 겨울나기를 대비해 통통하게 살이 올라있으므로 사냥따위를 해 고기는 소금에 절이고,
가죽은 옷을 해입거나 물건을 찾아헤메는 가죽 상인에게 모피를 팔고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한다.

하지만 이곳은 조금 상황이 다르게 느껴진다.
거대한 우랄산맥의 입구였고, 개척마을치고는 군사적인 느낌이 너무 강한 방벽이 이곳엔 있다.
나무와 진흙을 발라 만든 방어시설은 전투가 잦다는 의미다.
돌로 쌓은 성채? 그런 건 인구 많은 대도시나 중앙 정부가 강력한 나라에서나 건설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중국의 만리장성이 있지.

어쨌든 우르남은 몬스터 무리가 겨울이 되면 먹이를 찾아 인간의 구역으로 남하하는 통과 지점이다.
인간들은 방벽 위에 올라타 괴물들을 죽이고 또 죽인다.
그리고 죽은 지 얼마 안 된 생명체라면 인간은 알들살뜰하게 발라 써먹는다.
괴물을 해체한 부산물이 방벽과 방벽에 딸린 마을에 흔하다는 말이고, 특수한 재료들은 마을 상업 활동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개척주민들은 식량을 필요 이상으로 저축해둔다.
 
방벽을 유지하는 자경단과 병사들, 어수룩한 용병들이 뿌려대는 목숨값으로 숙박, 편의시설이 잔뜩 있었는데 그쪽에서 소모하는 식량과 술, 장비, 소포품의 양이 엄청난 탓이다.. 
나는 한스의 행동에서 그 생각을 읽었다.  소년의 어설픈 사냥꾼 흉내는 짐승잡이를 통한 능력 증명이다.
즉, 자경단이나 용병이 될 수 있는 자질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용병과 병사로 직종 변경하는데 사냥꾼만큼 적절한 직업이 없었다.
숲 속을 오랫동안 돌아다닐 수 있는 체력과 험지 주파력, 위험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뛰어난 감각과 상대방을 추적하고 끈질기게 따라붙는 기술,
심지어 숲속에서의 생존 요령과 간단한 함정 설치술까지 포함하면 전투 요원은 몰라도 정찰 요원으로서는 최적이다.
한스가 아는 건 대충 사냥꾼이 되면 용병 되기 쉽겠지에 가까웠지만.

" 뭐하는 거야? 앞장서 울프! 방벽으로 가자니까. 네가 먼저 놀자고 했으니 길을 알 거 아냐."

울프는 내 말에도 안절부절대며 망설였다.
뭐, 방벽은 그렇게 멀리있지 않다.
그러니 녀석이 움직이던 말던 가야지.
내가 앞장서고 녀석이 마지못해 따라왔다. 혼자 있긴 싫은 모양이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부모님이 가지 말랬단 말야."

"닥쳐, 울프. 난 방벽을 봐야겠으니까."

우리집을 벗어나면 마을 외각을 두르는 오솔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가면 산 위로 올라가게 된다.
개척 후, 지속적으로 벌목작업으로 마을 주변부는 탁 트여있는 분지처럼 보였고, 산 중턱쯔음에 늘어선 건물 지붕들이 햇빛을 받아 불그스름한 빛깔을 띄었다.
마을을 관리, 보수하는 마법사들이 지붕 위에 올라 어느새 날아온 씨앗과 줄기덩이들을 걷어내고 있었다.
그대로 가만히 두면 비바람과 햇빛을 쬔 덩굴들과 나무가 자라나 집이 무너지기 때문이었다. 저 사람들은 마법사긴 하지만 하급이라고 들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9급 공무원쯤?

한참을 걸어올라가니 저 멀리 주변의 나무와 확 다른 색의 나무 방벽이 보인다.
중간에 감시탑과 보루들이 늘어서 있고, 방벽 위의 용병이나 자경단들 몇몇이 주변을 살피며 경계를 서고 있었다.
방벽 아래로는 건장한 남자들이 바쁘게 뛰어다니며 물자들을 나르고 있었다.
울프가 겁먹은 듯 중얼거렸다.

“하, 한스야. 더 이상 가면 진짜 안 돼.”

그 말을 무시하고 나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경비들 사이에서 나보다 두배쯤 큰 두 명이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던가 말던가.
난 손으로 방벽을 어루만졌다.
따스한 봄날임에도 나무로 만든 방벽은 차가웠다. 물론 방어시설이 따뜻할리는 없다.
하지만 내 짐작은 맞았다. 마을 주민들 일반적인 나무 방벽이 아니다. 방벽은 은은한 마력의 기운을 풍겼다.
마법적인 진이 체계적으로 새겨져있다.
이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방벽은 실은 전진용 멀티였다. 와드와 포탑의 기능이 붙어있다고 보면 된다.
이 방벽의 건설 목적은 처음엔 방어였다만 지금은 대규모 군대가 안전하게 이동하기 위한 교통로 확보를 위해서였다.
그러니 나무 방벽에 고급스러운 마법을 인챈트 해놓은 것이다. 지붕 위에 있던 마법사들도 은근히 의심이 간다.
진짜 지붕 위의 나무 덩굴을 하급이라지만 마법사가 치워야만 하는 이유가 뭘까? 한국이 북한에 대비하기 위한 대공포대와 같은 역할이 아닐까?
경비병들이 소리쳤다.

“이 녀석들! 여기가 어디라고! 얼른 내려가지 못하겠어? 어린 아이가 올데가 아냐!”

자경단 중 젊은 쪽은 허겁지겁 뛰어와서는 험악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이건 어떤 마법이지?”
“뭐?”
“어떤 종류의 방어마법이 인챈트 되어 있냐고?”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지금 이 상황이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들의 입이 점점 더 벌어진다. 늙은 쪽이 말했다.

“하- 참, 나. 어린놈의 새끼가 잘못을 싹싹 빌지는 못할망정 질문을 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말버릇하고는.”

젊은 자경단원이 앞으로 나서서 나를 노려봤다.

“······, 이놈! 너 집이 어디야! 내 이 녀석을!”

나한테는 울프나 이놈이나 핏덩이였다.
그리고 울프 녀석이 뒤에서 자꾸만 날 끌어당긴다.

"그만하고 얼른 내려가자, 응? 부모님이 알면 가만히 있지 않으실거야. 죄송해요, 얘가 아파서 정신이 없었나봐요. 빨리!"

그래, 울프가 울기 전에 내려가야겠다.
원하던 건 확인을 했으니까.

자꾸만 호구조사를 하려는 놈을 무시하고 돌아섰다.
그들은 알았으면 꺼져라고 말했다.
그런데 또 지나칠 수 없는 게 있다.

의외의 수확인 걸.
방벽 외에도 하나 더 확인했다.
기사란 존재가 그냥 어린 아이의 공상 속에나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란 말이지.
실제로 그 몸에 품은 마력이 꽤 된다.

국경 인근에서 병사 노릇을 한다면 유능한 군인이라는 소리고, 실전으로 거쳐 단련되기 마련이다.
기석이나 한득이 형님과 비교할 레벨조차 안되지만 입문 수련자쯤은 되려나?

울프는 울먹이며 말했다.

“어, 어쩌려고 그래! 너 진짜 며칠 아프더니 성격이 많이 변했다? 너희 누나가 너 이러는 거 알면······.”
“닥쳐, 울프. 나도 아니까.”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도 귀찮아서 그 입을 막아버렸다.
이제는 이자벨의 얘기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예민해진다.
나이를 먹어도 사람의 마음이란 대체 종잡을 수 없다.
울프도 짜증나지만 좋은 녀석으로 느껴진다. 이건 한스의 마음일까 한지원의 마음일까?
그래도 울프, 넌 말이 너무 많아.

‘인챈트 마법을 확인했고, 기사까지는 아니겠지만 경비원 중에 노련한 쪽은 마력사용자야.
뭐, 아주 미비한 탓에 놓칠 뻔 했지. 그래도 한스가 가지고 있던 지식이 마냥 허황된 것은 아니란 말인데······,’

나도 모르게 빨리 걸었나. 울프가 저 뒤에 있었다.

“헉헉, 한스야 같이 가~! 왜 이렇게 걸음이 빨라?”

벌써 집 근처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째 가뿐하다. 기분 좋은 열기가 희미하게 전신에 감돈다.
한스는 사냥꾼 지망생이었지만 근래에는 병들고 말라비틀어진 몸뚱이였다.
험악한 산지를 오르락내리락하고도 평온한 것은 말이 안된다.
울프도 활기찬 어린 아이인만큼 회복력이 남다를거다. 그리고 한스는 울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건강했던 쪽일텐데.

며칠 사이에 내 몸이 어떻게 된 건가.
마침 내 옆에 도착한 울프가 마을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후우~ 어? 베르토 아저씨다!”

기억 속에 몇 없던 인물이다.
우르남 마을 중앙에는 사람들이 오가는 광장이 있었고, 정육점을 차린 아저씨가...베르토였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좀 다르다.
그는 친절한 정육점 주인이 아니다.

걸어오는 자세에서 무게중심이 단단했다.
부드럽게 율동하는 육체가 균형적인 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무릎은 살짝 굽혔고, 걸을 때 발바닥 뒤꿈치를 먼저 딛지 않는다.

무게중심을 앞쪽에, 양팔은 작은 원형 공간에만 머문다.
보폭은 어깨 넓이만큼 작게 그리고 드러난 이마가 올곧으며 시선은 강렬했다.

저것이 바로 싸우는 자의 걷는 법이다. 헌터로군.

기석이가 가르쳤던 걷는 법 중에 하나다. 나는 무시받고 갈굼당하면서 배웠지.
물론, 숨 쉬는 법, 뛰는 법, 피하는 법, 칼 쓰는 법 등등 투사가 익혀야 할 기본기였다.
내가 기본기가 정말 안됐다고 기석이에게 얼마나 무시를 당했는지···이가 부득부득 갈린다.
그리고 저 베르토란 사람, 아까 전의 군인보다 마력량이 월등하다.
물론 내 기준에서는 도토리 키 재기지만. 아까 그 사람이 이쑤시개라면 베르토는 굵은 바늘 다발쯤은 된다.
베르토는 웃으며 말했다.

“뭘 그리 빤히 보지? 한스 아프다고 들었는데 몸은 괜찮으냐?”

뭐라고 받아야 되지? 난 나보다 높은 사람과의 대화하는 법을 잊어먹은지 오래였다.
예의를 차릴 상황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줄어들었는데 이제는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한스는 베르토를 어떻게 대했던가?

하지만 굳이 수백살 어린 어른이한테 존대를 해야할까?
아니다. 기왕지사 새로운 관계를 맺었잖아.
한지원의 과거에만 집착한다면 현재를 살지 않는 것과 같다.

다시 삶을 사는 사람은 한지원이 아니다.
더군다나 베르토는 헌터지만 친절한 사람이다.
하지만 꺼낸 말이 어색하다.

“어, 네. 이젠 괜찮아······, 졌어요.”
“······. 그래? 그런데 한스 너는 못본 새에 많이 바뀐 것 같구나.”

한지원이 한스가 되었으니 말이지요.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쑥 내려갔다.
베르토는 꾸러미를 내게 주었다.

“됐다. 이걸 푹 고아서 먹으면 기운이 나겠지. 팔기엔 어려운 잡고기지만 이자벨과 너에게는 더없이 필요하니까.
어차피 버려야하는 것이라 나에게는 필요가 없단다. 그리고 더 필요하다면 가끔씩 와도 좋다. 네가 내 동생 같으니까 말이야. 한스...알겠지?”

베르토는 그렇게 말하며 길을 따라 사라져버렸다. 들킬까 두려워 도망친 듯한 모양새다.
말은 그렇게 해도 꾸러미 안에 있는 느낌은 싱싱하고 큼지막한 뒷다리살인뎁쇼?
이게 잡고기라면 삼겹살로 국 끓여먹겠다 이 양반아.

나도 눈치가 없지는 않다.

“······.”

한스가 순진했군.
베르토가 한스에게 더더욱 친절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 늙은이에게도 꿍꿍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친구구만. 베르토가 음흉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그래도 이자벨 누나는 너한테 못준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더라도 안돼!
그리고 울프는 고기를 보면서 침을 흘리는 것이었다.

"와아, 맛있겠다."

"오늘 저녁은 돼지다리 통구이다. 울프, 네가 나랑 같이 따라가준 친구비야."

님의 주신 의견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내용을 토대로 현 상황에 맞게 수정을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문의 댓글과 관심 대-단히 감사합니다.

제가봤을때는  완결까지 200명의 유료독자를 유치한 작가라면..  이미  상위 1퍼 안에는 드는 분일텐데.. 
유료 연재 시작점에서 1600명이나 붙었다는거는  대단한 건데..    왜  빠른시점에서  반으로 줄었을까 아마 작가님이 잘 알고 계실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