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알베르 카뮈와 그의 딸 캐트린.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서 어린 소년 시절에 무단가출한 얀은 머나먼 타향에서 성공하여 돈을 많이 벌어서 결혼까지 하여 가출한 지 20년 만에 아내인 마리아를 데리고 인적이 뜸한 곳에서 조그만 여인숙을 경영하고 있는 늙은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만나러 고향에 찾아온다.

 얀은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놀라게 해 주고 행복감을 더 크게 느끼게 해 주려고 자신이 20년 전에 집을 떠난 아들이자 오빠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손님으로 이 여인숙에 투숙한다.

 그는 아내와 어머니, 누이동생과 함께 살기 위해 전재산을 다 가지고 고향에 찾아온 것인데 아내 마리아는 자신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대면하자마자 밝히지 않으려는 남편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길한 느낌까지 들어서 이를 말리지만 5년 전에 결혼한 남편의 엉뚱한 고집을 꺾지 못한다.

 어머니와 누이동생 마르타는 어른이 된 얀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가 돈을 많이 가지고 온 것을 알자 전에도 부자인 투숙객에게 몇 번 그랬었던 것처럼 수면제를 먹여서 재우고 가지고 온 돈을 모두 빼앗고는 근처의 강물에 던져서 익사시키려고 한다.

 이미 노쇠해진 어머니는 양심상 살인이 꺼려지고 또한 무의식적인 본능에 이끌려 이번만은 살인을 하지 말자고 딸에게 간청하지만 많은 돈을 얻어서 행복해지려는 현실적인 욕구가 강한 마르타는 냉정하고 매몰차게 어머니의 간청을 뿌리치고 만다.

 얀과 누이동생 간에 삐꺽거리며 전개되는 대화에는 얀이 타향에서 벌어 온 많은 돈으로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행복하게 해 주려고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믿음직한 핏줄이라는 사실과 본의는 아니지만 모녀가 행복해지기 위해 돈 많은 당신의 돈을 빼앗고 죽이겠다는 살의가 다분히 암시돼 있는데 두 사람은 불행하게도 서로 상대방의 말에 숨겨진 의미를 눈치채지 못한다.

 마르타는 어머니가 이 사람을 그냥 보내 주자고 여러 번 애원하지만 완강하게 거절하고 차에 수면제를 타서 먹여 깊이 잠재우고 어머니와 함께 세상 모르게 곯아떨어진 남자의 몸을 들고 나가서 근처의 강물에 던진다.

 일이 끝난 후 여인숙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오늘 죽음을 당한 투숙객의 호주머니를 뒤지다가 침대 뒤로 떨어져서 보지 못했었던 여권을 발견하고 오늘 자기와 딸이 죽인 사람이 바로 20년 전에 집을 떠난 자기의 아들임을 알게 된다.

 어머니는 비탄에 젖어 자신의 아들을 내던진 강물에 투신자살하고 만다.

 아내 마리아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그 이튿날에 여인숙으로 찾아가지만 마르타는 이 모든 사실을 마리아에게 냉정하게 말하고는 자신도 죽을 것임을 내비친다.

 결국 이 희곡은 비극으로 끝을 맺는데 이틀 동안 벌어지는 단순한 사건이지만 이 사건을 둘러싼 네 사람의 등장인물의 끈끈한 대화에서 엿보이는 각자의 상세한 성격 묘사는 마치 형사 사건의 조서를 읽는 것처럼 치밀하고 현실적이다.

 소름이 끼치도록 사실적이고 섬세한 심리 묘사는 평범한 대화로 전개되지만 예리하게 복선을 깔아 놓고 살인을 암시하는 대화 내용은 작가의 천재성을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윤리주의란 문학자들에게는 진부한 것으로 치부되기 쉽지만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같은 대문호들일수록 무겁게 다루던 주제가 아니던가.

 특히나 과학이 발달하여 전쟁도 대량 살상이 쉽게 이루어져 극도의 인명 경시 풍조를 불러일으키게 되었으니 윤리주의란 이 시대에는 진부한 것이면서도 역설적으로 지극히 참신한 명제라고 아니 할 수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