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헨릭 입센(Henrik Ibsen).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릭 입센(1828~1906)의 대표작인 희곡 작품이다.

 크리스마스 전날부터 크리스마스 다음날 아침까지 단 3일간에 벌어지는, 노라의 평범한 일상과 갑자기 나타난 대부업자이자 은행원, 변호사인 크로그스타드로 인해 빚어지는 복잡미묘한 갈등이 감상을 배제한 채 사실주의적으로 묘사돼 있다.

 이 희곡은 1879년에 발표된 것인데 19세기 후반의 여성의 가정과 사회에서의 위치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환기시켜 놓았다.

 결혼한 지 8년이 되어 아이 셋을 낳아 키우고 있는 미모의 노라는 은행장으로 승진한 남편 헬머의 표현대로 사랑스러운 종달새, 다람쥐로 남편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다.

 그런데 남편을 여의고 홀로 살고 있는, 노라의 연상의 친구인 린드 부인이 노라의 남편이 은행장으로 승진한 것을 알고 그녀의 집에 찾아와서 취직을 부탁한다.

 노라의 부탁을 받은 헬머는 린드 부인의 구직 요청을 기꺼이 승 낙하 고 자신의 오래 된 친구인 크로그스타드가 은행 업무에서 다른 사람의 이름을 위조하여 부정한 행동을 하고는 교묘한 술책을 써서 책임을 회피한 것을 이유로 그를 해고하고 그 자리에 대신 린드 부인을 앉히기로 한다.

 해고가 예고되자 크로그스타드는 노라를 찾아와서 노라의 남편 헬머가 중병이 들어서 이탈리아로 요양을 가게 됐을 때 노라가 친정 아버지의 보증을 받아서 크로그스타드에게 큰 돈을 빌려서 요양비를 마련하여 지금까지 그 돈을 조금씩 갚아 나가고 있는데 그 당시에 중병이 들어 있는 아버지에게 남편의 병 구완을 위해 빚 보증을 서 달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어서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하여 보증서류를 제출했으며 그 위조된 서명이 부친의 사망일로부터 3일이 지난 날로 기재됐음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남편 헬머와 그녀의 가정의 명예가 실추될 테니 그녀가 영향력을 행사해서 자신이 해고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부탁한다.

 노라는 남편에게 크로그스타드를 해고하지 말 것을 간청하지만 헬머는 그의 부정한 행위는 묵과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오히려 좀 더 일찍 그에게 해고 통지서를 보낸다.

 크로그스타드는 노라를 다시 찾아와서 남편만이 열쇠를 갖고 있는 편지함에 편지를 집어넣고 가는데 노라는 크로그스타드의 공갈과 자신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를 더 빨리 해고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됐을 때에 남편이 뇌까린 명예지상주의적인 발언에서 크고 무거운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게 되어 자살까지 고려하며 깊이 고민하다가 린드 부인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린드 부인은 처녀였을 적에 크로그스타드와 사귀다가 그가 장래성이 없어 보여서 헤어진 적이 있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그를 만나서 독신으로 동병상련인 처지인 그와 결합할 것을 제안하며 그에게 노라를 위협하는 것을 그만 두라고 설득한다.

 노라는 하루 동안 남편에게 편지함을 열어보지 못하게 하고 크리스마스의 가장무도회에서 열광적인 춤을 추고 남편과 함께 집에 돌아오는데 편지함에서 크로그스타드의 편지를 꺼내 읽은 남편은 그녀의 법적 무지로 빚어진 실수로 인해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거나 이를 막기 위해 꼼짝없이 크로그스타드의 위협에 시달려 살아야 할 신세를 한탄하며 그녀를 비난한다.

 그러다가 린드 부인의 설득으로 크로그스타드가 자신의 공갈 행위를 후회하며 노라의 보증서를 보내오자 헬머는 태도를 급변시켜서 그녀에 대한 비난과 원망을 철회하고 다시 원래의 관계를 회복하자고 그녀에게 말한다.

 노라는 이 일련의 사건을 통해 자신의 아버지나 8년간 결혼해서 세 자식을 낳고 키우며 함께 살고 있는 자신의 남편이나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한 게 아니라 단지 그녀와 사랑에 빠져 있는 게 행복하다고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결혼 전에 아버지의 집에 있었을 때에는 아버지가 그녀를 좋아하게 하기 위해 아버지와 전적으로 같은 의견을 갖게 됐었는데 결혼 후에는 남편과 똑같은 취미를 갖거나 갖는 척하여 남편이 좋아하는 인형의 구실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오늘에야 비로소 자각했다고 말하며 그래서 자신은 행복하지 않았고 이제 짐을 꾸려서 그를 떠나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일단 하룻밤은 린드 부인의 집에서 묵고 날이 밝으면 친정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못을 박는다.

 그녀는 남편이 크로그스타드의 편지를 읽고 그에게서 받은 아내의 고통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실추될 명예와 크로그스타드에게 속박될 자신의 곤경만을 생각하며 푸념을 늘어 놓는 것을 듣고는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노라는 수동적으로 헌신하고 순응하며 살아온 아내로서의 삶에 크나큰 회의를 느껴 남편과 세 자식, 집을 버리고 떠나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이다.

 오늘날에는 흔하디 흔한 이혼 사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만 130년 전의 시대에서는 가히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줄거리라고 아니 할 수 없겠다. 한마디로 급진적인 페미니즘으로 받아들여졌으리라.

 크로그스타드의 공갈과 헬머의 지독한 위선에 자살까지 생각하다가 그의 편지를 읽고 드러나는 남편의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 위선적이며 비겁한 심성에 환멸을 느끼는 노라의 결단은 용감하고 긍지에 찬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괴리감이 크게 드는 게 사실이다.

 지금도 이혼녀는 편견의 눈으로 보는 시선이 지배적인데 하물며 그 당시에는 어떤 시선과 처우를 감내해야 했을까.

 현실을 직시하면, 노라의 용기와 자존심에 열광적인 지지의 박수를 쳐 줄 수만은 없는 장애물들이 엄연히 현실의 도처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그녀의 감성적인 결단을 옹호할 수만은 없다고 본다.

 차라리 아직 사랑이 채 식지 않은 남편에게 자신이 바라는 자아의 회복과 사랑을 요구해서 서로 참고 이해하며 가정을 지키는 것이 부부나 자식, 지인들에게도 바람직하고 현실적인 처신일 것이다.

 극의 결말 부분에서도 완전한 이별보다는 서로를 충분히 이해한 후의 실낱 같은 재결합의 희망을 암시하고는 있지만 그 실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해 보인다.

 아무튼 인형의 집을 떠나는 인형이 앞으로 수많은 나날을 어떻게 인간답게 살아갈지 걱정이 되게 만드는 결말이다. 뜻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사건을 계기로 자아에 대한 자각은 커지지만 그에 반비례해서 현실에 대한 자각은 아예 사라지는 게 아닌가 우려스러운 것이다.

 현대에는 오히려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이용해서 팜므 파탈로서 악녀의 이미지를 갖고 남자들을 이용하며 살아가는 여자들도 많은데 남편을 위해 헌신하다가 요식적인 실수로 인해 가부장적인 명예의식과 위선에 가득 찬 남편의 심성을 알게 되고 자살까지 심각하게 고려하게 되는 엄청난 부담감을 가지게 되고 결국 남편의 자기중심적이고 사랑이 배제된 언사에 배산감을 느껴 영원한 이별을 선택하게 되는 노라의 번민과 갈등은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시대적 괴리감은 엄청나게 크지만 19세기 후반의 고전 희곡을 읽고 남성에 대응하는 여성의 입장과 가치에 대해 한번 더 숙고해 보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고 남성과 여성은 어쩔 수 없이 다를 수밖에 없음을 새삼스럽게 재인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