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환장 통수 선협전>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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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우 주관적인 감상임을 밝혀둡니다.

탁목조 작가님이 쓴 국산선협물입니다.

이능이 존재하는 현대지구에서 한 청년이 선협세계로 날려가게 되고, 

꽤나 괜찮은 치트 하나 받아서 열심히 도 닦고 불로불사를 향해 정진하는 내용임.

선협물 분위기는 꽤 잘 잡아낸 편입니다. 

크게 짝퉁 느낌도 안 나고 괜찮게 묘사한 편...

하지만 솔직히 재밌냐 물어보면 미묘한 작품입니다.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제일 큰 건 

주인공의 매력이 부족하다는 점 아닌가 싶네요.

현대의 얍삽청년은 선계로 와서 수선자들과 부대끼며 

닳고 닳은 나머지, 아예 그들과 동화되어 버립니다.

작품 제목처럼 통수가 일상화된 약육강식의 세계인데, 

주인공은 그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통수 마스터로 변모해 갑니다.

도둑질은 안 잡히면 그만이라고 여기고, 

살인은 밥 먹듯이 하며,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해도 눈도 깜짝 하지 않고, 

맨날 '대도는 무정하다', '수선은 역천이다' 운운 하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니면서 

오로지 자신의 이득만을 원칙으로 움직입니다. 

그게 나쁘다, 그릇되었다 그런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고요.

인물에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중국 3류 사이다 선협물에 나오는 싸가지없는 주인공들보다 더 마음에 안 들어요.

이기적인 캐릭터도 이입 잘 되면 상관이 없는데 이놈은 그냥 냉정한 얍삽이일 뿐...

인계의 최강자들이 영계로 비승하기 위해서 

수많은 무고한 이들을 잡아들여 인간제물로 써먹는데 

주인공은 '나랑 상관없는 일임', '당장은 많이 죽겠지만 결과적으론 이득일 거야' 이런 소리나 하고.

일제강점기에 피해가 컸지만 결국엔 우리 근대화에 큰 기여를 했다는 개소리랑 뭐가 다른지.ㅜㅜ

학사신공, 일념영원, 아욕봉천, 선역, 기타등등 중국 선협물 보면 

주인공이 선인은 아닐지라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면모는 갖추고 있습니다.

가장 냉혹한 선역의 이한제조차도 복수를 끝낸 후엔 인간미가 종종 느껴지고, 

학사신공의 한립도 사정이 허락하면 선행도 하고 인연을 맺은 이의 뒤도 보살펴주는데 

<대환장 통수 선협전>의 주인공은 그런 거 1도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양민학살을 하지 않으니 남들보다는 내가 낫다 이런 생각을 가진 놈이라...

초반에 진입장벽도 좀 있는 편입니다. (저만 느낀 걸 수도 있지만...)

주인공에게 '루야'라는 인공지능 비슷한 게 붙어 다니는데 

초반에 이 루야와의 만담이 정말, 정말정말 많습니다. 

재치넘치고 유머러스하면 피식잼으로라도 봐줄 텐데 

아무런 알맹이도 없는 잡담을 티키타카식으로 끝없이 주고받으니 지면낭비가 정말 극심해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루야'라는 캐릭터의 존재가치가 있나 의심이 들 정도... 

그나마 3권 쯤 되면 슬슬 무가치한 만담 비율이 줄어들어서 참아줄 만 합니다만.

또한 평면적이기 그지 없는 인물, 전개도 아쉬운 점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그냥 서로가 서로의 뒤통수를 노리지만 

결국 주인공이 막타를 치면서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는 구조를 끝도 없이 반복합니다.

다른 형태의 에피소드가 아예 전무하다시피 해요.

보물이 있음 - 수사들이 모임 - 서로 뒤통수침 - 주인공이 구경하다 막타침 - 개이득

당연히 등장인물 캐스팅도 모조리 통수맨들인데 이름/성별/말투만 다르지 본성이 다 똑같음...

언제 배신할까? 누구랑 팀먹고 통수를 쳐야 잘 쳤다고 소문이 날까? 이런 고민 하는 놈들요.

국내독자들 중에 선협 싫어하는 분들 이야기 보면 

'맨날 통수만 치고 악인들 밖에 없어서 재미없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 작품들에는 사실 선인들도 있고 신의를 지키는 이들도 있어요. 소수일 뿐이지.

근데 <대환장 통수 선협전>에는 정말로 99% 통수맨들 뿐입니다.ㅎㅎㅎ

천편일률적이라는 거예요. 너무 전개가 투명하고 예측가능하다는 거죠.

통수맨들이 나와서 통수치는 내용으로 열 권을 채웠으니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죠.

제목 지은 것도 그렇고 내용을 봐도 그렇고 

선협물에서 흔한 '통수치기'를 글의 중심 기둥으로 삼은 모양새인데 

개인적으로는 그 시도가 성공적으로 보이진 않네요.

그 탓에 전개는 배신과 통수 일변도가 되었고, 

등장인물은 공장에서 찍어낸 것 마냥 통수맨들 뿐이고, 

주인공은 그런 세상에 너무 동화된 탓에 

인간적인 매력이 바닥을 뚫고 내려가고 있으니까요.

저로서는 참 아쉬운 일입니다.

보기드문 국산선협물이다보니 나름 기대를 하고 읽은 작품이라서요.

어째서 '통수치기'라는 썩 긍정적이지 못한 컨셉을 굳이 선택해서 파고든 걸까, 

차라리 무난한 선협물을 목표로 썼다면 훨씬 더 나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꽤 많이 읽긴 했는데 계속 볼 것 같진 않네요.ㅜㅜ

<대환장 통수 선협전>은 여기서 하차합니다만 

이번 작품에서 쌓은 내공으로 다음엔 더 나은 글 써주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