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 여자

 지나 롤로브리지다, 숀 코네리, 랄프 리차드슨 주연의 1964년작 영국 영화, '지푸라기 여자'의 포스터.

 이 작품은 프랑스의 여류 소설가인 카트린 아를레이가 21살 때에 쓴 추리소설이다.

  제 2차 세계 대전 때 연합국의 폭격을 받아 폐허가 된 함부르크에서 폭격으로 인해 일가족과 친척을 모두 잃은 힐데가르데 마에나는 번역 일을 하면서 어렵게 생계를 이어 나가지만 몇 년 동안 주간신문의 구혼 광고 를 계속 살피면서 갑부와 결혼하는 것을 꿈으로 삼는, 허영심에 가득 찬 34세의 노처녀다.

  어느 날 백만장자의 구혼 광고 에 응모한 그녀는 얼마 후 프랑스의 칸으로 초대하는 광고 주의 답장과 함께 칸행 비행기표를 우송 받는다. 칸에서 만난 63세의 안톤 콜프는 백만장자인 칼 리치몬드의 집사로서 독신인 리치몬드가 죽게 될 경우 자신에게 남기는 유산이 생각보다 적은 2만 달러인데 그녀를 리치몬드의 아내로 만들어 주는 조건으로 자신이 그녀를 양녀로 삼고 리치몬드와 결혼해서 리치몬드가 죽으면 자신에게 2만 달러 외에 20만 달러를 더 줄 것을 약속하라고 요구하자 빈털털이인 그녀는 이 말을 따른다.

  그녀는 일단 호화유람선에서 눈병이 난 73세의 백만장자 리치몬드의 간호사로 들어가서 간호를 해 주며 돈을 뿌리며 고용인들을 농락하는 악취미를 가진 이 노인에게 콜프의 지시대로 자신은 돈으로 자존심을 팔지 않는 긍지가 강한 여인임을 각인시켜서 노인의 격분을 사는 위기를 겪지만 결국 이 노인의 구혼을 받는 데에 성공하여 목적대로 결혼하게 된다.

  호화유람선으로 신혼여행을 하던 중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늙은 남편이 죽어 있는 것을 본 그녀는 이 사실을 콜프에게 알리는데 콜프는 그녀에게 유산이 상속되도록 새로 작성된 유서가 등록되지 않으면 유서의 효력이 없으니 자신이 미국의 뉴욕에 상륙하여 새 유서를 등록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리치몬드가 살아 있는 것으로 보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노인이 살아 있는 것으로 위장해서 뉴욕의 대저택으로 들어가지만 배에서 대저택까지 부부를 태우고 온 운전기사가 부부의 행동을 수상히 여겨 경찰에 신고하게 되고 그 다음날 경찰이 찾아와서 리치몬드가 이미 배 안에서 죽었음을 알게 되고 리치몬드는 독살된 것으로 판명되어 그녀는 남편을 독살한 혐의로 수감되고 심문을 받게 된다.

  그녀가 남편의 독살범으로 혐의가 굳어지는 가운데 안톤 콜프가 두 차례나 면회를 와서 자신이 리치몬드를 독살하고 그녀에게 누명을 씌웠으며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호적보관소도 없어진 함부르크에서 그녀를 공식적인 친딸로 만들었다고 말해 준다. 그렇게 모든 사실을 말해 주는 이유는 철저히 고립되고, 빈털털이인 자신과 결혼한 은인을 독살한 패륜녀로 지탄받고 있는 그녀에게 절망감을 안겨 주어서 자살하게 하여 수사가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이목에 그녀의 자살로 스스로 살인 범행을 시인하는 것으로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또한 그녀가 죽어야 서류상의 친아버지인 자신이 리치몬드의 전재산을 상속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녀가 뉴욕의 총경 스털링 케인에게 콜프가 면회를 와서 한 말을 모두 말하니 케인은 콜프가 리치몬드처럼 위장한 대역과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 것을 그녀에게 들려준다. 원래는 전재산을 그녀에게 상속 받게 조치해 놓았지만 그녀에게 백만 달러만 주겠노라고 말하는 녹음 내용으로 그녀가 오히려 예전의 유언의 효력이 살아 있을 때 남편 리치몬드를 죽여 전재산을 상속받으려 했다는 명확한 살인 동기를 만들어서 그녀가 리치몬드를 죽인 것으로 믿게끔 하는 내용이었다.

  결국 철저히 고립되고 정당한 댓가 없이 큰 욕망을 이루려 한, 허영심에 가득 찬 어리석은 그녀는 콜프의 의도대로 절망에 빠져 감옥에서 스타킹을 창살에 고정시키고 목을 매어 자살하게 되고 콜프는 악마적인 완전범죄를 성공시키게 된다.

  여기서 '지푸라기 여자'란 미끼가 된 여자를 뜻하는 말로 21살 밖에 되지 않은 여자가 썼다고는 믿겨지지 않는 악마적이고 원숙한 세계관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문체가 간결하고 문맥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술술 잘 읽히면서 30년 전에 읽었었던 책을 다시 한 번 읽는 것이었지만 결말을 이미 알면서도 긴박감과 스릴을 느끼게 하는 흥미진진한 내용이었다.

  그녀가 남편이 남긴 막대한 유산을 이용해서 유능하고 비싼 변호사를 사서 모든 사실을 알려주고 변호를 맡겼었더라면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졌을 텐데 가난하고 고립된 채로 고지식하게 살아와서 세상 물정을 모르고 어리숙하며 자신을 백만장자와 맺어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이용하고 버리는 콜프를 맹목적으로 신뢰했다가 갑자기 찾아든 배신감으로 이성을 잃어 삶을 포기하는 가련함은 '남자에 의존하여 한 남자에게 운명을 맡기며 수동적으로 살아가려는 구시대적 여성상의 한계'로 보여진다.

  사람은 고립되면 어리석어지기 쉽고 어리석어지면 자신에게 중대한 해가 되는 행동을 과감하게 저지르게 되나보다. 또한 타인에 대한 지나친 의존심도 어리석음의 전형적인 한 예일 것이다.

  여기에 힐데가르데가 절망에 빠져 자살하는 충격적인 결말 부분을 그대로 옮겨 보기로 한다.

  그녀는 일어섰다. 쇠창살을 통해서 문을 흘끗 보고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모든 것이 조용했다. 저녁 식사 시간은 훨씬 전에 지나가 버렸다. 원칙적으로 죄수에게는 밤에는 잠자는 것 밖에는 없었다.

  그녀는 방안의 중앙으로 돌아왔다. 손잔등으로 시선을 흐리게 하는 눈물을 닦았다. 양말로 만든 밧줄을 잡고서 한쪽 무릎을 세면대에 대고 팔을 뻗쳐서 들창의 제일 밑 창살을 잡았다. 양팔을 한껏 뻗어올려서 그녀는 법랑 도기로 된 작은 세면대 위에 서는 데 성공했다. 떨어지면 안 된다. 그 소리가 나게 되면 곧 간수가 뛰어와서 사태를 알아차리고는 그녀의 하나 밖에 없는 무기를 몰수할 것이 틀림없다. 요령 좋게 살짝 해야 한다. 그녀는 그것을 잘 해냈다. 팔을 쇠창살을 통해서 균형을 맞춰 걸어 놓고서 다음에 작은 매듭 고리를 만들기만 하면 된다. 그것은 간단하게 되었다. 그리고 힐데가르데는 그것을 자기의 목 둘레에 걸고서 목 둘레의 머리카락을 들어올려 나일론 목걸이 위에 살짝 올려놓았다. 이제는 한 발을 들고 다른 한 발을 미끄러뜨리기만 하면 된다. 아주 잠시 동안 흔들리겠지. 그때 무엇이든 잡으려 해서는 안 된다. 기다려야지. 그것도 오래는 안 걸릴 것이다. 본능의 벌레가 잠시 꿈틀거리겠지. 그러나 어떻게 해 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신음 소리도 격심한 피의 역류에 눌려 버려서 그것이 숨을 막히게 해 줄 것이다.

  그녀는 한 순간 주저했다. 그녀의 마지막 한 순간이었다. 그 동안만은 죽음이 멀어졌고 그녀의 불쌍한 일생을 총결산하게 해 주었다. 서운한 것은 단지 혼자 뿐이라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임해서 자기를 생각해 주는 사람도, 이별을 고해주는 상대도 없다는 것뿐...

  천천히 그녀는 한 발을 공간으로 미끄러뜨렸다. 또 한쪽의 발은 아직 세면대 위에 있었다. 그 발이 세면대를 아프게 하고 있었다. 그녀의 균형은 아주 조그마한 우연에 의해서 지지되어 있는데 지나지 않았다. 오래 계속되지는 않았다. 그녀는 몸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튼튼한 끈에 끌려갔다. 뛰어내리면서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되어 가는 대로 맡기면서, "아, 하나님!" 하고 중얼거렸다. 사람은 하나님을 절망적인 때가 되어서야 부르짖는다. 그래서 이때 하나님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는 곧 힐데가르데가 아니었다. 아직 완전한 시체는 아니었고, 마지막 전쟁으로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동안에 피가 무서운 소리를 내면서 귀에서 넘쳐 나왔고, 혀를 입에서 튀어 나오게 했고 그녀를 어둠 속으로 방황하게 하였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그녀는 죽었다.